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표의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사이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표적공천’, ‘자객공천’이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표적공천이란 말을 1988년에 처음 들었습니다.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치러진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총재가 서대문갑에 김학민 후보를 공천했습니다. 그런데 이 공천이 자신을 따라오지 않은 통일민주당의 김상현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한 ‘표적공천’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선거 결과는 민주정의당 강성모 후보 36,097(37.04%), 통일민주당 김상현 후보 30,598(31.39%), 평화민주당 김학민 후보 23,054(23.65%)였습니다. 야당 우세지역에서 야당표가 갈리면서 여당 후보가 당선된 것입니다.
1988년 선거는 민주정의당(노태우), 통일민주당(김영삼), 평화민주당(김대중), 신민주공화당(김종필) 4당 체제로 치러졌습니다. 네 개의 정당이 서울의 거의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냈습니다. 따라서 평민당이 서대문갑에 후보를 공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표적공천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상현 전 의원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김상현 전 의원은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가 결성됐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리인을 했을 정도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양김 후보 단일화가 실패로 돌아가자 김대중 후보가 아니라 김영삼 후보를 선택했고 이로 인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움을 샀던 것입니다.
‘자객공천’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본래 일본에서 쓰던 말입니다. 거물 정치인에 맞세워 여성 신인을 공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2009년 일본 제1야당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가 자민당 거물급 정치인들을 상대로 여성 신인들을 공천하면서 우리나라에 자객공천이라는 말이 알려졌습니다. 2012년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문재인 대표 대항마로 손수조 후보를 공천한 것에 대해 전여옥 전 의원이 자객공천이라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비난한 일이 있습니다.
문재인과 안철수 골 점점 깊어져
‘표적공천’ ‘자객공천’ 말까지 나와
새정치국민회의-통합민주당 분열
1996년 15대 총선 직전과 빼닮아
선거 결과 여당인 신한국당 승리
더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선거 연대?
현재 모습으로 볼땐 물건너갔다
다시 현재의 우리나라로 돌아오겠습니다. 문재인 대표의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의 표적공천 공방은 왜 나온 것일까요?
지난 3일 김한길 의원이 탈당한 뒤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에서 김병관 웹젠 의장 입당식이 열렸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새해에 우리당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영입을 선보이겠다. 특히 젊은 피 수혈에 중점을 두어 우리당을 더 젊고 새로운 정당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기자들이 김한길 대표 탈당에 대한 생각을 물었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새해부터는 오로지 단합의 길로 그렇게 나가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 아픔을 우리당을 더 새롭게 만드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이런저런 연유로 우리당 의원들이 출마하지 않거나 탈당해서 비게 되는 지역에는 과감하게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서 대한민국 정치를 물갈이하고 우리당을 더 젊고 새로운 정당으로 만드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김한길 의원의 광진갑 등 빈 지역구에 과감하게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발언입니다. 문재인 대표의 발언에 대해 김한길 의원은 4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대응했습니다.
“글쎄요. 광진 유권자들의 수준을 너무 얕보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이 들고요. 저에 대해서뿐 아니라 그렇게 위협하는듯한 자극을 주는 발언은 서로가 하지 않는게 좋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웬수가 된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3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탈당을 선언한 뒤 승용차에 올라 국회를 떠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안철수 의원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 바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김한길 의원의 얼굴에는 불쾌감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안철수 신당에 가세한 문병호 의원은 방송에서 “그동안 패권적인 친노 역할을 한 의원들의 지역이 어디인지 (여러분이)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은 특별히 저희도 신경쓰고 공천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친노 성향의 의원들을 심판하기 위해 안철수 신당이 표적공천을 할 것이라는 예고나 다름이 없습니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 것일까요? 하긴 정치가 본래 좀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합리적인 이유로 싸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대립으로 번지면 화해하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됩니다. 더구나 새누리당과 친여 성향의 언론은 두 정당을 끊임없이 이간할 것입니다. 문재인 대표의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의 대립은 선거가 다가올수록 더 격화할 것입니다.
최근 야권의 기류는 1996년 4월11일 치러진 15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과 많이 닮았습니다. 당시 선거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지 3년이 지났기 때문에 정권심판 여론이 꽤나 높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5년 6·27 지방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정계에 복귀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 상태였습니다. 민주당의 많은 의원들이 디제이를 따라 민주당을 탈당해 새정치국민회의로 이동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국구 14번으로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그러나 야권에는 디제이의 정계복귀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들은 통합민주당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통합민주당 지도부는 이기택 상임고문과 김원기 장을병 공동대표 체제였습니다. 노무현 이철 유인태 박계동 홍성우 이부영 김정길 등 유력 정치인들이 통합민주당의 주축을 이뤘습니다.
새정치국민회의와 통합민주당은 야권의 패권을 놓고 정면 격돌했습니다. 통합민주당의 정치적 슬로건은 ‘3김청산’이었습니다. 통합민주당은 디제이가 지역주의 피해자에서 지역주의의 화신으로 돌변했다며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국민회의는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디제이가 나서야 한다는 현실론으로 맞섰습니다.
야권의 분열과 감정싸움은 당시 야당을 담당하고 있던 기자들에게도 많은 스트레스를 주었습니다. 양당은 기사 한줄에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저는 당시 야당 1진이었습니다. 새정치국민회의 사람들은 저에게 “한겨레가 운동권 신문이라고 재야 운동권 편만 드느냐”고 항의했습니다. 반대로 통일민주당의 어느 정치인은 정치부장에게 “한겨레가 전라도 신문이냐. 왜 김대중 편만 드느냐”고 폭언을 퍼부은 일도 있었습니다. 참 힘든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편 보수 성향 야당이었던 김종필 총재의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은 1995년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충청권 지역주의와 대구·경북의 반김영삼 정서에 기대어 선거를 치렀습니다.
여당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고 이재오 김문수 이우재 등 민중당 출신 인사들을 대거 영입했습니다. 디제이의 정계복귀에 맞서 이른바 개혁공천으로 맞불을 놓은 것입니다.
선거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신한국당 139, 국민회의 79, 자민련 50, 통합민주당 15, 무소속 16이었습니다. 여당과 보수세력의 승리였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야권이 분열로 자멸했습니다.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구에는 신한국당 이명박, 국민회의 이종찬,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출마했습니다. 득표율을 보면 이명박 후보 41.00%, 이종찬 후보 33.55%, 노무현 후보 17.66%였습니다. 이종찬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표를 합치면 51.21%인데 야권분열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던 것입니다.
서울의 47개 선거구 가운데 이처럼 새정치국민회의와 통합민주당 후보의 표를 합치면 신한국당 당선자가 얻은 표를 넘어서는 선거구가 23개나 됩니다. 23개 선거구와 후보 명단, 득표수, 득표율 등을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서울 야권표 분산 패배 23개 선거구>
선거구 신한국당 새정치국민회의 통합민주당
종로구 이명박 40,230(41.00) 이종찬 32,918(33.55) 노무현 17,330(17.66)
용산구 서정화 41,092(36.39) 오유방 36,769(32.56) 강창성 24,023(21.27)
성동갑 이세기 36,682(44.26) 나병선 29,291(35.34) 임종인 7,649(9.23)
성동을 김학원 28,371(43.57) 조세형 26,358(40.48) 설영주 3,538(5.43)
동대문갑 노승우 34,120(38.08) 김희선 30,392(33.92) 장광근 10,065(11.23)
동대문을 김영구 37,871(41.94) 김창환 29,482(32.65) 김성식 12,177(13.48)
중랑을 김충일 41,772(38.81) 김덕규 39,940(37.11) 조명원 12,589(11.69)
성북을 강성재 45,025(42.50) 신계륜 41,487(39.16) 황호산 7,211(6.80)
노원갑 백남치 43,859(36.77) 고영하 41,906(35.13) 유영래 11,503(9.64)
은평을 이재오 48,146(43.63) 이원형 39,132(35.46) 이장희 9,785(8.86)
마포갑 박명환 31,022(40.79) 김용술 26,817(35.26) 김용 5,962(7.83)
마포을 박주천 35,819(36.35) 김충현 32,734(33.22) 장신규 7,900(8.01)
양천갑 박범진 36,857(35.81) 한기찬 30,886(30.01) 서경석 23,225(22.56)
강서을 이신범 48,083(37.87) 최두환 41,873(32.98) 고진화 18,180(14.31)
구로을 이신행 34,512(45.04) 김병오 30,285(39.52) 이승철 6,070(7.92)
금천구 이우재 41,412(37.31) 이경재 40,771(36.73) 이원영 13,076(11.78)
동작갑 서청원 40,318(40.79) 박문수 31,367(31.73) 장기표 18,851(19.07)
동작을 유용태 42,869(44.85) 박실 35,031(36.65) 김왕석 8,674(9.07)
관악갑 이상현 47,699(41.59) 한광옥 43,197(37.67) 김기정 5,289(4.61)
서초을 김덕룡 40,530(44.68) 정상용 21,112(23.27) 안동수 26,887(29.64)
강남갑 서상목 43,437(38.13) 강동연 21,385(18.77) 홍성우 23,465(20.60)
송파을 맹형규 34,741(39.73) 김진명 29,880(34.17) 김종완 9,801(11.21)
강동을 김중위 37,947(40.37) 심재권 30,416(32.36) 장기욱 14,438(15.36)
1996년 당시 보수 성향 야당이었던 자민련(김종필 총재) 세력은 지금 새누리당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야권분열 구도에서 선거를 치른다면 야권은 1996년보다 훨씬 더 나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될 것이라고 저는 예상합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4·13 선거를 앞두고 다시 힘을 합칠 수 있을까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4일 방송에서 “신당에 참여하실 분들은 3자구도 하에서도 당당하게 싸울 각오를 가지고 들어오셔야 한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통합이나, 연대, 후보 단일화를 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의사표시입니다.
김한길 의원은 조금 생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김한길 의원은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면서 ‘총선승리’를 강조했습니다. 짐작컨대 김한길 의원은 자신을 포함한 의원들의 탈당으로 문재인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대표에서 물러나면 다시 야권통합을 추진해 볼 생각을 조금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김한길 의원이 비슷한 정치기획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아무튼 막판에 야권이 선거 연대와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더라도 그게 성공할 가능성은 또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선거 연대와 후보 단일화가 성공하려면 각 정당 지도부의 리더십이 그 정당 내부에서 확실하게 관철되어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대표나 새로운 지도부, 또 안철수 의원이 과연 그 정도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갖고 있을까요? 저는 좀 회의적입니다.
지금 김한길 의원의 지역구인 광진갑에는 18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했던 전혜숙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나 더불어민주당 새 지도부가 선거 연대를 이유로 전혜숙 전 의원을 주저앉힐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분열로 인한 야권 몰락 시나리오는 이제 ‘주의보’가 아니라 ‘경보’ 단계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