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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정부는 왜 ‘긴급재정명령 발동’ 요구에 즉각 응하지 않을까

등록 2020-04-09 14:21수정 2020-04-09 14:26

[더(THE) 친절한 기자들]
국회 소집 어려울때 대통령 고유 권한…발동 땐 법률과 같은 효력
정치권 요구에 정부 “시간·절차 중요”…법조계 “국회 임기 남아”
“기밀성 필요했던 실명제와 달리 공론화 중이라 국회가 책임질 일 ”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관련 제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관련 제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30일 정부는 코로나19로 촉발된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국 소득하위 70%에게 긴급재난지원금(4인가구 기준 100만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8일 정부는 다음주께 긴급재난지원금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기재부가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는 해당 예산안을 심사해 통과 여부를 결정합니다. 이런 절차를 거치면 실제 지급까지는 최소 한 달이 소요될 거란 예상이 나옵니다.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에도 볼멘 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하루가 급박한 상황에서 한 달 뒤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 경제 위기는 심각해지고 효과는 떨어질 거라는 우려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통령에게 ‘긴급재정명령’ 발동을 검토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긴급재정명령은 뭘까요? 왜 대통령은 여야의 요구에도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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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기간이니…대통령이 결단하라”

“가능하다면 4월 중에 지급을 마칠 수 있도록 속도를 내겠다. 야당이 동의한다면 긴급재정명령 건의도 적극 검토하겠다”(4월7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총선 전 의회 소집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므로 법률의 효력을 가진 긴급재정명령권을 발동해야 한다”(4월8일 이재명 경기도지사)
“가장 신속한 방법이 대통령 긴급명령권인데 안하는 건지 하기 싫은 건지 아직 결단을 못내렸다”(4월8일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정치권에서 연일 긴급재정명령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4월15일 총선을 앞둔 상황이라 추경안을 통과시킬 국회를 열 수 없으니, 대통령이 권한을 이용해 재정을 집행하라는 이야깁니다. 물론 국회법에 따르면 선거기간에도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가 발생할 경우 하루 전에 공고한 뒤 임시회를 소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야 모두 추경 통과를 위해 국회를 소집하는 데는 소극적인 상황입니다. 대신 대통령에게 최종승인을 하라고 쪼아대는 모양새입니다.

긴급재정명령은 헌법 76조에 있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법적인 효력을 갖습니다. 아래는 헌법 조문입니다.

제76조 ①대통령은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

긴급재정명령을 발동하려면 우선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경제 상황이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으로 볼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인지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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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재정명령, 민주화 이후 단 한 차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모두 16개의 긴급명령이 공표됐습니다. 1~14호에 이르는 대부분의 긴급명령은 6·25전쟁 당시 법령의 공포였고, 15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발동된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입니다. 일명 ‘8·3긴급금융조치’로 기업이 진 사채 이자를 3분의 1로 깎아주고, 부채 상환일도 최장 8년까지 미뤄주겠다는 조처였습니다.(▶관련자료: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긴급명령)

1993년 8월12일 김영삼 대통령이 긴급재정명령을 발동하고 금융실명제 시행을 전격적으로 알렸다. 1993년 8월13일 <한겨레신문> 1면.
1993년 8월12일 김영삼 대통령이 긴급재정명령을 발동하고 금융실명제 시행을 전격적으로 알렸다. 1993년 8월13일 <한겨레신문> 1면.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긴급재정명령이 발동된 건 1993년 8월13일 금융실명제 실시 때가 유일합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 거래 및 비밀 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한 겁니다. 당시 한국은 예금을 늘리기 위해 익명·차명·가명 계좌로도 금융 거래를 할 수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탈세 등의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긴급재정명령으로 △8월14일부터 모든 금융거래가 실명화되고 △기존의 비실명예금은 2개월 안에 실명전환해야 하며 △비실명에 의한 자금 인출은 즉각 금지된 겁니다.

이후 같은달 19일 국회가 열렸고, 국회는 해당 명령을 승인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이 마련됐습니다. 당시 김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과거 금융실명제가 논의될 때마다 금융시장이 동요하고 경제의 안정이 위협받는 것을 보아왔다. 고심 끝에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국회에서의 법개정 절차를 대신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해당 명령은 헌법재판소까지 가게 됩니다. 박아무개 변호사가 “해당 명령이 헌법 76조에 규정된 긴급재정 발동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헌법소원을 낸 겁니다. 1996년 헌법재판소는 해당 사건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당시 국회는 폐회중이었고 국회를 소집하여 그 논의를 거쳐 금융실명법을 시행하면 검은 돈이 금융시장을 이탈하여 부동산 시장으로 이동함으로써 금융경색을 초래하는 등 여러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을 때라는 조건이 총족된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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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회의적…국회 소집은 불가능할까?

여야를 가리지 않고 긴급재정명령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회의적입니다. 소득하위 70%가 아닌 전국민에게, 혹은 가구당 지급이 아닌 1인당 50만원 지급 등 지급 대상과 방식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으로 보입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8일 “재정집행은 세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입이 있어야 한다. 속도가 급하기는 한데 재원 마련, 세입 예산을 확보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어떤 사람들은 대통령이 긴급재정명령을 내리면 된다고 하는데, 세출은 그렇게 할 수 있어도 세입은 안 된다.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와 충분히 협조해 재원을 마련하는 것으로 아무리 마음이 급하더라도 최소한의 시간과 절차는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법적으로는 어떨까요? 대통령이 긴급재정명령을 발동할 수 있는 상황일까요? 헌법학자들 상당수는 “아니다”라고 입을 모읍니다. 국가 위기는 맞지만, 국회가 소집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는 겁니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선거 기간이긴 하지만 20대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국회 소집이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며 “선거 앞두고 경쟁적으로 ‘퍼주자’고 주장하면서, 책임은 대통령에게 지라는 정치적 주장”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헌법학자는 “YS 당시 긴급명령은 기밀성이 요구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발동된 것이다. 현재의 긴급재난지원금은 이미 공론화되어 논의 중인 것으로 당연히 국회에서 책임져야 한다”며 “국회가 권한을 포기하고 대통령 뒤에 숨는데 이런 기관에 어떻게 국가를 맡기겠냐. 국회가 국가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시험대에 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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