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그린 대선여지도 ① 육아
종일 뛰어도 직장·가정에 다 미안한 워킹맘 내 처지
독박육아 없앨 칼퇴근·유연근무 약속이 와닿았다
종일 뛰어도 직장·가정에 다 미안한 워킹맘 내 처지
독박육아 없앨 칼퇴근·유연근무 약속이 와닿았다
임지선 <한겨레> 기자가 7일 오후 집에서 업무를 보면서 아이를 돌보고 있다. 성남/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취재와 집안살림 풀타임 두탕 직업 어린이집 우리애 1등등원·꼴찌하원
슈퍼우먼 꿈꾸며 허둥대 늘 미안
집에선 파김치 회사에선 ‘위험’ 취급 남성기자 육아휴직 사용하면서부터
여성기자를 리스크로 보는 시각 줄어 5년 전 아이를 낳은 뒤부터 나는 곳곳에서 죄인이다. 근무시간이 길고 돌발 상황이 많은 기자라는 직업 탓에 매일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찾는 건 남편이라 미안했고, 오후 5시면 텅 비는 아파트 1층 가정 어린이집에서 가장 늦은 6시30분에 아이를 찾자니 선생님들께 죄송했다. 아이를 찾는 일로 남편과 다투는 날도 늘어 결국 올해부터 일주일에 3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하원도우미를 고용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이젠 하루 14시간 동안 엄마 아빠를 기다리게 된 아이에게 미안하다. 그뿐인가.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한겨레신문사 편집국에서 12년차 기자의 왕성함을 보여주기는커녕 부장의 전화를 아이가 받는 웃지 못할 상황이나 만들어 미안하고, 동네 엄마들의 모임에는 잘 가지도 못하면서 종종 아이를 맡기니 미안하다. 혼자 노는 아이에게 미안해 둘째를 갖고 나니 일 욕심 많았던 스스로에게도 미안하다. 지나친 죄책감은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데 늘 미안해하니 그것도 미안하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전쟁이 돼버렸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미안하다는 말이 우리네 가족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엄마 아빠도 ‘가족 없는 노동’을 강요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의 희생자입니다.” 지난 1월, 심상정 후보가 당내 경선 과정에서 노동정책 공약을 발표하며 한 말이다. 나는 그가 내놓은 법안의 이름을 들으며 속으로 울었다. ‘슈퍼우먼 방지법’이다. 슈퍼우먼을 꿈꾸며 허둥대다 일과 가정 양쪽에 다 미안해만 하는 내 처지가 공약 위로 겹쳤다. 아무렇지 않게 공약을 파기한 박근혜 정부를 경험한지라, 급하게 진행되는 이번 선거의 공약에 큰 기대를 걸기 무서운 것도 사실이다. 심상정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내놓은 ‘배우자 유급 출산휴가 30일 확대’ 공약은 2012년 박근혜씨도 내놨던 공약이다. 공약은 공수표가 돼 여태껏 배우자 출산휴가는 유급 3일, 무급 2일뿐이다. 문재인 후보는 이를 유급 10일, 무급 4일까지 늘리겠다고 한다. 오는 10월, 둘째 낳은 뒤 내 남편은 며칠의 유급 출산휴가를 쓰게 될까. ‘여성 노동자는 위험해’ 떨칠 길, 성평등 육아휴직 어린시절, 현모양처나 좋은 엄마를 꿈꿔본 적 없다. 딸부잣집의 둘째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숏커트 머리에 바지만 입던 나는 공부든 운동이든 토론이든 ‘아들’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중학교 이후로는 ’기자’란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싶단 꿈을 꿨다. 십년전, 사랑에 눈이 멀어 결혼을 하면서도 아이는 낳지 않고 살기로 했었다. 2012년 아이를 낳았다. 사회부 경찰기자로 뛰어다니던 시절, 갑작스런 임신 소식은 충격이었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나는 일 욕심을 접고 내근 부서로 옮겼다. 5년차를 막 지난, 피가 끓는 기자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이 모순된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여성들이 경력을 쌓기 위해 일에 최대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바로 그 시기에 생리학적으로는 자녀를 출산해야 한다. 풀타임 직업을 두 개 뛰는 셈이다.” 당시엔 한겨레신문사 편집국도 충격에 휩싸였다. 처음으로 4명이나 되는 기자가 공교롭게도 한꺼번에 임신을 해서다. 인력 대책은 세워지지 않았다. 이들이 모두 산전후 휴가 90일과 육아휴직 1년을 사용하자 ‘임신한 여기자’는 고스란히 편집국의 ‘구멍’이 됐다. 언론사 중 가장 진보적 분위기인 한겨레신문사 편집국에서는 육아휴직을 전부 쓸 수 있어 당시 이를 부러워하는 타사 기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편집국 내에 여성 기자를 ‘임신해서 휴직할지도 모르는 위험(리스크)’으로 보는 시각이 알게 모르게 퍼져나갔던 것도 사실이다. 회사 분위기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본격적으로 남성 기자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면서부터다. 최근 2~3년 사이 10년차 안팎의 30~40대 남성 기자들이 잇달아 육아휴직을 사용하자, 회사는 ‘육아휴직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정 정도의 인력 공백’을 상시적 상황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최근 일년 새 육아휴직자 남녀 비율이 5 대 5 수준이 되자 여성 기자의 임신을 리스크로 보는 시각이 옅어지고 인력 공백 대책을 세우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 과정을 거치며 추상적인 구호 같던 ‘양성평등’이 저출산 문제 해결의 가장 구체적인 방안임을 체감했다. 여성 노동자만 육아휴직을 쓰는 ‘독박 리스크’ 상태에서는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남성 노동자의 동참으로 비로소 균형점을 찾게 된 셈이다. 양성평등에 초점을 맞춘 출산휴가, 육아휴직 제도 개선 약속은 맞벌이 부부에게 가장 실효성이 높다. 게다가 불평등한 사회 분위기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이 부분에 가장 적극적인 공약을 내세운 이는 심상정 후보다. 심 후보는 육아휴직 기간을 현행 12개월에서 16개월로 늘리고 3개월씩 부부가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아빠 엄마 육아휴직 의무할당제’를 도입하겠다 했다. 나머지 후보들은 육아휴직의 의무기간 법제화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공공기관과 대기업부터 남성 육아휴직 의무사용제 도입을 권할 거라 한다. 안철수 후보는 ‘성평등 육아휴직제’란 용어를 들고 나왔지만 육아휴직 뒤 90일까지 해고 금지, 근로감독 확대라는 원칙 수준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남녀 모두 육아휴직 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육아휴직 사용 기한을 만 8살에서 만 18살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물론 육아휴직의 기간과 사용 기한을 늘려준다면야 고맙지만 여성만 3년이나 독박 육아를 하게 되면 직장에서 ‘여성 직원 리스크’만 더 커질 수 있다.
임 기자가 집 근처 놀이터에서 아이와 놀고 있다. 성남/김성광 기자
‘아빠엄마 육아휴직 의무할당제’
심상정 양성평등 적극적 공약 유승민, 육아휴직 기간 3년으로
고맙지만 자칫 여직원 독박쓸수도
안철수 국공립 유치원 늘린다며
‘단설’ 줄인다는 건 ‘모순공약’ 출산 적대시하는 기업풍토 문제
저출산은 노동정책으로 풀어야 금요일 아침. 자다 깨서 엄마를 찾는 아이 손을 잡고 옆에 잠시 누웠나 싶었는데 아침이다. 오늘은 어린이집 부모 상담이 있는 날이어서 회사에 휴가를 냈다. 새학기가 시작돼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등 부모 참여 행사 일정이 많은 3~4월이면 맞벌이 부부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적응 기간인 이 시기에 아이가 아픈 경우도 많아 갑작스레 휴가를 내야 하는 날이 많아진다. 그나마 사정을 미리 이야기하면 휴가를 낼 수 있는 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나는 맞벌이 부부 중에서도 축복받은 경우에 속한다. 지난해 아이가 남편 회사의 직장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삶은 급격하게 진보했다. 이전까지 다닌 어린이집은 아파트 1층에 있는 가정 어린이집이었다. 아이를 낳자마자 집 근처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었지만 세자릿수의 대기번호는 줄지 않았다. 결국 육아휴직 복직 직전 유모차를 끌고 집 주변 아파트 단지를 직접 돌며 1층 어린이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모든 어린이집이 “자리가 없다”고 했고 갑자기 비까지 왔다. 마침내 다닐 수 있는 곳을 찾았을 때 원장 선생님을 잡고 부끄럽게도 눈물을 보였다. 20명 안쪽의 아이들이 다니는 가정 어린이집은 오전 9시 이전에 오는 아이도, 오후 5시 이후에 가는 아이도 거의 없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1등으로 등원해 꼴찌로 하원하는 원생이 됐다. 선생님들의 출퇴근 시간이 우리 아이에 의해 좌지우지되니 부담이 컸다. “어린이집에서 5시 넘어 하원하는 걸 노골적으로 싫어한다”며 고민하는 워킹맘들을 수도 없이 보았다. 결국 수많은 맞벌이 부모들은 등·하원 시간을 한두 시간 늦추고 앞당기기 위해 친정이나 시댁 부모님 신세를 지거나 등·하원 도우미를 고용하고 있다. “아이를 둘 낳고도 일한다면 여성의 월급은 고스란히 양육 보조자에게 들어간다”는 말은 상식이 되었다. 아이가 다섯살이 되면서 가정 어린이집을 졸업하게 됐을 때 고민에 휩싸였다. 남편 회사의 직장 어린이집에 계속 대기를 걸어뒀지만 고작 몇 자리 위탁 운영하는 어린이집이라 자리가 나질 않았다. 결국 남편과 내가 번갈아 휴가를 내고 유치원 입학 설명회와 추첨 행사를 쫓아다녀야 했다. 동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치원은 집 근처 초등학교 안에 있는 단설 유치원이었다. 초등학교의 남는 교실을 활용해 원장도 없이 운영되는 병설 유치원과 달리, 별도 건물을 쓰는 단설 유치원은 시설과 운영방식 등 모든 면에서 부모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국공립 유치원이다. 추첨 날 원장 선생님은 “국공립 유치원을 늘려야 할 정부가 단설 유치원을 줄이려 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곳에서도 ‘저주받은 내 손’은 탈락을 뜻하는 하얀 공을 뽑았다. 거듭되는 탈락에 좌절하던 무렵 직장 어린이집에 자리가 났다는 기적 같은 소식을 들었다.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해 일단 대다수 후보들은 확대 공약을 내놓고 있다. 현재 전국 어린이집 이용자 중 국공립 어린이집 이용자 비율은 12%에 불과한데 문재인 후보는 이를 40%까지, 심상정 후보는 50%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초등학교의 돌봄 기능 강화에도 적극적이다. 문 후보는 현재 초등 2학년까지만 있는 방과후교실을 6학년까지 돌봄학교로 전면 확대하고 돌봄교사 12만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서울 용산구의 한 유치원에서 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수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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