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열린 정세균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모임인 ‘광화문포럼’에서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의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면서 유력 주자들이 복지 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이중 상당수는 적게는 1000만원 많게는 1억원까지 국민들에게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금 지원 방식과 액수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코로나19 국면에서 확인된 소득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부실한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는 데서 정책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11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광화문포럼 기조강연에서 ‘국민 능력개발 지원금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정부가 국민 1인당 평생 2000만원, 연간 최대 500만원을 지급해, 적성에 맞는 직업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정 전 총리는 “예산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현재의 성인 평생교육 및 직업훈련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을 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전 총리는 앞서 첫 대선 공약으로 사회초년생에게 1억원을 지원하는 ‘미래씨앗통장 제도’를 제안하기도 했다. 정 전 총리와 가까운 한 의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더는 평생 직업이나 평생직장의 개념이 없다. 국민들이 수도 없이 새로운 직업을 가질 텐데 그 상황에서 평생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라며 “현금 지원은 정책 목표를 구현하는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꼭 현금이 아니라 바우처 제도를 이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 쪽 관계자도 “청년들을 위해 국가가 최소한의 역할을 하자는 취지”라며 “재원조달방안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있다. 총리 본인도 퍼주기식 공약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고 강조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자신의 싱크탱크 ‘연대와 공생' 주최로 열린 국정 비전 제안 심포지엄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같은 날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주거권’을 헌법에 명시하고 내년부터 청년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주거급여 제도를 전면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월소득 82만원 이하 청년들에게만 지급되는 주거급여 대상자를 확대하고 급여액도 임대료 수준에 맞춰 현실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는 민달팽이유니온과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임대료의 일부를 국가가 보조해 전국 어디에 살든지 가족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청년 가구에게도 동등한 사회 출발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가 군 전역자와 사회복무를 마친 청년들에게 3천만원의 사회출발자금을 지원하자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7일 오후 울산시청 상황실에서 열린 ‘울산광역시와 경기도의 공동 발전을 위한 정책 협약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간판 브랜드인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차별 없이 일정 금액을, 일정 주기에 지역화폐로 지급하자는 것이 요지다. 이 지사는 1인당 연간 100만원(분기별 25만원씩)씩 지급하되, 국민 합의를 거쳐 10년 이상의 장기목표 아래 증세를 통해 기초생계비 수준인 월 50만원(연 600만원) 수준까지 천천히 늘려가자는 일정을 제시해왔다. 그는 대학을 가지 않은 청년에게 세계 여행비 천만원씩 지원 해주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지급 대상 등 각론에선 차이가 있지만, 국가가 직접 나서 국민들의 삶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총론에선 세 주자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국면을 거치면서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심화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국민들이 실업·질병·노화 등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안정적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보편적 복지가 갖춰지지 않기 때문에 이런 논의들이 활발히 이뤄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현금을 지급한다는 사실에만 매몰돼 정책 본연의 취지를 훼손해선 안 된다고도 조언한다. 이에 ‘현금’이라는 지급 방식보다 ‘소득 보장’이나 ‘불평등 완화’의 정책적 목표의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현금 지급은 형식의 하나”라며 “현금성 복지라는 것만 강조할 게 아니라 그 복지제도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지를 두고 토론하는것이 훨씬 생산적”이라고 말했다.
심우삼 노지원 서영지 기자
wu3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