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억만장자 베이조스의 우주 도전]
아폴로 달 착륙에서 평생 열정의 원천 얻어
준궤도 우주여행은 장기적 우주 비전의 시작
향후 목표는 지구 구할 우주 식민지 길 닦기
아폴로 달 착륙에서 평생 열정의 원천 얻어
준궤도 우주여행은 장기적 우주 비전의 시작
향후 목표는 지구 구할 우주 식민지 길 닦기
20일 준궤도 우주비행을 마친 후 자체 제작한 우주비행 배지를 달고 있는 제프 베이조스. 승무원 자격으로 비행한 리처드 브랜슨 회장과 달리, 베이조스 일행은 승객 자격이었기 때문에 미 연방항공국(FAA)으로부터 민간 우주 비행사 배지를 받지 못했다. 블루오리진 동영상 갈무리
베이조스(오른쪽 두번째)가 준궤도 우주비행을 함께한 동료들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연소 우주비행을 한 올리버 대먼(18), 베이조스의 동생 마크, 베이조스, 최고령 우주비행 기록을 세운 월리 펑크(82). 블루오리진 동영상 갈무리
80세가 돼서도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한다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16살에 중퇴한 브랜슨과 달리 베이조스는 우수한 성적을 낸 모범생이었다. 고교시절 전과목 A로 수석졸업생이 된 그는 지역신문 ‘마이애미 헤럴드’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주에 2백만~3백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호텔, 공원, 거주지를 만들고 싶다. 지구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목표는 인류를 구하는 것이다. 지구는 공원이 될 것이다.” 그는 졸업식에서 학생 대표로 한 연설에서도 우주 거주지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고 “우주, 그 마지막 개척지에서 만납시다”라고 마무리했다. 프린스턴대에 진학해서도 전공은 전기공학과 컴퓨터공학이었지만 우주에 대한 꿈은 이어져 우주탐사개발학생연맹(SEDS) 프린스턴대 지부장을 맡아 활동했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베이조스의 발언 모음집 ‘발명과 방황’ 서문에서, 베이조스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 때 ‘후회 최소화’라는 준거 틀을 이용한다고 소개했다. 자신이 80세가 되는 때 당시 결정을 되돌아보면 어떤 감정이 들지 상상해본다는 것이다. 그가 안정적인 금융기업의 임원 자리를 그만두고 1995년 아마존을 창업할 때도 이 방법을 썼다고 한다. 그가 아마존을 창업한 지 불과 6년 후에 사비를 들여 시애틀 외곽에 블루오리진을 설립한 것도 이런 잣대를 들이댄 결과일 것이다. 내실을 중시하는 그는 일을 외부에 떠벌리지 않았다. 블루오리진을 설립한 사실이 알려진 건 3년이 지나서였다. 당시 로켓 공장 부지를 물색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고 텍사스 일대를 돌아다니다 언론에 노출됐다.
1만년 시계 건설 장면. 베이조스 트위터
거북이를 마스코트로 삼은 이유 그가 이런 조용한 행보를 하는 이유는 ‘한 걸음씩 담대하게’라는 블루오리진의 사훈에 잘 표현돼 있다. 블루오리진의 마스코트 역시 느릿느릿한 ‘거북이’다. 둘 다 서두르지 말고 장기적 관점에서 판단하고 실행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는 그 상징으로 미래학자 데니 힐리스가 고안한 1만년 동안 작동하는 시계 ‘롱나우 시계’를 자신의 텍사스 목장에 세웠다. 100년에 한 번씩 움직이고, 1천년에 한 번씩 뻐꾸기가 우는 시계다. 일부에선 그와 같은 억만장자들의 우주사업을 최상층 부자들의 사치스런 놀이로 본다. 실제로 베이조스가 20일 우주비행을 마친 후 기자 회견에서 "이 모든 비용을 지불해 준 아마존 직원과 고객 모두에게 감사한다"라고 말하자, “우주여행은 부자들을 위한 면세휴가가 아니다”라는 등의 비판이 즉각 나왔다. 그는 이런 비판적 시각에 대해 나름대로 확고한 자신의 우주사업 사명을 들며 반박한다. 그는 2019년 블루오리진의 달 착륙선 블루문 공개 행사에서, 블루오리진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지구에는 시급한 문제들, 즉 가난 노숙자 오염 등이 있지만 지구 에너지 고갈 같은 장기적 문제들 역시 해결해야 한다. 장기적 문제가 시급한 문제가 될 때까지 기다려선 안된다. 둘 다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가 생각하는 지구의 장기적 문제를 해결할 장기적 과제는 우주에 인류 상주 시설을 짓는 것이다.
베이조스에게 우주 식민지의 영감을 준 ‘오닐 실린더’ 상상도. 위키미디어 코먼스
머스크와 베이조스, 브랜슨의 차이는? 현재 우주관광 사업을 추진하는 우주선 개발 기업은 스페이스엑스, 버진갤럭틱, 블루오리진 3곳이다. 스페이스엑스는 고도 수백km의 저궤도 달 궤도 관광을, 버진갤럭틱과 블루오리진은 준궤도 관광을 준비하고 있다. 실행 단계면에선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엑스가 멀찌감치 앞서 있다. 스페이스엑스는 이미 지난해 유인 우주선을 개발해 우주비행사들을 태우고 세차례나 국제우주정거장을 다녀왔다. 오는 9월엔 민간여행팀 4명이 스페이스엑스의 우주선을 타고 3일간 지구 저궤도를 여행한다.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이끄는 버진갤럭틱은 지난 11일 첫 준궤도 우주비행을 마쳤다. 이번에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이 마지막으로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세 사람의 우주관광 사업 경쟁은 이제 본궤도에 올라섰다. 하지만 세 억만장자 기업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우주사업의 지향점은 각기 다르다. 브랜슨은 우주를 여행사업의 한 방편으로 접근한다. 일찌감치 탑승권 예약판매에 나서 이미 650여명의 승객을 확보했다. 버진갤럭틱은 이 준궤도 여행기술을 이용해 초음속 지구여행 교통수단도 개발하기로 나사와 계약을 맺은 상태다. SF를 보며 우주 꿈을 키운 머스크와 베이조스는 우주 왕복 사업을 넘어, 우주에 상주할 수 있는 식민지를 개척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우주 식민지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생각엔 큰 차이가 있다. 머스크의 우주 식민지는 지구의 황폐화, 인류의 멸종에 대비해 지구를 탈출하는 대안이다. 그래서 지구를 닮은 화성을 인류의 제2 정착지로 생각한다. 반면 베이조스의 우주 식민지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에 오염 산업을 옮기는 방편이다. 그는 다른 천체가 아닌 지구 인근의 우주 공간에 인공 시설을 지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뉴셰퍼드 유인 캡슐에서 무중력 체험을 하며 지구를 조망하는 베이조스. 블루오리진 동영상 갈무리
우주 식민지의 영감을 준 ‘오닐 실린더’ 베이조스가 우주 공간에 대형 인공시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지구의 에너지만으로는 인류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유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동물로서의 인간은 97와트의 에너지를 사용하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은 1만와트의 에너지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효율 개선만으로는 그런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태양계로 진출해 무한의 자원을 얻어야 한다. 둘째는 다른 행성의 표면에 시설을 짓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다. 인류가 완전히 지구를 떠나서 살 수는 없으므로 필요할 땐 언제든지 왕복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그는 1974년 프린스턴대 물리학 교수 제라드 오닐이 제안한 ‘오닐 실린더’에서 우주 식민지의 영감을 얻었다. 오닐 실린더는 인공 중력을 갖춘 원통형 우주 인프라다. 다수의 오닐 실린더를 만들어 생활에 필수적인 경공업은 지구에 남기고, 중공업과 오염 유발 산업을 우주로 옮기면 지구가 좀 더 쾌적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뉴셰퍼드 앞의 제프 베이조스. 블루오리진 제공
현재 세대의 임무와 미래세대의 역할 오닐식 우주 식민지는 어떻게 만들까? 그 자신도 이에 대한 해답은 없다. 현재로선 그런 발상 자체가 우스꽝스럽게 비칠 뿐이다. 그에 따르면 “그 방법을 알아내는 것은 우리가 아닌 미래세대의 몫이며, 현재 세대는 거기까지 가는 관문들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우리 세대의 일은 우주로 향하는 길을 닦아서 미래 세대들이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미래 우주기업가들을 위해 우리가 인프라를 마련하는 지금의 일이 자리를 잡고 나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1994년 아마존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도 운송, 통신, 결제 시스템 같은 인프라가 이미 마련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래의 우주 식민지 건설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인프라는 첫째 우주로 가는 비용을 파격적으로 낮추는 것, 그 다음엔 우주에 있는 자원을 현지에서 이용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는 이날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한 뉴셰퍼드가 이 목표를 향해 가는 첫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뉴셰퍼드는 저렴하게 우주로 가는 길을 닦기 위한 연습 장비인 셈이다. 두번째 디딤돌은 내년에 첫 비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 대형 로켓 뉴글렌이다. 뉴셰퍼드는 엔진 1개를 탑재한 높이 18미터, 지름 4미터의 1단 로켓인 반면, 뉴글렌은 엔진 7개를 탑재한 2단 로켓으로 높이 98미터, 지름 7미터다. 뉴글렌의 추력은 뉴셰퍼드(49톤)의 수십배에 이르는 1360톤으로 지구 저궤도에 49톤의 화물을 올려 놓을 수 있다.
블루오리진의 달 착륙선 ‘블루문’ 상상도. 블루오리진 제공
은퇴가 아닌 새로운 시작 세번째 디딤돌로 기대했던 달 착륙선 블루문은 지난 봄 스페이스엑스와의 입찰 경쟁에서 고배를 마셨다. 베이조스는 나사가 애초 약속한 선정 절차를 무시했다며 정부에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미국 정부는 오는 8월까지 이에 대한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베이조스는 지난 5일 아마존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우주 여행은 은퇴 여행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강조하는 ‘장기적 관점’에 서면 오히려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그는 은퇴 선언에서 “앞으로는 다른 열정에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겠다”며 그 중 하나로 블루오리진을 꼽았다. 그는 2017년 해마다 10억달러의 사재를 블루오리진에 투입하겠다고 말한 이후 그 약속을 실천하고 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렇게 할 것으로 스스로 예상한다. 아마존 현직에 있는 동안 그는 매주 수요일 블루오리진 일에 집중했다. 이제 아마존 일에서도 자유로워진 만큼 블루오리진에 투여할 시간이 그만큼 더 많아졌다. 투자분석가들은 세계 첫 조만장자가 탄생할 분야로 우주산업을 꼽는다. ‘우주 식민지’라는 명분을 내세운 그의 새로운 도전은 어쩌면 그에게 지금까지보다 더 큰 부를 안겨다 줄지도 모를 일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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