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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박 대통령은 왜 영수회담을 하지 않을까요

등록 2015-10-23 16:51수정 2015-10-23 17:27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가 22일 오후 3시 청와대에서 회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가 22일 오후 3시 청와대에서 회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성한용의 정치막전막후 34
역대 대통령들, 정치적 고비 영수회담으로 풀어
박정희 대통령, YS와 회담서 눈물 흘리며 설득
박근혜 당시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과 회담서 설전

이번 5자회담은 싸움은 여야 대표들이 하고
지켜보기만 하면 그만인 대통령에 유리한 구도
모든 회담의 기본은 거래입니다. 주는 것이 있고 받는 것이 있습니다. 이익과 이익만을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명분과 이익을 거래하기도 합니다. 성공적인 회담을 위해서는 정교한 사전 조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정치 회담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수회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자로 ‘옷깃 영’(領), ‘소매 수’(袖)자를 씁니다. 영수는 어떤 집단에서 특별히 뛰어난 사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영수회담은 국가나 정치단체 또는 어떤 사회조직의 최고 우두머리가 서로 만나서 의제를 가지고 말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우리 정치에서 영수회담은 주로 대통령과 야당 총재의 일 대 일 회담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大統領)과 ‘당수’(黨首)의 회담이기 때문에 ‘영-수’(領首) 회담”이라는 잘못된 주장도 있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정치적 고비를 여야 영수회담으로 풀었습니다. 줄 것을 주고 받을 것을 받았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대통령이 된 이후 2년 만인 1965년 7월20일 박순천 민중당 대표최고위원과 영수회담을 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 사설을 인용하겠습니다.

“20일에 열린 박정희 대통령과 박순천 민중당 대표최고위원의 회담은 한일협정을 에워싼 국가적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실패하였으나 적어도 전면적 파국을 모면할 수 있는 길을 찾았고 나아가서는 문제해결의 어떤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무엇보다 국가운명의 주인공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했다는 그 자체가 민정 2년에 처음 보는 일이며 시국수습 대원칙으로 헌정질서의 유지와 여야간의 극한적인 대립을 지양토록 서로 노력한다고 합의한데 우리는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1975년 5월21일에는 김영삼 신민당 총재와 여야 영수회담을 했습니다. <매일경제> 보도를 인용하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21일 상오 10시반 청와대에서 단독회담을 갖고 국가 안보 및 국정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박 대통령과 김 총재는 이날 회담에서 우리의 안보체제와 사회부조리 제거, 서정쇄신 등을 통한 국민총화 문제 등에 관해 협의하고 앞으로의 국정운영에 있어서의 협조 문제도 아울러 논의했다.”

이 회담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손수건으로 눈물까지 닦으며 김영삼 총재에게 민주화를 약속했고 이 약속을 믿은 김영삼 총재가 온건노선으로 돌아섰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영삼 총재가 입을 꽉 다무는 바람에 실제로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시중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김영삼 총재에게 차기 대통령을 약속했다는 설, 거액의 정치자금을 줬다는 설 등이 나돌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7년 5월27일에도 이철승 신민당 대표최고위원과 여야 영수회담을 했습니다.

옛날 얘기를 끄집어낸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와 달리 여야 영수회담을 한번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설명은 지금은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총재가 아니기 때문에 여야 영수회담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형식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였고 노무현 대통령부터는 여당 총재나 대표직을 맡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은 여전히 집권여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도 이명박 대통령도 여야 영수회담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여야 영수회담 상대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였습니다. 회담은 노무현 대통령이 야당에 대연정을 제의한 것을 계기로 이뤄졌습니다. 2005년 9월7일 두 사람은 2시간30분 동안 국정 전반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당시의 대화록은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토막만 들여다볼까요?

노무현 : 한나라당에서 위기라는 말을 하고, 경제위기, 총체적 위기, 경제파탄, 민생도탄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런 위기나 파탄이란 것은 경제에 대해서 너무 심한 표현이라고 본다. 양극화가 심해진 것은 90년 이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심각해진 것이다. 어제 오늘 생긴 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여정부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박근혜 : 국민이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를 가든 국민들은 자녀 교육을 시키면 직장을 얻을 수 있고 또한 이런 나라가 돼야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청년 실업, 고용의 질의 악화, 이런 것들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다. 국민의 피부에 닿아야 되지 않는가.

노무현 : 한나라당은 진정 지금이 경제위기, 파탄상황이라고 보는가라고 질문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박근혜 : 잠재성장률이 이런 식으로 떨어지면 이대로 가면 장기불황으로 가는 것 아니냐.

당시 박근혜 대표는 주로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성장률은 4.2%였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3.2%였고 지금 박근혜 정부는 그 이하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시 박근혜 대표의 비판이 옳았는지, 또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 경제를 살려 장기불황을 막을 수 있는지는 여러분께서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2월9일에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전시작전권 문제를 의제로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2008년 5월20일), 정세균 민주당 대표(2008년 9월25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2011년 6월27일)와 모두 세 차례 여야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여야 영수회담을 한번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야의 대표나 원내대표가 참여하는 3자회담, 5자회담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혹시 자신은 여야를 초월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일 대 일 여야 영수회담은 자신의 격을 야당 대표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이 한꺼번에 만나는 3자회담이나, 5자회담은 대통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도입니다. 싸움은 여야 대표들이 하고 대통령은 싸움을 지켜보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22일 청와대 5자 회담에서도 국정 교과서 문제를 가지고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주로 싸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나서 네 사람의 언쟁을 지켜봤다고 합니다.

22일 회담은 철저히 실패로 끝났습니다. 모든 언론이 ‘108분’ ‘절벽’이라는 단어로 현장의 험악한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처음부터 합의나 공동발표를 위해 회담을 마련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통해 야당에 법안과 예산안 처리에 협조해 달라고 당부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대변인 배석을 거부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어떻게 될까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박근혜 대통령은 가치지향적 인간입니다.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은 당분간 국정화를 강하게 밀고 나갈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어떻게 할까요? 대통령과 여당의 이해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보다 더 강하게 국정 교과서를 밀어붙일 것입니다. 공천 갈등의 상처를 치료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누리당 의원들의 생각은 좀 다를 수 있습니다. 원유철 원내대표가 23일 아침 정책조정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야의 지나친 개입, 정치권의 개입은 역사 교과서를 정치 교과서로 만들 수 있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 봤다. 이제 정치권은 역사 교과서 문제를 국사편찬위원회와 역사학자를 비롯한 전문가에게 맡기고, 우리 국회는 민생의 현안을 처리하고 경제를 살리는 데 총력을 다 해나가야겠다.”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을 옹호하는 교과서, 민중사관에 매몰되어 독립운동까지 폄훼하는 교과서,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교과서, 시대착오적 민중사관을 주입하는 역사 교과서는 반드시 올바른 역사 교과서로 바꿔야 한다.”

“우리 새누리당에서는 이러한 역사 교과서의 문제는 우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차원에서도 꼭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의 말이 좀 다르지 않습니까? 원유철 원내대표는 ‘신박’으로 불리는 사람인데 지역구가 경기도 평택갑입니다.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친박연대 출신 재선 국회의원으로 지역구가 대구 달서병입니다.

국정 교과서에 대한 국민여론은 지역별로 큰 차이가 납니다. 쉽게 말해 수도권은 반대가 높고 영남은 찬성이 높습니다.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들의 발언은 지역구에서 유권자들의 여론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국정 교과서 쟁점을 길게 끌고 가봐야 이제는 별로 좋을 것이 없다고 보고 출구를 찾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반면에 대구의 조원진 의원은 국정 교과서 얘기를 하면 할수록 선거에서도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당분간 새누리당 안에서 국정화 반대 의견이 분출할 가능성은 없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모두 국정화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재오 의원이 23일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이재오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 평가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여러차례 충돌했던 사람입니다.

“친일 독재 미화 교과서는 시대의 흐름에도 맞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해서도 안된다. 특히 근현대사는 가해자나 피해자가 살아있다. 왜곡할 수가 없다. 만일 국정화가 친일 독재를 미화하기 위한 여권의 음모라면 나는 분명히 반대자의 명단에 내 이름을 올릴 것이다. 그리고 싸울 것이다. 또한 그런 교과서가 나오면 그것은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고 실제 교실에서 수업이 불가능하게 된다.”

“권력자들은 자기가 밀고 가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줄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순간은 통할지 모르나 역사는 반드시 옳고 그름을 기록한다. 권력의 크기가 클수록 국민 속에서 배워야 한다. 권력자들은 올바른 역사를 만드는데 협조해야 할 것이다. 여야 지도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

이게 무슨 말이지요? ‘천하의 이재오’ 의원이 국정 교과서를 당당하게 비판하지 못하고 겨우 양비론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무서운 것일까요? 김무성 대표와 모종의 거래가 있는 걸까요?

야당의 사정은 어떨까요? 국정 교과서에 대한 야당의 전략은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습니다. 이번 싸움을 시작한 것은 야당이 아닙니다.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드라이브에 질질 끌려다니면서도 장외투쟁이나 국회파행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정의 발목을 잡는 세력’이라는 비난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론의 흐름이 야당에 불리하지 않기 때문에 국회 법안과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국정 교과서 문제를 지속적으로 쟁점화시키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도 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국정 교과서는 앞으로 상당히 긴 시간을 두고 현대사에 대해 획일적인 가치관을 강요하는 세력과 이에 저항하는 세력의 힘겨루기로 결론이 날 것 같습니다. 획일적인 가치관을 강요하는 세력은 ‘박근혜’ ‘김무성’으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 집단입니다. 이들은 엄청난 권력과 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정 교과서 싸움에서 결코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다행히 이들의 주장은 시간이 갈수록 상식을 가진 수도권 중산층의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보수 성향의 언론조차도 국정 교과서 찬성 의견을 섣불리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워낙 터무니없는 주장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치에서 최종 승부를 가르는 것은 결국 선거입니다. 국정 교과서 쟁점이 내년 4·13 국회의원 선거 때까지 이어진다면 수도권 민심이 새누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낙선을 코앞에 두고 새누리당 의원이나 후보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과연 어떻게 될지 긴 호흡으로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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