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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영상] 꼬장꼬장 이학영, ‘시읽남’, ‘국민 지킴이’ 별명 얻어

등록 2016-02-29 22:08수정 2016-02-29 22:14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해 무제한 토론을 한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8일 밤 10시간 33분의 발언을 마친 뒤 내려오자 같은당 은수미 의원이 부둥켜 안으며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해 무제한 토론을 한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8일 밤 10시간 33분의 발언을 마친 뒤 내려오자 같은당 은수미 의원이 부둥켜 안으며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테러방지법 입법을 막기 위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일요일인 28일 23번째 주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이 10시간33분간 토론을 이어가, 전날 필리버스터에 나선 같은 당 정청래 의원(11시간39분)에 이어 2번째로 오랜 시간동안 국회 본회의장 단상을 지켰다. 이날 낮 12시22분 단상에 올라 밤 10시55분까지 토론을 계속했던 이 의원은 중간중간 시를 읊기도 하고, 엄혹했던 박정희 정권 시절을 회고하기도 하고, 또 새누리당 의원들과 말다툼에 나서기도 하면서 기나긴 필리버스터를 이어갔다.

 

## ‘시읽남’(시 읽어주는 남자)

1984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기도 한 이학영 의원은 독일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낭송하는 것으로 발언을 시작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분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새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강한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내 자신이 싫어졌다.

 

그는 또 중간중간 김남주 시인의 <진혼가>·<잿더미>, 김지하 시인의 <1974년 1월>·<타는 목마름으로>,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당나귀 선거>·<슐레지엔의 직조공> 등의 시를 읊었는데, 모두 개인의 자유가 부당한 권력에 의해 꺾이던 시절을 그린 것들이다. 김남주 시인의 <진혼가>(1974)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에 반대한 김남주 시인이 감옥에서 고문을 받던 기억을 되살려 쓴 시다.

 

 <진혼가>

 1

 총구가 나의 머리숲을 헤치는 순간

 나의 양심은 혀가 되었다

 허공에서 헐떡거렸다 똥개가 되라면

 기꺼이 똥개가 되어 당신의

 꽁구멍이라도 싹싹 핥아 주겠노라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의 싸움은 허리가 되었다 당신의

 배꼽에서 구부러졌다 노예가 되라면

 기꺼이 노예가 되겠노라 당신의

 발밑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의

 양심 나의 싸움은 미궁(迷宮)이 되어

 심연으로 떨어졌다 삽살개가 되라면

 기꺼이 삽살개가 되어 당신의

 손이 되어 발가락이 되어 혀가 되어

 

 삽살개 삼천만 마리의 충성으로

 쓰다듬어 주고 비벼 주고 핥아 주겠노라

 더 이상 나의 육신을 학대 말라고

 하찮은 것이지만 육신은 나의

 유일(唯一)의 확실성(確實性)이라고 나는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손발을 비볐다 나는

 

 2

 쓰고 있다

 지금 나는 쓰고 있다

 세 겹으로 네 겹으로 갇혀 쓰고 있다

 내 탓이다라고

 서투른 광대의 설익은

 장난 탓이다라고

 어설픈 나의 양심 탓이다라고

 미지근한 나의 싸움 탓이다라고

 모두가 모든 것이 내 탓이다라고

 나는 지금 쓰고 있다

 움푹 패인 주먹밥 위에

 주먹밥에 떨어진 눈물 위에

 눈물 같은 국물 위에

 환기통 위에 뺑끼통 위에

 시멘트 바닥에 허공에 천장에

 벽 위에 식구통 위에

 감시통 위에 침 발라

 손가락으로 발가락으로 혓바닥으로

 마르도록 벗겨지도록

 피나도록 쓰고 있다

 

 여러 골이 쑥밭이 된 것도

 여러 집이 뒤집힌 것도

 설익은 광대의 서투른

 장난 탓이다라고 함께

 사랑했다는 탓으로 불려다니고

 끌려다니고 밥줄이 막히고 끊어지고

 스승의 난처한 입장도 나의

 어설픈 양심 탓이다라고

 법관의 어색한 표정도

 간수의 안타까운 동정도

 또 누구의 미안한 응원도 모두가

 모든 것이 내 탓이다라고

 미지근한 나의 싸움 탓이다라고

 

 공포(恐怖)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캐내는데

 가장 좋은 무기(武器)이다라고

 

 3

 참기로 했다

 어설픈 나의 양심과 나의

 미지근한 싸움은 참기로 했다

 양심이 피를 닮고

 싸움이 불을 닮고

 피와 불이 자유를 닮고

 자유가 시멘트바닥에 응집된

 피 같은 불 같은 꽃을 닮고

 있다는 것을 배울 때까지는

 응집된 꽃이 죽음을 닮고

 있다는 것을 알 때까지는

 온몸으로 죽음을

 포옹할 수 있을 때까지는

 칼자루를 잡는 행복으로

 자유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는

 참기로 했다

 

 어설픈 나의 양심

 미지근한 나의 싸움

 양심아 싸움아 너는

 차라리 참아라 차라리

 참는 게 낫다고 참아라 

## 박정희 정권 시절 자신의 회고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1952년생인 이 의원은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을 회상하며 국가권력에 의한 본인의 실제 사례를 언급했다. 전북 순창 출신인 이 의원은 어린 시절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한 5·16 장학생이었고, 대학(전남대 국문과)에 들어온 뒤에도 공무원이 되기 위해 학생운동과 거리를 뒀지만, 성적이 좋아 (문리대) 학생회장으로 선출됐다. 이때문에 그는 민청학련 사건이 벌어지던 1974년 연행돼 집단 구타와 물고문 끝에 구속됐다. 이 의원은 “이후 학교에 복귀하지도 못하고 노동판을 전전했다”며 “일하는 곳마다 형사들이 찾아와 6개월마다 옮겨야 했다”고 그 시절을 떠올렸다.

이 의원은 “국가의 이름으로 이렇게 야만을 자행해도 되나.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하자고 야당 의원들이 이렇게 서 있는 것”이라며 “권력이 집중되면 남용하게 된다는 것은 역사가 주는 강력한 교훈”이라며 테러방지법이 국가정보원에 지나친 힘을 몰아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잘못된 법을 처음부터 반대하지 못하면 바로잡지 못할 것이고 국민 모두가 피해자가 될 것”이라며 “쟁점법안은 지속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상식이다. 지금이라도 상임위로 돌려보내야 한다. 필요하면 공청회를 열고 시민들의 의견을 듣자”고 호소했다.  

애초 처음 연행될 때만 해도 학생운동과 별반 관련이 없었던 이 의원은 석방 뒤에도 ‘빨갱이’로 낙인찍혀 일자리를 얻지 못했고, 정보기관원들의 계속된 감시가 거꾸로 그를 반정부 투쟁의 길로 내몰았다. 그는 나중에 순천 YMCA 간사로 활동하며 6·10 항쟁에도 적극 참여했고, 이후 한국 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 등을 지내는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 희망제작소 이사와 노무현재단 이사를 거쳐 지난 2012년 국회의원이 됐다.

## 엄혹했던 박정희 정권 시절

이 의원은 어선에 탄 13살 소년이 납북됐다가 풀려난 뒤 간첩으로 조작된 사건, 김대중 납치사건, 유인태 의원이 사형을 선고받았던 민청학련 사건, 중앙정보부로부터 전기고문을 받은 천상병 시인 등의 사건을 줄줄이 이야기했다. 그는 50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사법살인 사건’인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을 언급하면서 시신도 넘겨받지 못한 그들의 부모를 거론하면서 “국가의 이름으로 이럴 수가 있는 것이냐”라며 흐느끼기도 했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23번째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23번째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테러방지법=무제한 국민감시법”

이 의원은 테러방지법은 ‘무제한 국민감시법’이라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국민 엿보기입니까?

 일년에 국민 1만4천명이 자살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이런 민생문제는 외면하면서 무슨 안보입니까?

 국민 사생활을 엿보는 것이 안보입니까?

 국민을 지키는 것이 국가와 정치입니다.

 정부 비판 국민들이 좀 자유롭게 하도록 놔둡시다

 친구랑 술 먹는 거 알아서 뭐하시겠습니까?

 뭐가 두렵습니까?

 국가비상사태라고요? 책상이 아니라 가슴을 칠 일입니다.

 입법비상사태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상임위 논의를 통해 제대로 된 테러방지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 새누리당의 훼방, “그럴수록 나는 쉰다”

이 의원이 시를 읊거나 1971년 박정희 정권의 국가비상사태 선포문을 읽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토론을 이어가자 의석에 앉아있던 새누리당 의원들이 “의제와 관련이 없다”며 제지하려 하자, “그럴수록 저는 쉽니다”라고 강하게 맞섰다.

특히 이 의원이 유신정권 시절, 당시 국가기관에 의한 고문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1971년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언문을 낭독하려 할 때는 연달아 고성이 터져 나왔다. 사회를 보던 새누리당 소속 정갑윤 국회부의장도 “예만 들란 말이다, 상황을 설명하지 말고”, “테러방지법과 관련있는 발언만 해달라”며 이 의원의 연설을 제지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이를 무시한 채 끝까지 낭독했다.

또 시민으로부터 전달받은 의견을 소개하는 그에게 (대테러방지법) ‘찬성 의견은 없냐’고 새누리당 의원들이 항의조로 크게 묻자 “제게 온 의견 중엔 찬성 댓글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의원님께 (찬성 댓글이) 왔다면 올라와서 읽으십시오”라고 되받기도 도 했다.

이 의원은 또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이 의원의 발언에 대해 ‘허위사실 유포’라며 고성을 내지르자, “조 의원께서 제가 목이 아프니깐 쉬어가라고 하신 걸로 즐겁게 받아들이겠다”라며 ‘고문 시’라는 부제가 붙은 김남주 시인의 <진혼가>를 낭독했다.

 

## ‘국민 지킴이’

이 의원의 발언 도중,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이 ‘IS 폭탄 테러를 맞아봐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하며 진행을 방해하자, 방청석에서 한 시민이 ‘저렇게 훼방을 놔서는 안 된다’고 항의를 하다가 국회 방호과 직원들에게 이끌려 나갔다. 연단에 있던 이 의원은 “방호과 직원님 그냥 앉아 계시게 하세요. 그분들이 우리 주인분들입니다. 여러분은 주인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라며 방청객을 내보내려는 방호과 직원을 말렸다.  

또 한 방청객이 이 의원의 발언에 박수를 쳐 국회 방호과 직원이 이를 제지하며 끌어내려 하자, “왜 주인인 국민을 끌어내나, 신체에 해를 가하지 마세요, (박수) 소리 들리지 않았다”라고 외쳤다. SNS 등에서는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이 의원에 대해 ‘국민 지킴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 테러방지법 질타

이 의원은 이날 국정원과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이 지난 2012년부터 3년간 제출받은 통신비밀자료가 총 8225만건, 매일 7만5천건, 1인당 평균 1.6회의 개인 통신정보가 조회되고 있다는 정청래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이런 자료를 언급하며 정부와 새누리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왜 법에도 없이 무차별로 국민 통신비밀자료를 들여다 봤느냐. 이를 개선하자고 상임위에 법안을 올려놨다. 앞으로 나아가자고 하는데, 어떻게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뒤로 가는 법을 만들려 하느냐. 지금까지 (국정원 등 수사기관이) 이렇게 무차별로 법도 안 지키고 들여다 봤는데, ‘이제 제발 법 좀 지켜가면서 보라’며 지적하고 개선하는 법안을 냈으면 해당 상임위에서 토론하고, 각 당에 의견을 제시하고 조정해서 법안을 개정해야 하지 않나. 오히려 그동안 있는 법도 안 지키며 잘 봐왔으면서, 그나마 국정감사에서 지적받기 싫으니까, 청문회 나오기 싫으니까 선거 때 마음대로 감청하고, 댓글 보고, 조작하고 또 하려는 건가.

민주주의 파괴하자고 이런 법 만드는 건가? 이거 야당보고 동의하라고 하는 건가? 청와대는 민생법안이라며 노동악법(노동 4법) 통과 안 시키면 선거법 못 통과시킨다고 새누리당에 명령하지 않았던가.

민주주의 국가로 가자는 거다. 인권국가로 가자는 거다. 있는 법도 안 지키는 국정원에게 법 지키라고 개선법까지 내놓았는데 오히려 있던 법도 없애고, 법 없이 마음대로 국정원이 국민의 모든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언제든지 의심이 된다고 생각하면 다 보게 하자는거냐. 그런 법을 만들자는 거냐? 있는 법을 부칙에다 달아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해서 새누리당 단독으로 통과시키겠다고? 이게 민주주의 국회인가?”

그는 박 대통령을 향해 “테러방지법이라 불리는 국민무제한 사찰법, 철회시켜주시라. 제발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관련기사:[영상] 필리버스터에 박정희, 박근혜 성대모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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