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림 연세대 교수.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정치권이) 이 호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절실함을 느껴야 합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지난 23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공전 중인 정치권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선거제도 개혁의 의미에 대해 “작은 제도를 바꾸는 게 아니라 정치 본래의 목적과 역할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선거제도 개혁은 (정당득표율보다 의석을 더 가져가는) 초과의석을 통해 과다대표되는 비민주적 기득권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하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위촉한 18명의 자문위원단 가운데 한명이다. 진보·보수 성향을 망라해 구성된 자문위는 지난달 9일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국회의원 수 360명으로 증원, 선거연령 만 18살로 인하’ 등을 담은 의견서를 냈다.
그는 최다득표자 1명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가 중심이 된 현행 승자독식 선거제도로 구성되는 의회는 갈등 해결이라는 정치 본연의 기능이 떨어진다고 했다. 그는 “현재 총선의 단순다수대표제에서는 ‘산 표’(당선자를 찍은 표)와 ‘사표’(낙선자를 찍은 표)가 거의 같다. 대통령제도 평균 유권자의 34%, 투표자의 43%만 지지하는 대통령이 100% 권력을 행사하는 승자독식 형태”라며 “본인이 받은 지지율을 넘는 권력을 얻기 때문에 야당이나 국민의 흔쾌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저항을 받는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국회는 반대와 거부가 토론과 타협을 압도하는 투쟁의 장이 된다고 짚었다. 그는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과 야당은 정부·여당의 실패가 자기들의 집권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에) 동의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그는 민심이 지지하는 만큼 의석수를 갖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비례성 정신’이 갈등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의 의사가 비례해서 국회와 정부 정책에 정상적으로 대표되면 정책에서 소외되는 국민이 적어지고 갈등이 적은 정치체제를 갖게 된다”고 했다.
그는 “역대 총선에서 항상 제1당은 (자신들이 얻은 표보다) 9.94% 더 초과해서 의석을 얻었다”며 “제1당이 많이 먹고 들어가니까 과도한 이익을 보고 나머지는 과소대표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짚었다.
그는 연동형 비례제에 특히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에 대해 “손해를 보라는 게 아니라 국민이 표를 준 만큼만 의석을 가져가라는 것”이라며 “여야 누구에게나 원칙이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유한국당은 명분도 논리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다대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여성·청년·비정규직·다문화·노인 등 다양한 계층의 이해를 (의회 정치에) 반영하지 못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특히 그는 “누구의 표도 배제돼선 안 된다. ‘1표1수(one vote, one counting)=1표1가치(one vote, one value)’가 돼야 한다. 1인1표에 만족하면 실질적 대표성과 비례성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착 상태에 빠진 선거제도 개혁 문제를 푸는 한 방편으로 “정치 개혁과 헌법 개혁의 교환”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회는 국정조사, 국정감사권 등 ‘소극적 권한’을 갖고 있어 야당은 여당에 반대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대통령이 가진 개헌발의권, 법률안 제출권 등 초과권력을 덜어내고, 국회에 예산권이나 감사권 등 ‘적극적 권한’을 주는 방향의 헌법 개혁 논의가 함께 이뤄진다면,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자유한국당 등을 더 끌어당길 수 있을 것이란 취지다.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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