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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기대하는 것

등록 2019-08-09 19:22수정 2019-08-10 12:22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년사 → 3·1절 기념사 → 8·15 경축사 → 국회 시정연설’

대한민국 대통령의 1년은 네번의 중요한 연설을 차례로 준비하며 흘러간다고 한다. 정부와 대통령한테 그만큼 중요한 연설이라는 의미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하는 참모들은 연설문 초안을 만들기 위해 짧게는 한달, 길게는 몇달 전부터 머리를 쥐어뜯으며 일한다. 일주일에 몇번씩 내보내는 축사나 회의 들머리발언과는 무게감이 다른 일이다. 이 네번의 연설은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검증받는 무대이자, 그 시기 정부가 국민과 함께 이루고 싶은 목표와 지향점을 밝히는 고도의 통치행위이기도 하다.

연설마다 강조하는 분야가 다르기 마련인데,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8·15 연설을 통해 자신의 역사인식과 그에 기반을 둔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구상을 밝히는 데 공을 들였다. 그 청사진의 뼈대는 역시나 한반도 문제를 비롯한 남북 관계, 한-일 관계였다.

그중에는 김영삼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처럼 8·15 경축사에 더해 ‘온몸으로’ 또는 ‘행동으로’ 나라 안팎에 메시지를 전한 사례도 더러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 직후 보란 듯이 광화문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 공사를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절을 코앞에 둔 7년 전 오늘(2012년 8월10일),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독도를 방문하고 며칠 뒤 일왕의 사죄를 요구하는 발언으로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반대로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8·15 연설처럼 한반도 문제나 한-일 관계를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8개월 전 졸속으로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의식한 ‘고의 침묵’이었다.

2019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중요한, 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8·15 경축사 연설을 앞두고 있다. 광복절은 닷새 남았고, 청와대에서는 일찌감치 완성해둔 초안을 놓고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비서실장의 주재로 비서관급과 수석급 참모들이 각각 참여하는 ‘연설문 독회’도 열리고 있다. 독회에서 나온 의견들이 취합되고, 연설문 원고는 대통령과 참모들 사이를 수십번 왔다 갔다 하며 수정되는 중이다.

중요한 연설이다 보니 훈수도 쏟아진다. 훈수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는 김대중 대통령이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맺은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이 단골 메뉴다. 일본에서 납치까지 됐던 그가 과거를 묻지 않고 국익의 틀에서 한-일 관계를 풀어냈다는 점이 새삼 강조된다. 민주화 이후 가장 주목할 만한 한-일 관계 진전을 이뤄낸 대통령이었으니 그가 인용되는 게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많은 훈수자들이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는 게 있다. 지금 문 대통령은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외교 문서에 적어 넣은 오부치가 아닌, 과거사를 부인하고 남북 교류를 트집 잡으며 마침내 보복 행동에 돌입한 아베 신조 총리를 상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디제이(DJ)였다면 강제징용 문제도 이렇게 악화시키지 않고 국익을 생각해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을 것”(박지원 의원)이라는 유의 비판이 공허한 이유다. “일본이 8·15 메시지를 주시하고 있고, 미국도 예민하게 보고 있다. 강한 메시지를 내서는 안 된다”(여당 중진의원)는 유의 조언도 힘이 없긴 마찬가지다. 어떤 결단을 해서 무엇을 하자는 내용은 없다. 야당은 “한·미·일 공조가 무너지고 북·중·러는 단단한 대오로 우리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황교안 대표)는 식의 ‘구한말 위기’ 코스프레에 바쁘다.

결국 무엇을 할 것인지는 오롯이 문 대통령과 정부의 몫이다. 청와대의 ‘퇴고’가 연설 직전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닷새 뒤엔 당당하고 품격 있는, 이전과는 다른 연설을 들었으면 한다. 때론 “민폐 행위”와 “적반하장” “이순신 장군의 열두척 배” “일본이 탐낸 건 우리 도공” 같은 표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8·15 연설이다. 전쟁범죄를 대하는 보편적 지성, 거래에서 지켜야 할 합리적 상식, 그에 앞서 스스로를 먼저 살피는 과감한 성찰 등이 쉽고 단단한 언어로 우리 앞에 왔으면 한다.

정치팀장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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