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전 국회부의장)과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미래기획위원회 위원)가 지난 1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문재인 정부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문재인 정부가 인수위원회라는 준비 기간도 없이 출범했습니다. 더구나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입니다. 모두 녹록지 않은 일들입니다. 하지만, 지난 9년의 실패를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주개혁정부였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잘못을 반복해서도 안 됩니다. 집권 경험이 있는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치학자인 강원택 서울대 교수에게 새 정부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들어봤습니다.
‘국민이 원하는 개혁을 하면 국민통합은 저절로 이뤄진다.’ ‘주요 개혁은 100일 안에 해야 한다.’ ‘대통령이 정당과 국회를 존중해야 한다.’
원로 정치인과 중견 정치학자는 서로 입을 맞춘 듯 같은 해법을 제시했다. 문희상(72)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강원택(55)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야당과의 연대 문제에 대해서도 “장관 빼오기 식으로 해서는 안 되며, 힘들더라도 정책 협약을 통해서 풀어나가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좌담은 지난 11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이번 대통령 선거부터 얘기해 보자. 이번 대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뭐라고 보나.
강원택(이하 강) “보수의 몰락이 가장 눈에 띈다. 이번에 홍준표 후보가 24%쯤 얻었고, 유승민 후보가 6% 정도를 얻었다. 그 둘을 합해서 30%가 조금 넘는다. 1987년 대선 때 노태우 후보 혼자서 얻은 36%보다도 적다. 보수가 무언가 변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기로에 있다.”
문희상(이하 문) “1987년 민주화 이후로만 따져볼 때 노태우와 김영삼의 보수정부 10년, 그 후 김대중·노무현의 개혁정부 10년, 그 뒤 보수가 9년을 하고 이번에 다시 개혁세력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특히 국민이 탄핵을 통해 대통령을 몰아낸 뒤 국민의 힘으로 정권을 세웠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번의 시대정신은 박정희 유산을 포함한 지난 세월에 쌓인 적폐를 청산하고, 새 국가로 개조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선택받은 것이다.”
-자유한국당에서 따뜻한 보수를 표방한 새로운 보수가 떨어져 나갔는데 보수의 분화가 앞으로 가속화될까 아니면 대선 직전 바른정당 의원 13명이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했듯이 다시 기존의 낡은 보수로 돌아갈까?
“이낙연 후보자는 말을 글처럼 해”
강 “홍준표 후보가 선거가 끝난 뒤 자유한국당을 복원한 것에 만족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던데 저는 달리 본다. 24%라는 득표율은 보수에게 안 좋은 수치다. 이게 15~16%였다면 앞으로 안 바꾸면 보수가 죽는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24%라는 수치는 그럭저럭 먹고살 정도는 되기에 망하기 딱 좋다. 이제 박정희나 그에 기반한 보수라는 것이 시대적으로 더 유효하지 않다. 차라리 좀더 충격을 줬더라면 변화가 있을 텐데 현재로선 애매하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이낙연 전남도지사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하는 등 인사를 속속 발표하고 있다. 초기 인사를 어떻게 보나.
문 “직전의 박근혜 정부가 가장 잘못한 게 인사였다. 초장부터 수첩인사니 보은인사니 해서 엉망진창이 됐다. 거기에 비하면 이번 인사는 무난하다고 본다. 이낙연 후보자는 말을 글처럼 품격 있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국회에서 고급스럽게 말을 하는데 거기에 대해 야당이 막말을 할 수가 없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보완하는 측면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나를 비서실장에 임명해놓고 한 얘기가 있다. 자기는 성격 등이 삐죽하니 두루뭉실한 내가 받침대 역할을 해달라고 하더라. 내가 볼 때 문재인 대통령은 생각은 진보적이고 개혁적이지만 태도는 온유하고 부드럽다. 그래서 조금 야무지고 추진력 있는 사람을 원했을 것이다. 그런 것은 임종석 실장이 잘한다. 조국 민정수석은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다. 즉, 검찰 개혁을 하고, 검찰 줄세우기를 안 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는 적재적소 인사다.”
문희장 더불어민주당의원
“문 정부 첫 인사는 잘돼
대탕평 등 DJ정부 3원칙과
상호 견제와 균형 중시한
노무현 정부 원칙 준수해야”
강원택 서울대교수
“노, 당정분리 막판에 후회
당 운영에 간섭하지는 말되
당과 주요 쟁점 협의해야
여당 대표와 만남 정례화 필요”
문희상 의원은 경기도 의정부 출신의 6선 의원이다. “겉은 장비지만 속은 조조”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정치감각이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또, 열린우리당에서 당의장(현재의 당 대표)과, 그 이후 두번의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을 정도로 통합과 조정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문 의원은 특히 김대중 정부 초기에 정무수석을, 노무현 정부에선 첫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해, 정권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얼마 전 <대통령>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국회부의장)은 1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연 특집 좌담에서 “집권 초기에는 개혁에 방점을 둬야 한다”며 “100일 개혁 로드맵을 짜야 한다”고 밝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강 “인수위가 없기에 인사에서 메시지를 전달한다. 조국 민정수석 카드는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담겼다고 본다. 지난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의 인선은 너무 무섭고 딱딱하고 나이가 너무 많았다. 거기에 비하면 새 정부는 젊어졌고 부드러워 보이는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비서실장 매제의 경찰청장 임명에 단호히 반대
문 “개혁정부 1기와 2기 인사에 제가 관여를 했다. 그때 원칙이 있었고, 초반에는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1기 때인 김대중 정부의 원칙은 세 가지였다. 대탕평이 첫번째였다. 지역뿐 아니라 세대까지 안배하도록 했다. 지역은 인구 비율에 따라 영남이 2명이면 호남은 1명으로 배정했다. 여성도 의무적이었다. 두번째 원칙은 적재적소였다. 정치적으로 보은할 사람도 우선순위를 정해서 공기업 감사로 주로 가도록 했다. 이들의 경우 운영 파트는 안 되고, 민주개혁적 관점에서 옆에서 얘기할 수 있는 감사는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번째 원칙이 신상필벌이었다. 노무현 정부 첫 인사위원장을 내가 맡았다. 인사수석을 신설해서 추천하게 하고, 검증은 민정수석이 하게 했다. 체크 앤 밸런스가 철저하게 이뤄졌다. 더구나 인사위원회에 지역별 출신이 골고루 들어 있어서 잘 걸러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런 경험이 있기에 인사를 잘할 것이다.”
문 의원은 2003년 노무현 정부 초기 경찰청장을 인선할 때 일화를 꺼냈다. 당시 이상업 경찰대학장이 1순위로 올라왔다. 검증 결과 모든 의혹도 클리어 된 상태였다. 그런데 검증을 담당했던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이 대통령과 자신 등 셋이 앉아 최종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상업 후보자는 안 된다. 그는 문희상 비서실장의 매제인데 그런 사람이 청장이 되면 누가 이해하겠느냐”고 말했다. 문 의원은 “매제가 탈락했지만, 그 말이 말이 되더라. 개인적으로는 기분이 쌉싸름하면서도 당시 문 수석의 원칙 준수에 달콤했다”고 밝혔다.
-정권이 성공하려면 집권 여당의 역할도 중요하고, 당정관계도 안정되어야 한다.
강 “청와대와 정당과의 관계를 노무현 대통령은 기계적으로 분리했다. 정무수석까지 폐지했는데, 노 대통령이 나중에는 이것이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퇴임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원광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강연할 때 당정 분리가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토로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에 그러한 노 대통령을 지켜봤기 때문에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문 “참여정부의 당청 내지는 당정 분리는 조금 곡해되는 부분이 있다. 그때의 당정 분리는 정당 운영에 대통령이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당직 임명이나 공천에 자기 말대로 정말로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앞서 디제이때만 해도 대통령은 당 총재였다. 당의 급사 하나도 청와대에서 임명했다. 총선 공천은 말할 것도 없었다. 노 대통령은 공천에 일체 개입하지 않았다. 대신에 당정 협의는 무진장 많이 했다. 단위를 3단계로 쪼개서 고위 당정과 실무 당정 등을 했고, 근거도 대통령 훈령으로 만들었다.”
강 “당시 의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실무적인 정책 협의는 잘됐으나 대통령이 하는 중요한 정책 결정은 집권당 의원들과 정보 공유가 안 됐다. 대표적인 게 대연정 문제였다. 그 아이디어를 내 책에서 얻었다고 했는데 내가 열린우리당 의원들 조찬모임에 초청받아 갔더니 의원들이 대통령의 뜻을 모르더라. 한-미 에프티에이(FTA)와 이라크 파병 등 다른 중요 쟁점에 대해서도 집권당과 공유가 안 됐다. 그러니 당과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됐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1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연 특집 좌담에서 “김영삼 대통령처럼 힘이 있는 집권 초반에 개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강원택 교수는 서울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땄다. 지난해 한국정치학회장을 역임하는 등 정치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영국 보수당의 역사>와 <한국의 정치개혁과 민주주의> 등 많은 책을 썼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의 전신)과의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 아이디어를 <한국의 정치개혁과 민주주의>에서 얻었던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에 맡긴 채 대통령은 팔짱 끼면 안 돼”
-한마디로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은 당을 쥐락펴락하지 않았지만, 당을 국정운영의 공동책임자로 힘을 실어주지는 않았던 것 아니냐. 그것을 나중에 노 대통령이 후회했던 것이다.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라고 표현한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문 “그렇다. 그건 분명히 당을 중시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당에 대한 불간섭과 불관여는 지금도 맞고 그렇게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체질상 노 대통령보다 당에 관여하는 것을 더 싫어할 것이다. 대신에 정책적 부분에서 당과 협의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5당 체제에서 여당은 제1당이기도 하다. 1당을 무시하고는 국회에서 아무것도 못 한다. 굳이 당청관계라고 할 것도 없이 제1당과의 관계를 잘 가져가야 한다.”
강 “집권당에 대한 설득이 안 되면 다른 당은 말할 것도 없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운영의 어려움을 겪은 가장 큰 원인은 당정 간의 불화였다. 그전 3당 합당 전후만 해도 청와대는 당 대표를 불러서 협의를 많이 했다. 그런데 그런 게 최근에 오히려 사라졌다. 문 대통령은 당 대표를 경험했으니 당과의 관계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 면에서 취임사에서 문 대통령이 민주당 정부라고 부른 것은 적절한 판단이라고 본다. 앞으로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할 때 당과 사전에 협의를 어떻게 할지 공조의 틀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문 “그런 것을 제도화할 수 있으면 좋다. 정례화도 해야 한다. 사실 미국처럼 대통령은 여야 의원 한명 한명을 다 상대해서 설득해야 한다.”
강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쟁점을 당에 던져놓고 대통령은 뒤에서 팔짱 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대통령 본인이 중요한 협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집권당과는 정례적으로 정보를 공유해야 하고, 야당에 대해서는 파트너로 인정해서 야당 대표를 가능한 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자주 만나야 한다. 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도 새 정부의 성공과 직결돼 있다. 문 대통령은 선거운동 때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을 얘기했다. 둘의 강조점이 다른데, 무엇을 우선해야 하나.
문 “어느 정부든 가장 기본적 업무는 두 가지다. 하나는 통합이고, 하나는 개혁이다. 이 둘은 함께 가야 성공한다. 통합이 없으면 개혁이 안 되고, 개혁 없는 통합은 의미가 없다. 상호 보완적으로 같이 가야 할 과제인데, 정권 초기는 개혁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왜냐하면 이번 정부 출범의 가장 큰 시대정신은 개혁과 혁신이다. 적폐청산이 거기에 포함된다. 물론 적폐청산이 인적 청산이나 정치 보복으로 연결되면 안 된다. 그게 아니라, 검찰과 국정원 개혁, 개헌을 포함한 정치 개혁 등 시스템을 고치는 일이다. 이런 개혁 작업은 로드맵을 짜서 1년 안에 가차 없이 해치워야 한다. 1년이 지나면 절대 개혁을 못 한다. 성공 사례가 김영삼 대통령이다. 그는 재산 공개,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 등의 적폐청산을 1년 안에 다 했다. 최소한 100일의 개혁 로드맵을 짜야 한다.”
“연정은 야당이 꺼릴 가능성 높아”
강 “와이에스(김영삼) 사례는 중요하다. 와이에스는 그런 배짱과 결단력도 있었지만, 제가 살펴보니까 미리 준비를 많이 했더라. 군 사조직인 하나회 청산의 경우 2월25일 대통령이 취임한 뒤 며칠 지나지 않은 3월8일에 하나회 출신의 핵심인 김진영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기무사령관을 날렸다. 그 며칠 전에 군 지휘관들을 불러서 그들의 등을 두드리면서 안심시킨 뒤에 전격적으로 숙청을 단행했다. 당시 국민들한테 크게 공감을 받았는데, 이는 그것이 당시의 적폐청산이었기 때문이다. 시대적 요구에 부응했기에 국민통합에도 도움됐다. 인적 청산이나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보복은 분열이 일어날 수 있지만, 검찰이나 국정원 개혁, 선거제도나 정당 체계 개혁, 교육문제 등을 풀어나가는 것은 국민적 동의하에 얼마든지 추진할 수 있다. 그것은 힘이 있는 집권 초반에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문재인 시대에 맞는 구체적인 과제는 뭔가.
문 “지금 상당 부분 기본 합의가 되어 있는 것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을 포함한 검찰 개혁이다. 이것을 하면 엄청나다. 그러니까 해야 한다. 대통령의 결심과 의지만 있으면 국회를 설득하기도 쉽다. 국민과 함께하기에 연대나 협치도 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조국 민정수석을 임명한 것은 바로 그러한 검찰 개혁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 같다. 그런데 과거 정부에서도 의지가 있어도 실패하더라.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민정수석(문재인)과 법무장관(강금실)을 검찰 출신이 아닌 사람들로 임명했지만, 검찰 개혁에 실패했었다.
문 “저는 국회 관계가 중요하다고 본다. 경찰 수사권 부여 등은 일종의 혁명적인 내용인데 그것을 하려면 법률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국회가 중요하다. 연대와 협치 틀에 대한 구상이 있어야 하고, 실제로 있으리라고 본다. 단순히 저쪽 당의 사람을 장관으로 발탁하는 등 섣불리 건드려서는 그 당에서 볼 때 배신자 한 명을 만드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될 일도 안 된다. 당 대표나 원내대표가 나서서 여야정협의회나 국정자문위 등 협치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서 연정의 정책협약을 해서 명분을 줘야 한다. 예를 들어 정의당하고는 노동문제에 합의한 뒤에 입각을 시키는 것이다. 그런 바탕에서 장관을 준다면 일사천리로 개혁이 진행된다. 그런 것 없이 정의당 사람을 장관 시키면 그는 그 당에서 왕따 당한다. 어렵더라도 첫 단추부터 잘 풀어가야 한다.”
문 “집권 초에는 개혁이 우선
검찰 개혁하면 통합 저절로”
강 “YS ‘하나회 척결’ 참조를
힘 있을 때 전격적으로 해야”
문 “장관 빼오기식 아니라
야당과 정책협약부터 해야”
강 “국회는 또다른 자율기구
대통령의 의회 인식 바꿔야”
강 “개혁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절박한 합의가 있느냐고, 둘째는 입법 과정이다. 정치에서는 명분이 중요하다. 검찰 개혁은 탄핵사건 이전부터 사회적 공감대가 크다. 따라서 명분은 있다. 야당에도 이런 좋은 작업을 같이 하자고 정치력을 발휘해서 끌어들여야 한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의 협력을 얻지 않으면 일을 하기가 어렵다. 관건은 함께 하는 방식인 것 같다. 연정에서부터 협치 등 연대의 방식이 여럿인데 무엇이 현실성이 있나.
강 “제도적으로 만들어진 연정과 비슷한 형태는 정당으로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정의당 같은 경우 연정에 합의해서 정부에 들어가면 야당일 때 요구했던 내용과는 할 수 있는 게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밖에서 야당일 때는 선명하게 100을 주장했다면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노동정책은 15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지지자들은 저게 뭐냐고 반발하게 된다. 연정 참여가 독이 될 수도 있다. 영국에서도 몇해 전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이 연정을 했는데 그 후 자유민주당 지지율이 바닥이 됐다. 연정을 하게 되면 지지자들이 원했던 것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실패에 대한 책임은 지게 된다. 따라서 연정 대상이 되는 상대방이 받아들일지에 회의감이 든다. 공식적인 형태의 연정보다는 그들의 요구를 일정하게 받아들이고, 중요 정책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정치력에 기반한 협치가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 “똑같은 얘기다. 나도 장관 하나 시켜준다면서 사람 뽑아오기 식으로 진행하면 연정이든 뭐든 개판 된다고 본다. 당 대 당으로 5개 당이 함께할 수 있다면 제일 좋지만 그것은 안 될 것이다. 그래서 기본은 국회의원 하나하나를 접촉하면서 해야 한다. 그것을 하려면 대통령 의지가 중요하다. 나는 머슴일 뿐 국민이 주인이니까 국민 대표로 모인 국회에 대해 대통령이 머슴이 되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못 할 게 없다. 대통령이 먼저 손 내밀어야 한다. 다른 정답이 없고 왕도가 없다.”
지난 11일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과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오른쪽)가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개혁과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대통령은 국민의 대표들이 모인 국회를 존중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국 대통령은 입법에선 강하지 않아”
-국민의당과 민주당이 연정한다고 하면 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틀을 만드는 게 쉬울까?
문 “힘들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다. 꼬셔서 장관을 데리고 오면 안 된다. 나는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도 그런 틀을 위해서 그쪽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국민의당과는 통합하는 것이다. 뿌리가 같기 때문에 나는 국민의당은 연정 이전에 통합의 대상이라고 본다.”
강 “국민의당은 앞으로 (독자 생존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대선에서 호남에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득표율을 보면 광주와 전남은 6 대 3, 전북은 6.5 대 2.5였다. 호남의 국민의당 의원이 23명이나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차이는 엄청나다. 호남에서 한때 문재인의 대체카드로 여겨졌던 안철수가 호남 유권자들에 의해 버려졌다는 의미다. 안철수의 가능성이 없어지고 문재인으로 쏠렸으니 호남 의원들이 동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장관으로 두명 정도 데려오면 붕괴될 수도 있다고 본다.”
문 “붕괴시키면 안 되고, 명분을 줘야 한다. 명분은 정책협약보다 나은 게 없다. 당 대 당 통합이 제일이지만 그게 안 되면 연대나 협치라도 해야 한다. 이런 면은 다르되 이런 것은 같이 간다는 내용의 협약서를 만들어야 한다. 누가 봐도 두 당은 뿌리가 같고, 남북문제는 같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장관 몇 자리를 주면 된다.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또, 탄핵에 찬성했던 바른정당하고도 연대가 가능하다.”
강 “맞다. 협치를 위해서는 대의명분이 제일 중요하다.”
-역대 대통령들은 후보 때는 국회를 존중하겠다고 해놓고는 청와대에 들어가면 태도가 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떨 것 같은가.
문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 알기를 파트너는커녕 시녀나 거수기로 생각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을 할 때였다. 나와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에서 법안에 합의를 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죽어도 안 하겠다고 56일을 버티면서 여당과 야당 탓만 했다. 대통령이 문제를 풀기 위해 자기가 주도적으로 전화도 하고 해야 하는데 거꾸로였다. 황우여 대표가 전화를 하는데 바로 하지도 못하고 3인방한테 전화해서 겨우 바꿔달라고 하더라. 문 대통령은 그런 것을 잘 아니까 잘할 거라고 본다.”
강 “대통령이 하나의 기구이고, 국회가 또다른 기구이다. 저기는 나랑 별도의 또다른 기구라고 생각해서 국회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국회도 대통령을 존중해야 한다. 그동안에는 대통령이 국회를 수직적 관계로 봤다. 내가 우위에 있으니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너희가 해줘야 한다, 그걸 안 하는 것은 너희가 무능력하거나 나쁜 놈들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대통령과 국회 관계가 풀릴 수 있다. 이건 대단히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강하고 무서운 대통령으로 국민들이 생각했지만, 입법 과정에서 보면 매우 취약했다. 정권이 주요하게 생각했던 법안들이 통과 안 된 게 많다. 국민 삶과 관련해서는 검찰을 틀어쥐는 게 아니라 법을 통과시키는 게 중요하다. 한국의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결코 강한 대통령이 아니다. 그것을 인식하고, 내가 노력하고 애써야만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대통령이 깨달아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여야 정당과 의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문 “현실적으로도 그게 해결책이다. 대통령이 그걸 안 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 문 대통령이 굉장히 젠틀한 분인데 요새 야당 대표들을 직접 찾아다니는 것을 보면 그렇게 할 것 같다.”
“외부 조언 듣되 공조직에서 걸러야”
-국정운영과 관련해 논란이 되는 문제 중 하나는 비선이라고 부르는 외부 조언자 그룹이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문 “비선이라고 말하기는 그렇고, 대통령에게는 외부 조언자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없으면 외로운 대통령이 되고,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판단력을 상실한다. 대통령이 3년차가 되면 자기가 다 옳다고 생각하게 된다. 내부에서 참모들이 말해도 ‘네가 뭘 알아, 내가 다 알고 있는데’라는 식으로 된다. 그래서 역사와 대화를 하겠다느니, 법대로 하자고 흔히 말한다. 법대로 하자는 것은 국민 말을 안 듣겠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막기 위해서는 외부 조언자가 꼭 필요하다. 가능한 한 외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얘기를 들어야 한다. 디제이는 정확한 상황을 알기 위해 매일 외국신문까지 포함해서 한시간반 동안 신문을 봤다. 노무현 대통령은 두 사람한테 정기적으로 조언을 받는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았다. 유시민과 문성근이었다. 노 대통령이 그것을 참조하라고 나한테 줬다. 그런 외부 조언자가 필요하다. 다만 최순실 같은 비선은 절대로 안 된다.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과 관련해서 ‘이렇게 말하세요’라고 하는 정도였다면 괜찮다고 본다. 그러나 그들은 공적 시스템을 없애고, 사적인 라인에서 인사와 예산을 주물렀다. 그것은 국정농단이다. 참여정부 때는 그런 외부 조언이 들어오면 그것을 공식 참모회의 할 때 검토를 했다. 물론 당시에 그 사람이 누군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좋은 의견이고 실현 가능하면 수용하고, 아니면 폐기했다. 절대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외부 조언도 이렇게 공적 시스템으로 걸러줘야 한다.”
강 “임종석 비서실장이 예스맨이 안 되겠다고 했지만, 옆에서 있다보면 대통령이 왜 저렇게 하는지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 그러면 대놓고 ‘노’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누군가가 요즘 분위기가 이렇다는 것을 전달해야 한다. 그 역할을 할 건강한 외부 조언자는 필요하다. 다만, 그 조언은 참고용이 되어야지 정책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인이 되면 안 된다.”
-대통령의 측근 그룹 문제도 국정운영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는 이른바 3철이네 뭐네 하면서 논란이 많았다. 그런 우려가 지금도 일각에서 없지 않다.
문 “노무현 정부 때의 측근 얘기는 많이 뻥튀기가 됐다. 이름이 좋아서 3철이지, 이호철 같은 사람은 이번 대선 때도 그랬지만 당시에도 조신했다. 홍보 쪽에 힘이 컸던 양정철 비서관을 주로 겨냥한 것인데 그가 언론 개혁에 총대를 멨기 때문이다. 기자실 대못질 등 언론 개혁 방식에 대해서는 지금도 옳았다고 말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양 비서관은 글재주가 있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그의 글을 선호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자기 스타일에 맞는 사람을 쓰는 것을 말릴 수는 없다. 그건 문제가 아니고, 힘을 가진 자리에 가서 권한을 남용하는 게 문제다. 양 비서관이 어떤 일을 맡더라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통령한테 측근이 없다고 하면 그것도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문제가 있다.”
강 “대통령이 뭔가 긴밀하게 상의하고, 문제나 고민이 있을 때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있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과거에는 일상적 정책이나 정치를 청와대에서 결정해서 끌고 나갔다. 그러나 실제로 일을 집행하는 것은 장관들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봤듯이 대통령의 말을 장관이나 수석들이 받아적는다고 일이 실현되는 게 아니다. 소수의 측근들에게 정책적 자문이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으나, 일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는 장관들이 하도록 해야 한다. 그들에게 힘을 주고 내각에서 적극적인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청와대가 미주알고주알 간섭하면 안 된다.”
진행·정리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