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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잠이 보약’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혼이 비정상’ 어록

등록 2016-11-14 15:12수정 2016-11-14 17:22

‘혼이 비정상’ ‘우주의 기운’ 주옥같은 말말말 총정리
2014년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다” 발언한느 박근혜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2014년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다” 발언한느 박근혜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저는 한 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2014년 신년 기자회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이던 검찰이 최근 ‘통일 대박 발언은 최순실의 빨간펜에서 나온 것’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쯤되니 ‘혼이 비정상’, ‘우주의 기운’ 등 국민들이 좀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었던 언어들도 최씨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박 대통령의 연설기록비서관이었던 조인근 한국증권금융 감사조차 ‘우주의 기운이라는 표현을 직접 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지 못했거든요. (▶관련 기사 : 조인근, ‘우주의 기운’ 직접 썼나 질문에 “말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꽤 오래전에 시작됐습니다. 대통령이 된 이후 공개적인 발언 기회가 잦아지면서 ‘더’ 자주 논란이 될 뿐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박근혜 어록 아니 ‘최순실 어록’을 정리했습니다.

1. ‘사교’를 믿으니, 이제서야 이해되는 말말말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
- 2015년 5월 5일 청와대 ‘어린이날 꿈 나들이’ 행사

“(역사교과서)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 2015년 10월 22일 청와대 여야 지도부와 대통령 5자 회동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이 없고,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 2015년 11월 10일 청와대 국무회의

박 대통령이 ‘우주의 기운’을 처음 언급한 건 2015년 5월 5일 어린이날이었습니다. 이날 청와대 ‘어린이날 꿈 나들이’ 행사에 참석한 한 초등학교생이 ‘꿈이 대통령’이라고 하자, 박 대통령은 “이웃을 도와주기 위해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는 데 참으로 대견하다”며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 그리고 꿈이 이뤄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나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여야 지도부 5인이 청와대에서 만났을 때 이 같은 화법은 다시 등장합니다. 이종걸 당시 새정치민주엽합 원내대표가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게 어떤 부분이냐”고 질문하자, 박 대통령은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고 답했습니다. 또 청와대 국무회의에서는 현행 근현대사 교과서가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음을 지적하며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고,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지요. 현행 교과서로 배운 국민들의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의미일 것으로 추정돼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 같이 이해할 수 없었던 발언들은 최순실 씨의 ‘빨간펜’이 드러나며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최씨의 아버지인 최태민 목사는 1970년대 불교와 기독교, 천도교를 종합해 ‘영세교’를 만든 인물로, 우주의 기운이 이 종교와 연결된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2차 대국민사과에서 “사이비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물론 박 대통령은 ‘혼’, ‘우주의 기운’ 등의 발언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지 생각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2. 말이 안되는 ‘주옥’ 같은 비유들

물 반 고기 반처럼 정책 반 홍보 반”
-2015년 11월 12일 청와대 사회보장위원회 회의

누에가 나비가 되어 힘차게 날아가기 위해서는 누에고치라는 두꺼운 외투를 힘들게 뚫고 나와야 하듯이”
-2015년 12월 23일 핵심개혁과제 점검회의

“있는 규제를 일단 모두 물에 빠뜨려 놓고, 꼭 살려내야 하는 규제만 살려두도록”
-2016년 2월 17일 무역투자진흥회의

정부는 올해 3월 박 대통령 취임 3년을 기념해 비유집(▶관련 기사 : ‘박근혜 비유집’은 최순실 비유집? 주옥같은 말 ‘새록’)을 내기도 할만큼, 각종 연설에서 비유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정부는 이 책자에서 “박 대통령이 비유를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살아있는 대중언어로 사물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면면을 살펴보면, 비유가 의미 전달을 해치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2015년 11월 박 대통령은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물고기가 매우 많다는 뜻으로, 별 노력을 기울지 않더라도 쉽게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박 대통령의 발언 취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인 셈입니다.

12월에는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누에가 나비가 되어 힘차게 날아가기 위해서는 누에고치를 힘들게 뚫고 나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잘못된 표현입니다. 누에는 자라면 나비가 아닌 누에나방이 됩니다. 심지어 누에나방은 뚱뚱한 몸과 작은 날개를 가지고 있어 날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가장 논란이 됐던 비유는 올 2월 무역투자진흥회의 발언입니다. “있는 규제를 모두 물에 빠뜨려 놓고 살려내야 하는 규제만 살려두도록 하겠다”는 발언은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는 부적절한 비유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청와대 참모진이 아닌 최순실이라는 비선에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 같은 실수도 잇따랐을 거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3. 준비되지 않았을 때 드러나는 대통령의 ‘빈약함’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은 2012년 자서전 <아이 전여옥>을 출간하며 박 대통령의 화법에 대해 혹평한 바 있습니다. 전 전 의원은 “박근혜는 늘 짧게 답한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등이 대표적이다”며 “국민들은 처음에는 무슨 심오한 뜻이 있겠거니 했지만, 거기가 끝이다. 어찌보면 ‘베이비토크’와 다른 점이 없어보인다”고 말했습니다.

2005년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 추모식에서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이 박근혜 대표의 비옷에 달린 모자를 씌워주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2005년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 추모식에서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이 박근혜 대표의 비옷에 달린 모자를 씌워주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실제 박 대통령은 준비되지 않은 질문에 답해야 할 때 가장 실수가 많습니다.

2007년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 대선 후보 토론회를 벌이던 중 이산화탄소 배출 총량을 어떻게 줄여 나갈것이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준비를 잘 해서…배기가스 등이 조정이 될 수 있게”라며 말을 쉽게 잇지 못하던 당시 박근혜 후보는 “이산화가스, 산소가스를 배출하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산화탄소를 이산화가스로, 산소를 산소가스로 말한 것입니다. (▶관련 기사 : “이산화탄소→이산화가스, 산소→산소가스”…알고보니, 박근혜는 토론 루저?)

“그런 점에서 5·16 유신, 민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2012년 9월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당시 과거사 논란 사과

“안중근 의사께서는 차디찬 ‘하얼빈’의 감옥에서 천국에 가셔도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2016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역사적 지식의 빈약함을 지적받기도 했습니다. 2012년 대선 후보로서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 때 벌어진 민주화운동 탄압에 대해 사과하며 인혁당 사건을 민혁당으로 잘못 말했습니다. 당시 누리꾼들은 ‘자신이 하는 말이나 인혁당 사건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다면, 저런 말실수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지요.

4. 힘들 때는 잠이 최고?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
-2016년 11월 4일 2차 대국민사과

“다른 좋은 약보다 사람한테는 잠이 최고인 것 같아요
-2016년 11월 7~9일 종교계 인사들과의 만남

최순실씨도 구속되고, 박 대통령 옆에는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이 불거진 뒤 우병우 민정수석등의 사표를 수리하고, 측근 3인방인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도 교체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박 대통령은 최근 말실수로 더욱 구설에 오르고 있습니다. 2차 대국민 담화 때는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고 말해 수많은 패러디물을 양산했습니다.

2016년 11월 14일 한겨레그림판
2016년 11월 14일 한겨레그림판
7~9일 종교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박 대통령이 한 말도 논란입니다. 박 대통령의 건강을 염려하는 한 지도자의 말에 박 대통령은 “다른 좋은 약보다 사람한텐 잠이 최고인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는 겁니다. 100만명의 시민들이 주말도 반납하고 촛불을 밝히고 밤잠을 설쳐가며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홀로 ‘잘 자고 있다’는 발언으로 해석돼 더욱 공분을 자아냈습니다.

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이르면 15일 늦어도 16일에는 조사가 시작됩니다. 박 대통령은 모든 의혹에 대해 ‘나는 몰랐다. 좋은 취지였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 위기를 ‘어떤 말’로 벗어날까요. 정말 유능한 변호사를 찾으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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