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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정의화 “한국보수 ‘안하무국민’…기득권 안주해 완전붕괴”

등록 2017-07-19 09:31수정 2017-07-19 09:38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막전막후 153
정의화 전 국회의장 인터뷰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합리적 보수’다. 1996년 15대 총선 부산 중구·동구에서 신한국당 공천으로 당선됐고 19대까지 내리 5선을 했다. 2011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2014년 6월부터 2016년 5월까지 19대 후반기 국회의장을 했다. 의장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과 여러 차례 충돌했다.

의사 출신인 그는 인체와 마찬가지로 사회도 균형과 조화가 무너지면 병이 든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의장직 퇴임 이후 인터뷰나 방송 출연을 자제했지만 <한겨레> 인터뷰에서 보수 혁신에 대한 강한 소신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인터뷰는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한국의 비전’ 사무실에서 했다.

-보수가 무너졌다는 데 동의하나?

=완전히 무너졌다. 터미널에 와 있다. 잔재가 남은 상태다.

-보수 정치는 2016년 총선, 최순실 게이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2017년 5·9 대선을 거치며 몰락했다. 근본 원인이 뭘까?

=근원을 따지면 해방 후에 반민특위를 해산해 민족정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지금 그 얘기를 다 할 수는 없고.

-보수 정치, 보수 정당의 몰락을 중심으로 설명해달라.

=보수 정당의 시발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에 박정희 대통령 주도로 만든 민주공화당이다. 그 이후 시대가 바뀌면서 시대의 가치에 걸맞게 보수도 진화해야 하는데 보수가 진화를 안 한 것이다. 못한 것이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부패하기 시작했다.

-부패가 무슨 뜻인가?

=교만하고 기득권에 안주한 것이다. 국민에 대해서 오만한 ‘안하무국민’(眼下無國民)이 된 것이다. 아주 대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 새누리당 공천이었다. 그때 내가 얼마나 화가 났으면 공천이 아니라 사천(私薦)이라고 했겠나. 국민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고스란히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총선에서 참패했다.

=그런데 그 이후가 더 문제였다. 전혀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더 기세등등했다. 뭘 믿고 그랬겠나. 박근혜라는 대통령의 권력을 믿은 것이다. 당내 친박그룹 중에는 완장을 찬 그룹이 있었고, 완장을 벗은 그룹이 있었다. 나머지는 목소리를 제대로 못 내고 침묵하며 따라갔다. 묵시적인 동의 속에서 흘러갔고 변화하지 못했다. 이를 본 국민이 “아 저건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징후가 있었다는 것인가?

-그렇다. 내가 의사니까 질병으로 설명하겠다. 안에서 골수염이 곪아서 터지려는 상태였다. 바깥쪽에는 벌써 벌겋게 염증이 보였다. 서둘러서 근원적인 치료를 해야 했다. 그런데도 손을 쓰지 않았다. 결국 골수염이 터져서 다리를 자르는 상황까지 왔다.

-다리를 자른 것인가.

=나는 그렇게 본다. 정리하자면 근본 원인은 보수가 개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패거리 정치로 국민을 무시했다. 정치력 부재로 야당과 대화와 타협을 하지 못했다. 또 최순실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공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했다. 그래서 보수 정권이 몰락했고 국민의 외면을 받은 것이다.

-보수는 이제 끝난 것인가?

=역설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제대로 된 대한민국의 새로운 보수가 탄생할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다고 본다.

-보수 몰락의 원인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해보자. 사람 때문이라는 진단도 가능하지만, 뭔가 좀 더 구조적인 원인이 있지 않을까?

=사람의 문제와 구조의 문제가 엮여 있다고 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면 사람의 문제가 훨씬 크다. 그러나 시스템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적, 물질중심적 분위기가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던 수석이나 실장 등 사람들로 하여금 정명을 못하게 했다.

-정명이라고 하셨나?

=그렇다. 공자가 말한 정명(正名)을 못하게 했다. 이름자에 걸맞게 올바로 그 직을 수행하는 것이 정명이다. 대표적으로 안종범 수석 같은 경우에는 틀렸으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사회적인 분위기가 가로막았다. 특히 배웠다는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된다. 우리 사회가 공도와 정명을 상실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패거리 정치에다 공권력 사유화
대선 참패 자각·반성 굉장히 부족

한국당·바른정당 이대로 합치면
‘혁신없는 재통합’ 과거회귀일뿐
내년 지방선거 지더라도 거듭나야

-보수 정당 풍토의 문제는 없을까?

=있다. 김영삼·이회창·이명박·박근혜 20년을 보면 된다. 끼리끼리 문화, 계파 정치, 보스 정치가 판을 쳤다. 그 앞에서는 ‘예스’만 해야 영전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 우리 같은 사람은 늘 변방에 있을 수밖에 그런 풍토였다. 이건 진보 쪽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어쨌든 보수 정당은 그랬다. 비판하려 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했다. 친박들도 개개인이 이미 그런 풍토에 푹 젖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앞에서 설치는 사람, 으스대는 사람, 이른바 완장 찬 친박들은 그 개인의 문제도 있다고 본다.

-정부 주도 산업화 프레임의 한계, 양극화 해소의 실패 등에서 보수 몰락의 원인을 찾는 견해는 어떻게 평가하나?

=동의하는 편이다. 시대가 바뀌면 보수 정당의 정책도 발전하고 변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수 정당은 성장에 주력하지만 분배를 무시하면 안 된다. 50 대 50으로 가야 한다. ‘더불어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시장자본주의로 나타나는 양극화는 전세계적 현상이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점점 더 심해져서 80 대 20, 90 대 10, 1 대 99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악화됐다. 그런데 과연 보수 정당이 제대로 정책을 내고, 제대로 변화했나? 하지 않은 것이다.

-정치 얘기를 해보자. 총선과 대선에서 보수 정당이 이번처럼 심하게 무너진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왜 그랬을까?

=국민의 마음속에 불만이 차서 응어리로 고였다. 세대별로 20대는 일자리, 30대는 결혼이나 거주, 40대는 직장 문제가 있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가득 차 있다가 이번에 소위 말하는 촛불집회, 시민혁명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10만, 20만, 100만 이렇게 커지면서 에너지가 분출했다. 그래서 보수 정당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정책이 없었기 때문에 한꺼번에 무너진 것이다.

-대선 이후 보수 정당이 반성을 하고 있다고 보는가?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자각과 반성이 굉장히 부족하다고 본다. 말은 반성한다고 하겠지. 그러나 반성은 마음 깊숙한 데서 일어나야 한다. 입으로만 해서는 안 된다. 립서비스나 무대에 올라가서 절하는 그런 식은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처절한 반성이 필요하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왜 반성도 못 하는 것일까.

=기득권의 껍질 속에 너무 오래 있었다. 껍질을 깨고 나오는 추동력이 약하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과거의 덫, 과거의 껍질을 치고 나오지 못하고 있다. 기득권에 완전히 안주해 있다. 자기희생 없이 해보겠다는 것이다. 돈으로 따지면 수백 조 원에 해당하는 국가손실을 입히고 대한민국의 명예를 떨어뜨려 놓고도 “이건 내 잘못이요”라고 책임지고 정계를 은퇴하거나, “내가 잘못 살아왔다”고 말하는 정치인이 하나도 없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내가 대통령 출마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되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바로 책임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 때 부산 선대위원장직을 했기 때문에 어쨌든 나도 책임이 있다. 내가 정치를 떠난 게 다 그런 것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정치계에 책임정치가 없어졌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변명하고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고 책임을 전가하는 잘못된 풍조가 생겼다.

-보수 혁신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물론이다.

-보수 혁신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혁신은 개혁이다. 개혁은 혁명과 무변화 사이쯤 될 것이다. 혁신과 개혁을 하려면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반성이 우선하지 않으면 혁신이 안 된다. 기득권에 안주해 온 것은 아니었던가, 권력에 아부하고 권력을 너무 지향한 것은 아니었던가, 권력에 너무 나약하지는 않았나, 내가 옳으니까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의 강압적이고 독선적인 리더십을 당에서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우리가 국민을 눈높이로 쳐다보고 국민을 위한 정책을 해 왔는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지 않았던가 등등 수많은 반성을 하고 난 뒤에야 그다음에 혁신이 가능한 것이다. 하나씩 바꾸어 가면 되는 것이다.

-보수가 다시 세워야 할 가치가 뭘까?

=공동체에 대한 책임, 법치주의, 그러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 약자에 대한 배려, ‘더불어 함께 잘 사는 사회’, 이런 것이 보수가 앞으로 갖춰가야 할 덕목과 가치라고 생각한다. 공동체 발전이라는 것이 시장, 경제, 효율성의 관점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공동체, 인간이 우선되는 공동체, 과정과 절차가 존중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정책을 많이 개발해야 한다.

-바른정당 창당이 보수 혁신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바른정당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다. 제대로 된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자유한국당 내에도 건전한 보수적 가치를 지닌 정치인들이 많이 있다. 과거 보수 정당에서의 잘못을 반성하고 속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역사적 소명이 필요하다.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의 건전한 가치를 지닌 보수 정치인들이 함께해야 한다.

-합쳐야 한다는 뜻인가?

=결국은 세력을 합쳐야 한다. 전체가 합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체가 합치면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력을 합쳐도 그것만 갖고는 안 된다.

-또 뭐가 필요한가?

=표의 등가성, 비례성을 지킬 수 있는 선거제도가 필요하다. 헌법에 근거 조항을 넣어야 한다. 그에 따라 정당법, 선거법을 바꿔야 한다. 현재의 다당제는 인위적이다. 새누리당이 하도 잘못해서 생긴 다당제다. 개헌을 통해서 제도적인 다당제를 만들 수 있게 되면, 보수적 가치, 중도보수적 가치, 진보적 가치, 중도진보적 가치를 가진 여러 정당이 만들어질 것이다. 여러 정당이 연정을 통해 안정적으로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계개편이 아니라, 개헌을 통한 정치제도의 혁신이 가능하다는 얘긴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런 것도 필요하다. 국회의장을 하면서 보니까 제대로 된 보수가 뭔지, 제대로 된 진보가 뭔지 가르치는 곳이 없더라. 마쓰시타 정경학숙식으로 제대로 교육을 하는 곳이 없다. 또 지방자치를 20년간 했는데도 좋은 정치인들이 많이 올라오지 못하고 중앙정치권에 예속되어 있다. 진보 정당의 경우 운동권 출신들이 리더그룹의 주를 이룬다. 보수 정당은 리더그룹이 기득권층, 권력을 가진 엘리트층 출신이 주를 이룬다.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수적 가치가 뭐겠는가. 나는 거부감을 갖고 있다. 수구적인 것이지 진정한 보수적인 것이 아니다.

-보수 정치인들을 기르는 교육기관이 없다는 얘긴가.

=시간을 갖고 지금부터 준비해서 정경학숙 같은 곳을 만들어야 한다.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교육의 메카를 만들면 된다. 우리는 연구자들이 골몰할 수 있는 싱크탱크도 없다. 여의도연구원은 정당정책연구소다. 제대로 하는 연구도 없다. 정경학숙, 싱크탱크가 많이 생길 수 있어야 한다.

-지방정부에서 정치인을 양성할 수 있는 방안도 가능할까?

=물론이다. 지방이 제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 지방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재정도 갖춰줘야 한다.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으로 가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정경학숙 이상으로 좋은 정치인들이 길러질 수 있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혁신이 가능할까?

=현재까지 나타난 것을 가지고 판단할 때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내에 있는 건전한 보수적 가치를 지닌 정치인들이 언젠가는 결단을 해야 한다. 새로운 보수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바른정당, 그리고 외부의 건전한 30대~50대 합리적 보수, 중도 보수의 가치를 지닌 사람들과 합해서 새로운 보수 정당이 태어나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 전에 가능할까?

=시기적으로 너무 짧다. 당장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내년 지방선거에서 보수가 똑같이 패배하는 한이 있더라도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 재통합은 안 된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이 아무 내용 없이 재통합하는 것은 보수 정당의 미래를 봐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념의 낡은 틀을 깨고 ‘합(合)의 시대’를 만들어가자고 제안하고 있는데 무슨 뜻인가?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는 뭐냐. 대한민국 국민이 서로 행복을 느끼면서 함께 잘 살 수 있는 그런 행복한 사회다. 건강 사회가 되려면 신뢰가 충만하고 투명해야 한다. 독재와 민주가 대립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또 보수와 진보, 이념의 시대를 뛰어넘는 21세기 문명의 시대에 왔다. 정부도 과거 수직적인 1.0 시대에서 지금은 최소 3.0 시대다. 정부와 시민사회와 전문가가 함께 논의하고 숙의해야 한다. 절차와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번에 원전, 과거 4대강,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을 봐라. 국가와 민족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인데 어느 날 갑자기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보수 혁신에 대해 마무리 당부를 한다면?

=눈알의 움직임을 의학에서 '콘저게이트 무브‘(conjugate move)라고 한다. 같은 각도로 한꺼번에 움직여야 물체를 볼 수 있다. 뇌도 그렇다. 한쪽은 오른쪽으로, 한쪽은 왼쪽으로 가자고 하면 안 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화와 균형이다. 조화를 이루고 균형을 이루는 정치를 하지 않으면 제대로 갈 수 없다.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보수와 진보가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지금 그게 깨졌다. 진보는 좋을까? 아니다. 진보가 포퓰리즘과 독선으로 빠지면 보수의 잘못을 그대로 저지르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보수는 당연히 개혁을 해서 새로운 보수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당의 대표나 정치 지도자들이 정말로 대오각성해야 한다. 이번 개헌은 사리사욕이나 당리당략을 떠나서 역사의식을 가지고 해야 한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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