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는 미래예측이 없었을까?
근대의 미래학은 서양에서부터 시작했다. 미래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웰스(H.G. Wells)는 20세기 초에 미래학 전문가인 퓨처리스트(Futurist)의 등장을 전망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의 미래에 대한 관심과 우려는 미래학의 필요성과 가치를 높였다. 유럽에서는 인류의 미래와 유럽의 재건을 중심으로 가치지향적 미래학이 발달했고, 미국에서는 실무적이고 실용적인 미래학이 등장했다. 반면 소련에서는 계획경제를 위한 미래학을 통해 초기에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앨빈 토플러는 모든 사람은 미래학자라고 했는데, 이는 인류 본성에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욕구와 역량이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미래학이란 학문적 체계가 세워진 것이 20세기 중반 이후임을 생각한다면, 미래예측의 전통이 동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중동, 동남아시아 등에 있었음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산업혁명 이전에 동아시아의 미래예측 전통은 서구의 그것보다 더욱 또렷했다.
논어 위령공편에 ’인무원려필유근우(人無遠慮必有近憂)‘이 나온다. ‘사람이 멀리 내다보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시일내에 근심이 있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원려 즉, 멀리 생각한다는 것이 현대의 미래예측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원려는 미래에 대한 예측 뿐만 아니라 근심과 걱정도 의미한다. 중국의 사전 어플리케이션 ‘Youdao’(有道典)에서 제공하는 중영사전(中英辭典)에 따르면 원려는 'foresight, long view, worries over the future'를 뜻한다. 일본의 앱 ‘goo辭典’에 따르면 원려는 ‘언행의 절제’, ‘어떤 장소에서 물러나기’와 ‘미래예측(foresight)'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표준국어대사전도 원려를 ‘먼 앞일까지 미리 잘 헤아려 생각함’, ‘멀리 떨어져서 근심하거나 걱정함. 또는 그런 근심이나 걱정’을 의미한다고 하고 있다.
안중근의 ‘인무원려, 난성대업’
우리나라 대한의군참모중장 안중근 장군은 1910년 2월 여순감옥에서 ‘인무원려, 난성대업(人無遠慮, 難成大業)’을 유묵으로 남겼다. 사람이 멀리 내다보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뜻이다. 논어의 ‘인무원려, 필유근우’보다 그 의미가 호방하고, 미래예측이 지향하는 바와 가깝다. 미래학에서 미래예측이란 정해진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대화’ 등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미래예측이란 정해진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과정을 의미한다.
인무원려, 난성대업에 대한 원전을 찾기 위해, 중국의 역사서를 데이터베이스화한 한적전자문헌자료고(漢籍電子文獻資料庫)를 검색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중국의 최대 검색사이트인 'Baidu'에서 인무원려, 난성대업의 원전을 추적하였으나, 유의미한 결과를 찾을 수 없었다. ‘Baidu’에서 검색된 결과는 강릉 경포대의 휘호석을 보고 쓴 글이 많다. 경포대의 휘호석에 “인무원려, 난성대업”이 음각되어 있는데, 한 중국인은 이를 보고 한국의 선조가 남긴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인무원려 난성대업은 안중근 장군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조심스럽게 짐작할 수 있다.
장군은 여순감옥에서 미완의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과 본인의 일대기인 안응칠역사(安應七歷史)를 남겼다. 안응칠역사를 참고했을 때, 동양평화론에서 한중일 삼국 상설기구인 동양평화회의 조직, 삼국 공동은행, 공동평화군 창설을 주장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동양평화론은 칸트의 ‘영구평화론’과 유사한 주장인데, 안중군 장군이 칸트의 그 책을 읽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어떻든 안중근 장군을 우리나라 근대의 미래학자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동아시아의 미래전략 원려심모
그 이전에 조선의 미래예측은 어땠을까? 조선왕조실록에 원려는 530번 나온다. 조선 인조 1년에서 순종 4년까지의 승정원일기에는 708번의 원려가 나온다. 삼국사기에서도 원려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원려는 심사원려(深思遠慮), 심모원려(深謀遠慮) 혹은 원려심모(遠慮深謀)의 형태로 흔히 사용된다. 심사원려는 56번, 심모원려는 26번, 원려심모는 3번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원려는 영어로 ‘foresight’을 의미하고 심모는 ‘deep planning' 혹은 ’strategy'를 의미한다. 따라서 원려심모 혹은 심모원려는 ’strategic foresight'로 번역할 수 있다. 즉, 원려심모 등은 현대의 미래전략을 의미한다. 동아시아와 한국에도 서구에서 주장하는 미래전략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사서의 구체적인 내용 중 몇 개를 보자. 세종실록 88권, 세종 22년 2월7일, 예조판서 민의생이 부산포에 거주하는 왜인이 6,000여명에 달하나, 정규군이 400~500명에 불과하므로 군비를 강화할 것을 상소한다. 세종은 심사원려(深思遠慮)하여 군비를 강화할 것을 명했다. 선조실록 6권, 선조 5년 10월8일에 유희찬과 윤탁연은 선조의 경연에 참석하게 되었다. 유의찬 등은 경연에서 손속소(叔孫昭)의 아들과 한고조의 사례를 들어 상벌에 엄격한 것이 먼 미래를 볼 줄 아는 것(遠慮)이라 강설했다. 광해군일기(정초본) 17권, 광해 1년 6월23일 비변사는 광해군에게 ‘비록 천리 밖에 있더라도 미리 대비하는 원려(遠慮)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하며 양남의 거진을 수선하고 군사를 훈련시켜야 함을 아맣다.
한적전자문헌자료고에 따르면, 진(秦)나라 이전부터 민국(民國)시대까지 역사서 31종 본문과 주석에 원려는 159번 등장한다. 한서(漢書)에 7번, 삼국지(三國志)에 7번, 사기(史記)에 4번, 민국시대의 청사고(靑史稿)에 14번 등장한다.
사기 진시황본기 제6 2세 3년(史記 秦始皇本紀 第6 2世3年) 282쪽에 “심모원려, 행군용병지도, 비급향시지사야(深謀遠慮,行軍用兵之道,非及?時之士也)”라는 문구가 나온다. 심모원려와 행군용병의 도가 예전의 선비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신당서 열전제27(新唐書 列傳第27)에 “성인심사원려, 안어비박, 위장구계(聖人深思遠慮,安於菲薄,爲長久計)”가 나온다. “성인은 심사원려하여, 거칠고 부족한 데서 편안하고, 길고 지속되는 계획을 세운다”는 의미다.
동아시아에 미래예측인 원려의 전통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원려를 했을까?
원려의 방법론 ‘역사와 주역’
동아시아의 미래예측인 원려의 방법은 역사와 주역(周易)이었다. 이에 더하여 동양의 시스템적 사고인 고맥락적 사고와 와일드 카드(Wild Card)로서 비통제변수인 천명(天命)에 대한 인식 등은 원려를 하기 위한 기반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동양에서 역사서에 흔히 거울 감(鑑)자를 붙이는데, 동국통감(東國通鑑)과 자치통감(資治通鑑) 등 이 그 예이다. 동양에서 역사서에 감을 쓴 이유는 역사를 통해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를 예측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기초적인 방법이다. 한국사를 전공한 이덕일은 ‘JTBC’와의 인터뷰에서 “역사학은 앞으로 다가올 것, 미래에 관한 학문이다. 역사학은 미래학이다."라고 단언했다. 조선시대 선비는 필독서로 사서(史書)인 동국통감(東國通鑑), 통감절요(通鑑節要), 십팔사략(十八史略) 등을 읽었다. 당시 역사에 미래를 비추어 멀리 내다보는 원려가 일반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역은 변화의 패턴을 집대성하고 해석하고 해설한 자료이다. 서구를 비롯하여 동양 삼국에서도 주역을 점학(占學)에 불과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크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역을 점학의 기본 정도로 보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그러나 주역은 변화의 패턴에 대한 통찰을 담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10대 사회변화이론 중의 하나가 주기인데, 콘트라티에프(Kontratiev) 곡선이 이에 해당한다. 이븐할둔은 역사를 통해 유목민의 흥망성쇠 패턴을 찾고자 했다. 이 변화이론으로 대표적인 것이 태극(太極)이다. 주역은 태극을 바탕으로 한 순환적 변화이론이다. 주역의 핵심사상인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에 그 순환적 변화이론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극단에 이르면 변화해야 하고, 변화하게 되면 널리 퍼지며, 널리 퍼지면 오래간다는 뜻이다. 이는 태극의 순환이론이다. 또한 역사적 변증법에 맞닿아 있기도 하다.
동아시아에서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서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 불확실성을 천명(天命) 혹은 천도(天道)로 표현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은 사람이 할 일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는 의미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지만, 그 결과는 비통제변수인 천명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원전은 소설 <삼국지연의>의 제갈량의 진인사수천명(盡人事受天命)에서 유래한다. 현대 미래학에서 불확실성을 미래의 가능성과 개방성으로 여기는 것에 반해, 천명과 천도는 비통제변수와 와일드 카드(wild card)의 의미를 지니는 것에 차이가 있다. 이는 현대 미래학의 대안 미래와 연결된다.
동아시아의 미래예측이 현대의 그것과 차이가 있는 것은 대안미래의 설정이다. 대안미래란 다양한 미래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대안을 상상하고, 상의하고,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동아시아에 대안미래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것이 제도와 학문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근대적 민주주의의 등장과 정착이 필요했다.
대안미래란 미래가 다양한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하고, 정치적 입장과 상황에 따라서 선호하는 미래가 다를 수 있음을 인식해야만 가능하다. 이는 민주주의가 등장하고, 사람이 협력했을 때 더욱 큰 가치를 만들 수 있음을 인정할 때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서구에서도 대안미래는 1950년대 이후에 허만 칸의 시나리오 기법을 개발한 이후 등장했다.
2016년 5월 발족한 미래학회의 창립 총회. 미래학회 웹사이트
한국적 미래예측과 원려심모
2017년 11월 중국에서 19차 공산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시진핑 주석은 연설에서 등고망원(登高望遠)과 안거사위(安居思危)를 당원에게 요구했다. 등고망원은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바라보라는 의미다. 안거사위는 안전한 곳에 머물면서 위험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중국식 미래학과 미래예측이다. 일본은 2015년 1억명 총활약계획을 세웠다. 초저출산 국가인 일본은 현재 추세가 지속되는 경우 인구수가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보고, 최소한 인구 1억명을 유지하고, 전 인구가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 등을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미래학과 미래예측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한빈 박사가 근대적 미래학을 소개했고, 1970년 한국미래학회가 설립되었다. 이후 단절적인 미래연구가 있었다. 한국개발연구원 및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등 국책연구소에서 미래연구를 진행했다. 2013년 처음으로 카이스트에 미래학 대학원 과정이 생겼다. 2015년 미래학회가 설립되었고, 2017년 11월 국회에 상설 미래연구원이 설립되었다.
이른바 4차산업혁명으로 인해 정치, 경제 및 사회의 근본적 변화가 전망되고 있다. 인류의 DNA 설계가 가능하고, 수정란 뿐만 아니라 성인의 유전자도 수정할 수 있는 실마리가 보고되기도 했다. 인류는 21세기에 포스트 휴먼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과 디지털 혁명 및 나노물질 기술 등의 발달은 현대 자본주의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수적으로 발달하는 과학기술의 상황은, 한국사회가 그리고 인류가 미래예측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절박하게 강조한다. 그렇다고 미래학과 미래예측을 서구에서만 빌려오는 것은 미래의 주도권을 다시 서구에게 빌리게 될 위험이 있다.
파키스탄의 미래학자 사르다르(Sardar)는 미래학이 백인 남성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사르다르는 미래학의 지역화와 각 민족과 문화가 자주적으로 미래대안을 상상하고 설계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의 미래학은 우리 한국 사회의 문화와 가치 및 상황을 그 바탕에 두어야 한다. 미래학의 지향이 인류 전체에게 있으면서도 한국사회와 동아시아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한국사회의 대안미래는 우리 한국사회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동양과 우리 한국의 원려심모의 전통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윤기영/퓨처리스트, 에프엔에스 미래전략 연구소장
synsaj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