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9일 낮 박선숙 김수민 의원의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대표실을 나서 승강기에 오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정치는 책임지는 것입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대표직을 내놓으며 던진 첫 마디다. 안 대표는 사퇴로써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수수 의혹’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졌다. 상처입은 ‘새정치’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지켜내고, 차가운 민심과 당내 혼란을 수습하는 동시에 훗날을 모색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국민의당은 사건 초기 박선숙·김수민 의원, 왕주현 사무부총장 등 의혹의 핵심 연루자와 거리 두기에 실패했다. 자체 진상조사단을 꾸려 조사를 벌였지만 김수민·박선숙 의원을 면담도 하지 않은 채 중간 발표를 내놓는 허술함을 보였다. “당은 리베이트와 연관이 없다”, “업체끼리 오간 돈은 당에 유입되지 않았다”는 설명만 반복할 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안 대표의 당 운영 능력 부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안 대표의 리더십도 흔들렸다. 초기엔 “영장을 청구하고 기소하면 검찰이 망신당할 거라고 본다. 공소 유지가 안 된다고 본다”(이상돈 진상조사단장)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결국 왕주현 사무부총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고, 박선숙·김수민 의원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당 지지율은 급속히 내리막길을 걸었고, 호남 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안 대표 책임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안 대표의 사퇴는 지난 28일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운을 뗐을 때부터 예견됐다. 안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와 의원총회에서 사건 연루자에 대한 조처 수위를 ‘기소 때 당원권 정지’로 결론 내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이튿날 사퇴를 결단했다. 한 국민의당 관계자는 “안 대표는 사퇴 말고는 이번 사태의 파장을 더이상 차단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물러나지 않는다면 실제로 책임을 지는 모습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직 사퇴는 당이 위기에 몰리면서 당 대표의 지위를 넘어 대선 주자로서의 위상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안 대표가 던진 승부수로 보인다.
당권을 내놓고, 대선 레이스를 어떻게 준비하느냐도 관건이다. 당 안팎에선 안 대표가 올해말까지 대표직을 수행한 뒤 이후 대선 행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당장은 혼란에 빠진 당을 수습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 뒤 물러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대선 주자로서 업적과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다시 찾아내야 한다.
오히려 백의종군을 통해 ‘국민의당=안철수당’이라는 공식이 깨지면 안 대표 자신도 ‘사당화’라는 비판을 피하면서 정치인으로서 또다른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표연설에서 언급한 미래 일자리나 교육 등 평소 자신감을 보이는 주제를 발판삼아 대선 도전의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야권의 대선 경쟁구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올초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어 안 대표도 물러남으로써 이제 더이상 야권의 대선 주자 중 당 대표를 맡은 사람은 사라졌다. 안 대표가 상처를 입으면서 문 전 대표, 김부겸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 더민주 후보들에게 유리한 구도가 형성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