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에서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을 만나 국정현안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다. 청와대 제공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이 9일 오후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불교경전인 <화엄경>의 경구 한 대목을 건넸다. ‘수목등도화(樹木等到花) 사재능결과(謝才能結果) 강수류도사(江水流到舍) 강재능입해(江才能入海)’라는 구절이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은 자승 스님의 허심탄회한 의견을 경청하면서 특별한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청와대는 특히, 자승 스님이 화엄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지혜로 삼아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자승 스님의 조언이 ‘정치권과 국민 모두’를 향한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조계종 쪽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자승 스님이 대통령과 면담하기 전에 수십명의 의견을 경청해 현 시국에 대한 국민들의 허탈감과 분노를 가감없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날 자승 스님이 인용한 화엄경의 경구는 통상 ‘버림의 미학’을 설법할 때 쓰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계는 자승 스님이 이 인용문을 통해 박 대통령이 현재의 자리와 권력에 연연하지 않아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의 면담은 지난 7일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 개신교 김장환·김삼환 목사를 각각 만난 데 이어 세번째 종교계 원로와의 만남이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도 사회원로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해 나갈 계획이라고 청와대는 밝혔다.
최혜정 기자,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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