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명의 ‘복면’들이 말한다
지난 14일 민중총궐기대회를 정부가 ‘불법·폭력 시위’로 낙인찍으며 2008년 촛불집회 이후 최대 인파인 13만명(경찰 추산 6만8000명)의 목소리는 덮여버렸다. 그들은 왜 거리로 나왔던가, 왜 또다시 거리로 나서려고 하는 걸까. 노동자·농민·빈민·영세상인·학생 등 6명의 ‘복면’들에게 1일 물었다.
마트 수산코너에서 생선 손질을 한 지 8년이 됐어요. 시급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데 하루 8시간씩 일하고도 월급은 103만원밖에 안 되죠. 저희는 1년에 두번씩 고과에 따라서 성과급을 주는데, 그걸 갖고도 주네 마네 말이 많아요. 그런데 정부가 추진하는 성과에 따른 일반해고가 도입되면 성과 때문에 해고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지금도 고객 항의 1건으로 해고되는 경우가 많은데, 비정규직들은 일하기 너무 힘들어져요. 그래서 노조 가입한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큰 집회에 나갔어요. 물대포란 걸 그날 처음 봤어요. 그냥 옆에 서 있기만 해도 어찌나 맵던지…. 마스크를 쓰지 말라는데 어떻게 안 쓰겠어요. 저희는 다 자식 둔 아줌마들이잖아요. 노동개악이 이뤄지면 우리 애들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될 거 아녜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노동시장 유연화를 저희는 이미 실감하고 있어요. 지난 5~6월에 회사 쪽에서 해고요건을 엄청 늘린 취업규칙 개정안을 들고나왔어요. 다행히 노동조합이 교섭 과정에서 이를 막아냈어요.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선 비조합원을 상대로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도 이미 많아요. 노동개악이 이뤄지면 큰 공장보다도 이런 작은 사업장에서 피해가 속출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부가 시행하고 나면 그땐 싸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끝까지 싸워보고 싶어요. 복면을 쓰지 말라고 해서 ‘박근혜 대통령 가면’이라도 5일엔 쓰고 나가려고요.
학교 교사를 하다가 농사를 지은 지 6년 됐습니다. 논밭 4000㎡(1200평)에 쌀·밀·고구마·감자 같은 농사를 짓고 있어요. 올해 결산은 확실히 안 내봤지만, 농산물 가격은 떨어지고 부자재 값은 오르니 수익이 30%는 줄어들 것 같아요. 그게 다 빚이에요. 농협 수매가를 봐도 양파값만 오르고 나머지는 떨어졌더군요. 집회에 왜 나갔느냐고요? 슬프고 화가 나서 그랬죠.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때 17만원 하던 쌀 한가마를 22만원까지 올려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올해 한가마에 15만원입니다. 약속을 안 지킨 거죠. 지난 집회에서 백남기씨에게 물대포 쏜 것도 잔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사람이 다 죽게 됐는데 사과를 요구해야지요. 5일 집회에서도 ‘씨알과일’ 같은 농업을 지키자고 말할 겁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못 열었던 노점상 대회를 지난 14일 집회 때 같이 개최했어요. 오죽했으면 주말 대목 장사를 접고 상인들이 한데 모였겠습니까. 정부가 추진하는 노점 단속 좀 막아보자,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는 게 핵심적 요구사항이었죠. 우리가 사전대회를 마치고 광화문에 합류하려고 할 때는 이미 경찰과 대치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평화적으로 집회와 행진을 보장했으면 그런 일(폭력)이 벌어졌을까요. 우리 전체를 폭력집단으로 몰아가고 있으니까 당황스럽네요. 집회를 금지하겠다니 ‘무조건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라’ 하는 말인가 싶기도 해요.
2년 전까지 대기업 대리점을 했어요. 예전엔 저 같은 대리점주, 가맹점주들이 그래도 중산층을 유지하며 장사해왔는데,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이 계속되니 한달 내내 일해도 본인 인건비조차 안 나와요. ‘갑을 관계’ 좀 해소해보자고 대기업을 상대해 많이 싸워왔는데 해결되는 게 없더라고요. 마침 민중총궐기를 한다고 하길래 우리 ‘을’들도 가서 하소연이나 해야겠구나 생각해 나간 거죠. 그런데 폭력시위만 부각된 거예요. 대기업의 갑질, 불공정 행위에 대해 강력한 정부의 제재가 있어야 합니다. 남양유업 사태 이후 하나도 변한 것이 없어요. 우린 맨날 당하기만 하니까 답답합니다. 힘없는 저희들이 광장에 나가는 것 외에 뭐 할 게 있나요.
저는 장차 역사 교사가 될 거예요. 그런데 국정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라니, 이건 좀 아니잖아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뜻에서 지난 14일 나갔죠. 구조적인 청년실업을 만드는 정부 정책도 답답했고요. 함께 나갔던 친구가 경찰에 연행됐어요. 시민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공권력이 탄압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시위대의 집회 방식이 폭력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누가 들어주기나 하나요. 정부의 부당한 정책에 맞서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싸웠다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일부러 폭력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 시민들이 최대한 저항해야 요구를 알릴 수 있지 않을까요. 무기력하게 가만히 있지는 않으려고요.
박태우 김미향 김규남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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