[탐사 기획/MB ‘31조 자원 외교’ 대해부]
③ 재앙이 된 무능, 공기업
③ 재앙이 된 무능, 공기업
지난해 3월20일, 광물자원공사는 에스케이(SK)네트웍스, 현대하이스코, 엘에스니꼬(LS-Nikko)동제련, 일진머티리얼즈 앞으로 ‘비공개’ 문서를 하나 보낸다. 제목은 ‘멕시코 볼레오 프로젝트 2014년 3월 투자비 납입요청’이었다. 멕시코 바하반도 산타로살리아에 위치한 구리 광산을 운영하는 데 들어간 한달치 투자비를 분담하자는 내용이었다. 다음날까지 160억원(1500만달러)을 내라는 독촉이었지만, 응한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전달에도 기업들은 공사의 같은 요청을 무시했다. 길게는 2년 넘게 ‘요청’과 ‘무시’가 되풀이되고 있다.
경제성 상실 멕시코 구리광에
443억 투자 확대 ‘배임성 결정’
공사쪽 “사업중단 우려해 대납” 7년새 투자비 1조534억 눈덩이
지분 74% ‘모래성 대주주’ 올라
공사 “경영능력 키울 학습기회”
경영진·이사회 등 징계는 없어
애초 광물공사와 민간기업은 자원개발사업이란 한배를 탔지만, 가려는 방향이 서로 갈린 지 오래다. 2008년 공사는 민간기업들과 함께 컨소시엄을 꾸려 자주개발률이 낮은 구리 확보를 위해 볼레오 동광 사업(이하 볼레오 사업)에 투자했지만, 기업들은 일찌감치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광물공사의 재촉에도 이윤을 중시하는 기업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리튬전지 부품업체인 일진머티리얼즈는 가장 먼저 발을 뺐다. 3년 전부터 운영비를 내지 않았다.
광물공사는 기회라도 잡은 듯 반대로 움직였다. 공사는 문서를 보낸 지 닷새 만에 민간기업들이 미납해온 투자비를 대납하기로 결정했다. 443억원(4058만달러)에 이르는 큰돈이었다. 대신 공사는 투자비를 내지 않은 기업들의 지분을 넘겨받았다. 공사 지분은 70%에서 74%로 커졌다.
10%로 출발한 광물공사의 지분은 2012년을 기점으로 크게 늘어나 지금은 볼레오 사업 최대 주주가 됐다. 공동 투자자로 나선 국내외 기업들이 투자비를 내지 않으면 대신 납부하거나 빚을 대신 떠안으면서 얻은 지분 덕이었다.
그런데 투자비를 대신 내면서 얻게 되는 지분이 가치가 있느냐는 게 문제였다. 추가 투자를 꺼린 기업들은 자신들이 지닌 볼레오 지분의 가치가 전혀 없거나 낮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투자비를 대납하면서 지분을 늘려온 행위가 공사에 많게는 수천억원의 손실 가능성을 키운 배임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사의 애초 투자비 500억원가량이 지금은 20배 넘는 1조534억원으로 불었다.
20일 <한겨레>가 김제남 정의당 의원과 함께 볼레오 사업에 참여한 민간기업들의 ‘2013년 사업연도 감사보고서’의 재무제표 주석(이하 감사보고서)을 봤더니, 기업들은 투자금의 회수 가능성이 아예 없거나 낮다고 봐 지분 가치를 전부 또는 일부 손실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철강을 생산하는 현대하이스코는 볼레오 컨소시엄 내 지분 약 16.7%(2억5076만주)를 모두 손상차손으로 인식했다. 이 지분을 취득하는 데 투자된 약 272억원을 한 푼도 건질 수 없다고 판단해 회계처리한 것이다. 투자한 자산 가치의 ‘회복’(회수) 가능성을 뜻하는 손상차손은 인식한 만큼 손실로 처리한다. 현대하이스코는 전년도만 해도 투자금 거의 그대로 장부가로 반영했다. 그런데 1년 만에 보유 주식을 사실상 ‘휴지 조각’으로 재분류한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투입된 금액이 나중에 회수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일진머티리얼즈도 애초 약 108억원(6.7%)을 주고서 확보한 지분에서 3분의 1가량(36억원)을 손실로 처리했다. 회사 관계자는 “사업이 유야무야된 상황이다. 담당자도 다 퇴사하고, 지금은 딴 사람이 인계받아서 관리 정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케이네트웍스는 99억원, 엘에스니꼬동제련은 123억원을 손상차손으로 인식했다. 에스케이네트웍스 쪽 관계자는 “지분가치 평가 축소를 반영했다”고 말했다.
상업생산 2015년으로 또 늦춰
볼레오 사업 ‘기약없는 연기’ 볼레오 사업처럼 계속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경우 손상차손으로 인식해 손실을 반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애매한 경우엔 손상차손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볼레오 사업에 투자한 민간기업 4곳 모두 동시에 투자금 일부 또는 전부를 손실처리한 것은 사업의 불확실성이 무척 커졌다는 뜻이다. 공사가 투자비를 대납하면서 늘린 지분 상당수는 사실상 ‘손실’처리된 주식인 셈이다. 김경율 회계사는 “손실이 날 것을 빤히 알면서도 투자비를 계속 늘렸다면 공사 경영진 등의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투자자들이 발을 빼는 상황에서 혼자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는 구체적이면서도 상세한 근거가 있어야 했다. 광물공사 관계자는 “대납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사업의 존폐가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투자가 중단되면 더 이상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투자 지속 여부에 가장 중요한 사업의 수익성은 공사 내부에서조차 회의적이었다. 이사회는 지난해 3월 기업들이 미납한 투자금을 대납하는 안건을 승인하면서 “대주단(채권단)에서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본 사업이 순현재가치(NPV)나 내부수익률(IRR)을 따져봤을 때 이익을 얻을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이 발언을 한 남효응 이사회 의장대행은 “다만, 손실을 최소화하고 본 사업을 함으로써 우리 회사의 경영능력이나 자원개발능력, 기술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면 손해 보는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수익성이 없는 사업에 공사의 ‘사업 능력 향상’을 위해 투자비를 계속 넣고 있는 것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6월 감사(‘에너지공기업 투자 특수목적법인 운영관리 실태’)를 벌이면서 볼레오 사업이 “수익성 부족으로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다”며 “사업성이 없다”고 밝혔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회계사는 “철저히 사업적으로 판단해야지, (공사의) 경험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한다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커 보인다”며 “법률적으로 경영진의 배임 혐의 적용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1조원 이상 쏟아부은 볼레오 사업은 기약 없는 답보 상태다. 2010년부터 상업 생산이 가능하다던 생산은 2014년에서 다시 2015년으로 늦춰졌다. 김제남 의원은 “볼레오 사업은 경제성을 이미 상실한 상태다. 담당 실무자 3명이 근신, 감봉 등의 솜방망이 징계를 받았을 뿐 잘못된 결정을 내린 사장과 경영진, 이사회는 아무런 징계도 문책도 당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류이근 최현준 기자 ryuyigeun@hani.co.kr
443억 투자 확대 ‘배임성 결정’
공사쪽 “사업중단 우려해 대납” 7년새 투자비 1조534억 눈덩이
지분 74% ‘모래성 대주주’ 올라
공사 “경영능력 키울 학습기회”
경영진·이사회 등 징계는 없어
볼레오 사업 ‘기약없는 연기’ 볼레오 사업처럼 계속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경우 손상차손으로 인식해 손실을 반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애매한 경우엔 손상차손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볼레오 사업에 투자한 민간기업 4곳 모두 동시에 투자금 일부 또는 전부를 손실처리한 것은 사업의 불확실성이 무척 커졌다는 뜻이다. 공사가 투자비를 대납하면서 늘린 지분 상당수는 사실상 ‘손실’처리된 주식인 셈이다. 김경율 회계사는 “손실이 날 것을 빤히 알면서도 투자비를 계속 늘렸다면 공사 경영진 등의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투자자들이 발을 빼는 상황에서 혼자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는 구체적이면서도 상세한 근거가 있어야 했다. 광물공사 관계자는 “대납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사업의 존폐가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투자가 중단되면 더 이상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투자 지속 여부에 가장 중요한 사업의 수익성은 공사 내부에서조차 회의적이었다. 이사회는 지난해 3월 기업들이 미납한 투자금을 대납하는 안건을 승인하면서 “대주단(채권단)에서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본 사업이 순현재가치(NPV)나 내부수익률(IRR)을 따져봤을 때 이익을 얻을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이 발언을 한 남효응 이사회 의장대행은 “다만, 손실을 최소화하고 본 사업을 함으로써 우리 회사의 경영능력이나 자원개발능력, 기술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면 손해 보는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수익성이 없는 사업에 공사의 ‘사업 능력 향상’을 위해 투자비를 계속 넣고 있는 것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6월 감사(‘에너지공기업 투자 특수목적법인 운영관리 실태’)를 벌이면서 볼레오 사업이 “수익성 부족으로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다”며 “사업성이 없다”고 밝혔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회계사는 “철저히 사업적으로 판단해야지, (공사의) 경험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한다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커 보인다”며 “법률적으로 경영진의 배임 혐의 적용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1조원 이상 쏟아부은 볼레오 사업은 기약 없는 답보 상태다. 2010년부터 상업 생산이 가능하다던 생산은 2014년에서 다시 2015년으로 늦춰졌다. 김제남 의원은 “볼레오 사업은 경제성을 이미 상실한 상태다. 담당 실무자 3명이 근신, 감봉 등의 솜방망이 징계를 받았을 뿐 잘못된 결정을 내린 사장과 경영진, 이사회는 아무런 징계도 문책도 당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류이근 최현준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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