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국가정보원 후보자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미국과 우리나라의 이익이 충돌한다면 대한민국의 이익만 생각할 것이다. 미국의 이익을 어떻게 생각하겠나?”
이병호(75)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의 1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일국의 최고 정보기관 수장을 검증하는 자리에서 나오기 힘든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이 후보자는 “내 국가관과 애국관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지만, 그의 가계를 보면 최고 등급의 국가기밀을 다루게 될 국정원장 후보자의 ‘나라 사랑’을 왜 거듭 확인해야 했는지 이해가 간다.
이 후보자의 아들과 며느리, 손자·손녀 등 7명은 미국 시민권자(4명)와 영주권자(3명)다. 후보자 부부를 제외하고 직계가족 12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이들이 미국 시민이거나 그에 준하는 신분이다.
글로벌 시대에 이중국적이 무슨 문제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에 둬야 할 고위 공직자의 경우까지 정말 아무 문제가 없냐는 것이다. <한겨레>를 통해 이 후보자 가족의 국적 문제가 알려지자 “CIA 국장으로 적격” “차라리 브루스 윌리스를 국정원장에 앉히라”는 말들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후보자의 나라 사랑이 어떤 방향인지는 익히 알려져 있다. 이 후보자는 2013년 한 월간지에 “햇볕정책은 정보기관으로서의 국정원의 정체성에 치명타를 가했다. 갑자기 북한이 ‘안보 위협’이 아닌 ‘포용의 대상’이 됐다”고 썼다. 그의 이념편향적 안보관이 남북한 사이의 긴장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는, 박근혜 정부 첫 국정원장이던 군 출신 남재준 전 원장에게서 확인된다. 이 후보자는 “사려 깊지 못한 표현이었다”고 사과했지만, 그의 가족들이 외국에 사는 동안 남북한의 긴장감을 높이는 발언을 일삼던 그가 국정원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지 우려스럽다.
이 후보자의 차남 가족은 미국에 산다. 장남과 그 가족은 중국령 홍콩에서 직장과 학교를 다닌다. 야당 의원이 “미국과 중국 정부는 이 후보자 가족의 국적 문제를 모두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이를 우려스럽게 지적한다”고 했지만, 이 후보자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이중국적자인 손주들의 국적 선택에 대해서는 “부모가 그걸 어떻게 하겠나. 본인이 선택할 것”이라면서도 “저는 한국을 택하라고 할 의향은 있다”고 했다. 고위 공직자들의 나라 사랑은 꼭 이런 데서 멈춘다.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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