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제작자 제이슨 앨런이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를 이용해 출품한 그림 <스페이스 오페라극장>이 지난 8월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해 큰 화제를 불렀다. 제이슨 앨런 트위터
예술 · 창작의 영역은 인간과 인공지능 (AI) 을 구분하는 최후의 보루로 여겨져 왔다 . 하지만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의미와 맥락을 이해해 창작도 하게 되면서 이마저도 위태롭다 .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위협은 반복적인 육체노동을 하는 블루칼라 노동자를 넘어 창의성이 요구되는 예술 분야로 확산하고 있다 . 창의력까지 장착한 인공지능이 열어젖힌 신세계 , 어디까지 왔으며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함의는 무엇인가 ?
인공지능의 활약이 단연 돋보이는 영역은 미술로, 특히 올 한 해 가파르게 성장했다 . 미국의 인공지능 연구조직 오픈에이아이 (Open AI) 가 4 월 출시한 ‘ 달리 (DALL-E)2’ 를 비롯해 7 월에는 누구나 시험해볼 수 있도록 한 베타버전 ‘ 미드저니 ’(Midjourny), 8 월에는 ‘ 스테이블 디퓨전 ’(Stable Diffusion) 이 공개돼 간단한 단어나 문장을 입력하면 전문가 수준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 정지된 이미지뿐 아니라 동영상도 가능하다. 메타의 ‘ 메이크어비디오 ’(Make-A-Video), 구글의 ‘ 이마젠 ’(Imagen Video)과 ‘ 페나키 ’(Phenaki) 같은 창작도구를 활용해
줄거리 있는 구체적 문장을 입력하면 짧은 동영상을 만들 수 있다 . 구글은 정식 공개를 미루기로 결정했지만, 일반인도 간단한 아이디어만으로 영화 제작에 도전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음을 시사한다 .
이런 비약적 발전은 오픈에이아이의 지피티 (GPT)3 와 같은 인공지능 자연어처리모델과 이미지인식 기술 덕분인데 문장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그림으로 구현한다 . 심지어 이전에 학습한 적 없는 이미지 , 독특하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도 몇 개의 단어로 그려낼 수 있다 . 그동안 창작은 고도의 재능과 훈련으로 빚어지는 인간의 고유한 활동으로 간주되었지만 전문성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누구나 창작자· 예술가가 되는 시대가 도래할 지 관심이 쏠린다 . 창작자의 일자리 위협 , 인공지능이 만든 창작물의 저작권 문제 등도 새롭게 제기되는 과제다 .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 예술가들이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만든 창작물을 현업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취재해 보도한 < 뉴욕타임스 > 는 “ 새로운 물결로 예술가들의 직업이 사라질지 여부를 말하기는 이르지만 예술 작업의 초기 단계에서 아이디어나 영감의 원천으로 활용될 수 있다 ” 고 보도했다 .
인공지능 기반 자연어처리모델을 활용해 시나 소설 창작 , 작곡도 할 수 있으며 심지어 프로그램 코딩도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 요리법은 어떨까 ? 요리는 저마다의 고유한 이야기 , 역사 , 취향 등이 담겨 있는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간주돼 왔다 . 특정 요리 레시피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수천 , 수만 가지 조리법이 나오지만 인간은 이 중에서 한 두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한 인공지능은 사람의 협소한 정보를 뛰어넘어 방대한 온라인 정보를 분석해 최상의 요리법을 제시하거나 개발할 수 있을까 ?
< 뉴욕타임스 > 는 지난 11월 지피티 3을 활용해 추수감사절 요리법 개발을 시도한 과정을 보도했는데 , 얼핏 보기에 사람이 만든 것과 구별하기 어려운 정도였지만 실제 결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고 평가했다 . 요리법을 요구하기 앞서 살아온 배경 , 식성 , 원하는 음식 등 상세한 세부정보를 전달했고 인공지능은 구체적이고 친절한 요리법으로 응답했다 . 하지만 인공지능이 알려준 대로 요리한 음식을 맛본 전문가들은 혹평을 쏟아냈다 . “ 좋은 요리를 만드는 것은 여전히 인간성 , 직관 , 이야기 , 따뜻함 , 그리고 요리 뒤에 있는 사람과 의미 ”로, 인공지능이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 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 새로운 요리법을 찾는 요리사에게 영감을 주는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다 “ 고 < 뉴욕타임스 > 는 평가했다 . 인공지능이 예술· 요리 등 인간의 고유한 영역을 대체하진 못해도 영감과 아이디어로 창조적인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다 .
과학 논문은 가설 수립 , 실험 등을 통해 도출된 고도의 지적 결과물이다 . 영국의 과학저널 < 네이처 > 에 따르면 인공지능에 기반한 대규모 언어 모델은 논문을 작성하는 보조자 역할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
12 월 초 오픈에이아이가 공개해 화제를 모은 초거대언어모델 챗지피티 (ChatGPT) 는 자연스러운 대화는 물론 시를 쓰거나 복잡한 물리학 과제 작성 , 간단한 논문 작성 등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 하지만 챗지피티가 생산한 결과물은 인간의 언어를 모방하지만 사실을 확인하지 않아 좋은 정보와 무의미한 사실· 허구 등을 식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었다 . 프린스턴대학의 컴퓨터 과학자 아르빈드 나라야난 은 트위터에서 “ 챗지피티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게 들리도록 하는 데 놀랍도록 뛰어나지만, 권위있는 텍스트와 쓰레기가 섞여 있다 ” 고 말했다 . 인공지능은 창의성이 요구되는 분야까지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지만 진실 , 사실이 중요한 영역에서 치명적 결함을 보이고 있다.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역할이 여전히 크다는 의미다.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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