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업재해로 최근 숨진 하청업체 비정규직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 앞에서 자유한국당 임이자 소위 위원장의 회의 내용 설명을 듣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는 이른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이하 산안법) 논의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다. 자유한국당이 재계의 반발 논리를 들어 산안법이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공개토론’을 제안하면서 국회 상임위원회 논의에 제동을 건 탓이다. 여야는 27일 본회의를 앞두고 같은 날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를 다시 열어 이견을 좁혀보겠다는 방침이지만, 자유한국당이 공개토론 요구를 굽히지 않고 법안 자체에 부정적인 태도를 내비치면서, 산안법의 연내 처리는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회 환노위는 26일 고용노동소위원회를 열어 ‘위험의 외주화’ 금지를 비롯해 산업 현장의 안전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산안법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8개 쟁점 가운데 사업주에 대한 책임 강화(도급 책임 범위)와 양벌규정(과징금 부과액 상향) 등 2개 쟁점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소위의 합의가 불발된 뒤 여야는 간사 협의와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 회동을 통해 접점을 모색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고, 본회의를 앞두고 다시 회의를 열어 산안법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국회 환노위 고용노동소위원장인 자유한국당 임이자 의원은 간사 협의 뒤 기자들과 만나 “도급인 책임 강화와 관련해 다시 한번 이해당사자들을 모아 공개토론을 하자는 소위 위원들의 의견이 나와 이를 간사 간 협의에서 논의했다”며 “기한보다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공개토론을 하고 나서 법을 통과시켜도 늦지 않다”고 밝혔다. 임 의원은 산안법의 27일 본회의 처리 가능성과 관련해 “일단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고, (본회의 당일) 아침에 각 당별로 입장을 정리해 이야기하면 진전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애초 여야는 지난 24일 회의에서 정부가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전부개정법률안’ 처리에 뜻을 모은 만큼 이날 최종 합의가 나올 것이란 전망이 높았다. 8개 쟁점 가운데 유해·위험 작업에 대한 도급 금지, 하청의 재하청 금지, 작업중지권 보장, 보호 대상 확대, 산재 예방계획 구체화 등의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자는 데에 여야 간 원칙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급반전된 건 이날 오후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법안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부터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에서 “김용균씨의 사망을 보며 정말 안타까운 죽음이고 다시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법조문이 굉장히 많아 환노위에서 제대로 검토해 합의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강사법과 근로시간 단축법을 합의해줬는데 잘못할 경우 부작용이 크다는 것을 많이 봐왔다”며 “산업현장의 제대로 된 안전을 담보하는 법이 되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용기 정책위의장도 “산안법이 이대로 가게 되면 대한민국 산업계 전체를 민주노총이 장악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원청의 책임이 무한정 확대되면 기업 경영 존립 기반이 와해된다”는 주장을 폈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한국당에서 못 받을 내용이 이미 합의된 내용 안에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환노위원들이 ‘산안법이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지 못해, 기업 등의 우려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최근 건설협회 등 재계 관계자들은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찾아 산안법 ‘졸속 합의’에 대한 우려를 적극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이 갑작스레 공개토론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여당은 물론 다른 야당도 ‘자유한국당의 주장처럼 이해당사자들이 참석하는 공개토론을 다시 하자는 건 사실상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자는 얘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환노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은 자유한국당의 공개토론 주장에 대해 “정부가 지난 2월 입법예고를 하고 11월 산안법 전부개정안을 내기까지 수십차례 의견을 듣고, 공청회도 했다”며 “합의가 안 되는 쟁점도 아닌데 다시 토론회나 공청회를 하자는 것은 쟁점을 다시 원래대로 돌리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환노위 간사인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도 “그간 한국당 의원들이 문제제기했던 건 다 해소시키고 보완했는데, 왜 이제 와서 다시 공개토론을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학용 환노위원장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산안법의 연내 처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정치가 생물이니까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면서도 “현재로선 산안법의 처리가 어렵다”고 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 역시 이날 열린 한국당 의총에서 지난 15일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의 12월 임시국회 합의 당시 산안법 개정안 처리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은 12월 임시국회 회기가 1월15일까지인 만큼 논의할 시간이 더 있다고 강조한다. 27일 처리하지 않아도 임시국회 남은 기간 동안 추가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산안법 자체에 대해 자유한국당 내부 기류가 부정적으로 흐르면서, 실제 논의가 진전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정애 송경화 정유경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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