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정도 떨어졌다.” 1인 미디어 ‘미디어몽구’가 17일 오후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취재한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긴 말입니다. 12일 귀국 뒤 ‘서툰’ 서민 체험으로 이미 여러 번 입길에 오른 반 전 총장, 팽목항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줬기에 그러는 걸까요.
이번에 주목할 인물은 현장에서 반 전 총장을 안내했던 박순자 새누리당 의원(경기 안산 단원을)입니다. 박 의원은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지난해 연말부터 17일 팽목항을 방문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반 전 총장 쪽 한 의원이 (세월호) 가족들 소개를 좀 부탁했고 유력 대선 주자인 만큼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소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미디어몽구는 박 의원을 두고 “어디서 미수습자 가족을 오라(가라)고 하나. 2014년 때하고 보름 전, 오늘 딱 3번만 얼굴 보이고선, 그동안 신경쓴 것처럼 반기문한테 이야기하는데 뻔뻔함에 치를 떨었다”고 적었습니다. 무엇보다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예의’가 부족했고, 막무가내로 행동했다는 겁니다. 미디어몽구 페이스북 라이브 영상(클릭)에 고스란히 기록된 반기문 팽목항 방문 현장 ‘분노 포인트’ 다섯 장면을 소개합니다.
#장면 1. 부르긴 불렀는데 이름을 몰라서…
17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반 전 총장은 오후 늦게 전남 진도 팽목항에 도착해 1시간 남짓 머물렀습니다. 분향소 분향 등을 마친 반 전 총장은 아직도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참 묘합니다. 간담회 장소에 들어선 박순자 의원은 미수습자 가족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지 연신 누군가를 향해 “(조)은화 엄마 어딨어요? 오시라 하세요. 오셔서 말씀 나누시고”라고 말합니다. 가족들이 도착하자 박 의원은 “(허)다윤 엄마 이리 오세요. 은화 엄마 이리 오세요. 다윤이 아버지 이리 오세요”라며 가족들을 반 전 총장 옆에 한 명씩 줄 세웁니다. 악수하기 용이한 대열입니다. 박 의원은 친절히 반 전 총장에게 가족들의 이름을 알려줍니다. 처음 팽목항을 방문한 반 전 총장이 이 분들의 이름을 미리 외우고 오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어쩌죠, 박 의원 역시 이름을 잘 알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자신 있게 ‘다윤이 아버지’라고 소개한 분은 사실 ‘은화 아버지’였습니다. 다시 한 번 ‘다윤이 아버지’라고 소개하지만 그 분은 권혁규군의 삼촌이었습니다.
#장면 2. 야무진 자리 배치
‘악수 신’이 끝나자 박 의원은 “총장님, 조금만 앉으시죠”라고 반 전 총장에게 권유합니다.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친절하게’ 어디에 앉을지 정해주기도 합니다. 결국 반 전 총장 왼쪽에는 은화 엄마가, 오른쪽에는 다윤 엄마가 앉습니다. <한겨레>를 포함한 언론들이 보도한 사진에서 반 전 총장은 이들 두 사람의 어깨를 부여잡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간담회가 끝나기 직전 장면인데, 결과적으로는 절묘한 자리 배치였던 셈입니다.
#장면 3. 정부를 믿으라고?
간담회에서는 조속한 인양 완료, 미수습자 보상 문제, 생존자 치료비 문제 등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은화 엄마는 “인양이 안 될까봐 무섭고, 배가 올라왔을 때 아이를 못 찾을까봐 무섭다. 4년째 팽목에 있다. (아이가) 어디 있는지 아는데 찾을 수 없다”며 애타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반 전 총장은 “정부가 세월호 침몰 때 좀 더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대응을 했었더라면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는데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 내가 정부에 있진 않지만 조속히 선체 인양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은 “세월호 특별법에 인양이라는 말이 빠졌다”는 가족들의 말에 “법에 들어갔든 안 들어갔든 예산까지 배정돼 있는 상황이니 정부를 믿으셔도 된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기술력과 일기에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은 좀 이해를 해야 될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참사 1000일이 되도록 선체 인양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반 전 총장은 법률 개정보다 정부를 믿으라는 겁니다. 은화 엄마의 말에 따르면 “(인양 표현이 들어간) 법률은 안전장치”인데 말입니다.
#장면 4. “손 좀 잡아 이럴 때”
약 15분간의 간담회가 끝나고 반 전 총장은 건물 밖으로 나섰습니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반 전 총장을 둘러싸 매우 혼잡한 상황에서 박 의원은 또 다시 은화·다윤 엄마를 찾습니다. 사전에 부탁을 하진 않은 모양입니다. 박 의원은 “은화 엄마 같이 갈래? 같이 가죠. 다른 엄마도 같이 가자”라고 말합니다. 머뭇거리는 엄마들을 향해 박 의원이 “손 좀 잡아봐 이럴 때”라고 말하는 장면이 <오마이티브이> 영상에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떤 때일까요.
두 엄마와 반 전 총장, 박 의원까지 힘겹게 발걸음을 떼지만 경호원과 기자들에 둘러쌓여 이내 위험한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은화 엄마가 두 번이나 넘어질 뻔한 겁니다. 박 의원은 “미수습자 가족 지나갑니다. 밀지 마세요. 길을 비켜주세요”라고 소리쳤지만 애초 이 상황을 만든 사람은 박 의원 본인이었습니다. ‘보여주기식 행보’라는 비판이 연일 쏟아지는 가운데 또 다시 ‘장면’을 만들기 위해 무리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듭니다.
#장면 5. 총장 때는 왜 안 오셨어요? “…”
우여곡절 끝에 팽목항을 한 바퀴 둘러 본 반 전 총장은 떠나기 직전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습니다. 2분만, 아니 1분만 시간을 내달라는 기자들의 요구에 반 전 총장은 쉽사리 응하지 않았습니다. 워낙 혼잡한 현장이라 그랬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한 기자가 “소감이 어떠시냐”고 묻자 반 전 총장은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답합니다. 쏟아지는 질문 세례를 마냥 무시하기 어려웠을까요. 하지만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재직 당시에는 왜 팽목항을 찾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침묵합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영상 출처 오마이티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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