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주정거장 원톈 실험모듈에서 재배한 벼의 생장과정 중에 찍은 사진들. 오른쪽 위의 숫자는 실험이 시작된 이후 경과한 날짜 수다. 신화뉴스 제공
지난 10월 말 중국 중남부 후베이성 우한의 과학연구시범기지에서는 우주에서 가져온 볍씨의 모종을 심은 논에서 자란 벼를 수확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이 볍씨는 2021년 6월 선저우 12호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정거장 톈궁으로 가져갔다가 3개월 후 지구로 다시 가져온 것이다. 중국 과학자들은 이후 이 볍씨 중에서 우수형질을 골라 번식시킨 뒤 지난 6월 150kg의 볍씨를 20헥타르의 논에 심었다.
중국 우한의 한 시범농장에서 우주에서 육종한 볍씨를 심어 재배한 벼를 수확하고 있다. 차이나데일리에서 인용
후베이진광농업기술의 가오슈광 사장은 “올해 여름은 고온과 가뭄으로 병충해가 극성을 부려 쌀 생산량이 줄었지만 우주 육종 벼는 가뭄과 병충해 저항력이 뛰어나 이상기후의 영향을 훨씬 덜 받았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올해 수확한 쌀 가운데 일부는 추가 육종 연구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일반 벼보다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14억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한 식량 안보 체제 구축을 국가적 목표로 삼고 있는 중국이 우주 육종에서 그 돌파구를 열어가고 있다.
우주 육종 절차 개요. 미세중력 환경의 우주에서 우주방사선에 노출시킨 씨앗을 지구로 가져와 심은 뒤 우수형질을 보인 것을 골라 염기서열 분석기로 유전자의 실체를 확인한다. 유전자가 확인되면 우수한 형질을 가진 작물을 생산하기 위한 육종에 사용할 수 있다. 프런트 플랜트 사이언스(2021.10.27.)
‘우주 육종’이란 종자를 우주로 가져간 뒤 고에너지 입자인 우주방사선과 미세 중력에 노출시켜 유도한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새로운 형질의 종자를 얻는 것을 말한다.
물론 새로운 형질이 모두 좋은 건 아니다. 그중엔 오히려 형질이 나빠진 것도 있기 때문에 시험재배를 거쳐 더 좋은 형질을 발현하는 것들을 선별한다. 이렇게 선별된 종자는 수년간 몇세대에 걸친 번식을 통해 형질을 안정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중국농업과학원 란저우축산약학연구소의 양홍샨 박사는 ‘글로벌타임스’에 “가축 사료인 클로버는 10년, 귀리는 7~8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와 국제원자력기구 공동의 육종·유전학팀을 이끌고 있는 쇼바 시바산카르 박사에 따르면 우주 육종은 신품종 개발 기간을 최대 절반까지 줄일 수 있다. 또 일단 종자를 우주로 가져가면 지상에서보다 더 오랜 기간 방사선에 노출되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더 잘 일어난다. 우주방사선은 상대적으로 지상에서 기기를 통해 쏘아주는 방사선보다 세기가 약해 종자가 손상될 가능성이 적다는 이점도 있다.
중국에서 두번째로 많이 재배되는 밀은 우주 육종을 통해 얻은 루유안502 품종이다. 중국농업과학원 제공
우주 육종은 원리상 1920년대 등장한 핵 돌연변이 방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식물을 방사선에 노출시켜 세포 핵 속의 DNA 돌연변이를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 기술을 응용해 1960년대에 미국과 소련이 우주비행사의 식량 자급자족을 위한 우주육종 실험을 시작했다. 그러나 식량 자급이 절실한 중국은 이를 주곡을 포함한 작물 전반에 적극 적용하고 있다. 식량 수요 증가와 경작지 감소로 인해 2004년 식량 순수입국으로 전환한 중국은 현재 세계 1위의 대두 수입국, 세계 7위의 옥수수 수입국이다.
중국민항과학기술연구원(CASTC)에 따르면 중국은 1987년부터 위성과 유인 우주선, 고고도 풍선 등을 이용한 작물 우주 육종에 뛰어들었다. 이후 지금까지 2000여종의 우주 식물과 과일 종자가 탄생했고 이 가운데 쌀, 밀, 옥수수, 대두, 목화 토마토 등 200여종이 재배를 승인받았다. 2018년 기준으로 중국에서 승인된 우주육종 작물의 재배면적은 240만헥타르에 이른다.
중국에서 두번째로 널리 재배되는 루유안502란 밀은 고도 340km 저궤도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킨 씨앗이 탄생시킨 품종이다. 중국의 우주육종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히는 이 품종은 일반 밀 품종보다 수확량이 11% 더 많고 가뭄과 해충에도 더 잘 견딘다. 중국 최초의 우주 육종 작물은 1990년에 나온 ‘유지아오1’이라는 고추 품종이다. 달콤한 맛이 나는 이 고추 역시 병충해에 강하고 크기도 기존 고추보다 크다.
우주에서 돌연변이시킨 종자로 재배한 초대형 호박. 차이나데일리에서 인용
중국의 우주 육종 실험은 2000년대 이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2006년엔 아예 우주 육종 전용 위성인 시지안 8호를 띄워 15일간 152종 250kg의 종자와 미생물을 저궤도에 올려보내기도 했다.
올해 4월엔 선저우 13호 우주비행사들이 톈궁에서 6개월간 우주 육종 실험을 진행한 잔디, 귀리, 알팔파, 버섯 등 1만2천개의 종자를 갖고 돌아왔다.
저궤도의 1000배가 넘는 먼 거리의 달에서도 우주 육종이 이뤄졌다.
중국의 달 표본 수집-귀환선 창어 5호가 2020년 11~12월 볍씨 40g(낟알 1500개)을 포함한 여러 식물 종자를 싣고 23일간 달 왕복여행하고 돌아온 것. 중국 과학자들은 광저우의 남중국농업대에서 이 볍씨를 심어 2021년 7월 첫번째 쌀을 수확했다. 후베이진광농업기술의 가오슈광 사장은 “지난해 수확한 우주 쌀은 일반 쌀보다 향이 더 좋고 식감도 더 부드럽고 찰지다”고 말했다.
중국 우주정거장 원톈 실험모듈에서 재배한 벼의 생장과정 중에 찍은 사진들. 오른쪽 위의 숫자는 실험이 시작된 이후 경과한 날짜 수다. 신화뉴스 제공
중국은 이제 우주 육종을 넘어 우주 현지 재배에도 도전하고 있다.
지난 4일 우주정거장 톈궁에서 돌아온 선저우 14호 우주비행사들은 4개월간 우주에서 실험재배한 벼를 가져왔다. 이번 실험은 처음으로 발아에서부터 개화, 결실에 이르기까지 약 4개월에 걸친 벼의 생육 과정 전체를 직접 우주에서 진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중국 우주비행사들은 톈궁 내 원톈 실험실에서 7월29일 영양제 주입과 함께 볍씨 재배를 시작해 120일 후 새 볍씨를 수확했다. 우주비행사들은 이 기간 중 발아기(9월21일), 개화기(10월12일), 결실기(11월25일) 세차례에 걸쳐 시료를 채취한 뒤 발아기와 개화기의 시료는 영하 80도 저온에, 결실기 시료는 영상 4도의 저온에 보관했다.
우주에서 수확한 볍씨는 곧바로 베이징에 있는 중국과학원 우주응용공학기술센터로 이송돼 현재 정밀 분석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과학원의 한 연구원이 선저우 14호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에서 재배한 뒤 가져온 벼를 분석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신화뉴스 제공
중국유인우주국에 따르면 우주에서 재배한 벼는 몇가지 점에서 지상의 벼와 차이가 났다.
우선 우주에서 자란 벼의 개화 시기가 좀 더 빨랐다. 그러나 이삭이 패는 기간은 10일 이상 더 길었으며, 이삭을 감싸는 포영은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우주 재배 벼는 또 줄기와 잎 사이의 각도가 더 컸으며 단립종 벼는 키가 더 짧아졌다. 그러나 장립종 벼는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중국은 앞서 2019년 달에 착륙한 창어 4호에선 배양기에서 목화씨 싹을 틔우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중국은 최근 2개의 실험 모듈을 갖춘 우주정거장 톈궁을 완성했다. 중국은 10년 이상 고도 400km 상공을 돌게 될 톈궁에서 앞으로 더욱 많은 우주 육종과 우주 재배 실험을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