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GFS 기상 모델을 바탕으로 지상 2 미터에서 2018년 7 월 3 일 최대 기온에 대한 시뮬레이션( 이미지 소스: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capital-weather-gang/wp/2018/07/03/hot-planet-all-time-heat-records-have-been-set-all-over-the-world-in-last-week/?noredirect=on&utm_term=.f9a1f56b27b1)
2018년의 여름은 무척 덥다. 한낮에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을 찾기 어렵다. 너무 덥기 때문이다. 저녁에도 제대로 잠을 청하려면 에어컨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기후온난화가 실질적으로 체감되는 상황이다. 이 기후 온난화는 지수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지구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있다. 몇 년간 여름철 날씨가 신기록을 계속 갱신했다. 그런데 기후 온난화로 인해 농업 지도가 바뀌고 수면이 상승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기후 변화에는 일종의 되먹임 현상이 존재한다. 기후 온난화로 만년설이 녹게 되면 태양 에너지를 더 많이 받아들이게 된다. 흰색인 만년설이 녹으면 태양빛을 덜 반사하기 때문이다.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온난화의 속도가 가속된다. 시베리아 지역의 영구 동토로 인한 온난화 문제는 더욱 심각할 수 있다. 영구 동토가 녹으면 그 아래 묻혀 있던 메탄 가스가 노출된다. 메탄 가스는 이산화탄소에 비해 온실효과가 수십배 높다. 메탄 가스는 기후 온난화에 악영향을 일으키고, 이는 다시 영구 동토를 더욱 녹이게 된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약 2억년 전의 트라이아스기 대멸종 사건은 대량의 메탄 가스가 공기중에 노출되었던 것이 원인이다.
환경재앙과 양극화, 자본주의 그림자가 짙어진다
영구 동토의 메탄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나, 그렇다고 가능성이 희박한 것만도 아니다. 기후변화의 원인은 과학적 상식을 가진 현생 인류의 대부분이 인지하듯이 화석연료 때문이다. 현 경제 시스템은 화석연료를 태워야 유지된다. 1차산업에서 3차산업까지 화석연료를 태워야 굴러간다. 도시화의 진행에 따라 고층 건물의 등장으로 도시는 더욱 높아지고, 높아진 도시는 더욱 많은 화석연료를 필요로 한다. 거대해진 메가시티에서는 출퇴근을 위해 더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이는 더 많은 화석연료를 태워야 함을 의미한다.
현 경제시스템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생산해야만 유지된다. 따라서 혁신적 파괴(Innovative Destruction)를 위한 기술개발은 장려되고 권장된다. 여기서 혁신적 파괴 기술이란 제품 보증기간이 끝난 이후 해당 기기가 자연스럽게 고장이 나도록 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썩는 플라스틱과 포장재를 덜 사용하는 데는 비용을 들이기 어려우나, 귀한 자원을 낭비하는 혁신적 파괴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야만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내구성이 10년이라면, 자동차의 내구성이 30년이라면 현 경제 시스템은 유지되기 어렵다. 기후온난화로 인류가 공멸한다 하더라도, 현 경제시스템을 멈출 수 없다.
세상 만물은 생로병사한다. 경제시스템도 다르지 않다. 경제시스템은 시대정신에 따라 흥망성쇠한다. 자본주의 이전의 중상주의 경제시스템이나, 중농주의 경제시스템이 그랬던 것과 같이 자본주의 경제시스템도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지구온난화는 현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 병들었다는 대표적인 증상의 하나다. 이외에도 심각한 양극화, 실질적 자유후퇴, 혁신역량의 쇠퇴도 현 자본주의가 병들고 노쇠했다는 증상이다.
우리나라는 2017년 OECD 국가 중 소득 양극화가 가장 좋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 2016년 미국이 1위였으나, 2017년에는 한국이 1위가 되었다. 한국사회의 자산 양극화는 더욱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3년 기준으로 국가와 법인 소유 부동산을 제외한 민간 소유의 부동산 중 상위 2% 가구가 50%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소득 양극화에 따라 자산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을 고려하면, 자산 양극화의 정도가 더욱 악화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득 양극화는 사회를 불안정하게 한다. 인류가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배운 것 중 하나가 심각한 양극화는 비극적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더구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지나치게 비대해진 인류의 힘은 총과 칼로 무장했던 과거와 비교할 수 없다. 양극화로 인한 비극적 결과는 국지적인데 그치지 않고, 인류 전체에게 심각한 위험이 될 수도 있다.
실질적 자유란 일정한 사회적 안전망을 전제로 한다. 사회적 안정망이 없는 자유란 ‘굶주릴 자유’만을 의미한다. 자유란 인류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이며, 평등이란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도구적 의미를 지닌다. 현 자본주의 시스템은 자유를 껍데기만 남기게 하고 있다는 비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사회는 혁신역량이 부족해진다. 지나친 지적재산권의 보호도 혁신을 억제한다. 안전하지 않은 사회는 보수화되고, 보수화된 사회는 생존에 보다 큰 가치를 주게 된다. 생존에 무게 중심이 있는 사회에서 혁신을 기대하기도, 설혹 혁신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이를 수용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지적재산권은 법률이 허용한 독점으로 해당 지적재산권을 응용한 새로운 혁신을 억제한다. 예를 들어 3D 프린팅 관련 특허가 소멸되고서야 비로소 다양한 3D 프린팅이 출현했다. 지적재산권 보호가 미흡한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나, 전세계적으로는 지적재산권 보호 범위의 합리화를 고민해야 한다. 특히 지식사회로의 이행에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보호는 사회적 혁신을 억제할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골간을 이룬다. 비비시 라디오 유튜브(https://www.youtube.com/watch?v=-CqMMxsN_7c)
효율과 혁신…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두 축
성균관대 최창옥 교수는 국가 시스템의 요건으로 효율성, 공정성, 학습역량(오류에 대한 회복역량) 등을 들었다. 국가 시스템과 경제 시스템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국가 시스템의 요건과 경제 시스템의 요건은 상당히 겹친다. 일단 경제 시스템의 요건은 효율성, 혁신성, 공정성, 분배, 자연과의 조화 등을 들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효율성과 혁신성에 초점을 두었다. 그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 개인의 합리적 이기성에 의거한 ‘보이지 않는 손'이 될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상인의 탐욕, 즉 합리적 이기성에 대해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당시 영국 왕정보다는 합리적이라고 보았다.
인류의 합리적 이기성에 근거한 ‘보이지 않는 손’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정보처리와 의사결정을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에 맡기는 것이, 이전의 경제 시스템에 비해 비교적 합리적이고 비교적 공정했다. 더 나아가 합리적 이기성은 혁신의 기반이 되었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인류 역사상 유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으며, 기존의 왕정, 공산주의 및 중앙집중 국가와 정부와의 경쟁에서 승리를 얻었다.
다수의 합리적 이기성이 소수의 불합리한 이기성보다 조금이라도 더 탁월할 수밖에 없다. 왕정과 귀족정에서 소수의 귀족과 관료가 결정하는 것보다는 시장에서 결정하는 것이 더 좋다. 이로 인해 앙샹레짐은 입헌군주제와 공화제로 전환되었다.
공급과 수요에 대한 예측이 정확해야 하며, 이를 위해 상당한 노동력이 필요하고, 수요과 공급 간에 시간이 지체되는 것이 공산주의 계획경제의 문제점이다. 또한 의사결정권자의 탐욕으로 수요와 공급이 상당히 왜곡되는 것은 계획경제가 가진 자연스러운 단점이었다.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을 통한 정보처리와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자본주의가 계획경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시스템보다 탁월할 수 밖에 없다.
중앙집중식의 큰 정부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기보다는, 지방분권 정부에서 직접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의사결정 통로를 단축시킨다. 동시에 수요와 공급의 공급망 길이를 짧게 하여 보다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자신의 일은 자신이 처리하게 함으로써 대리인 효과를 줄일 수 있다. 자유시장경제가 가진 장점은 이미 입증되었다.
새로운 경제 시스템은 자연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픽사베이
현재의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경제 시스템은?
그런데 모든 시스템은 생로병사한다. 영원불멸한 것은 없다. 인류도 생로병사할 것이다. 현 상태를 지속한다면 생각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인류가 멸종할 가능성은 낮지 않다. 현재까지 성공한 경제 시스템도 다르지 않다. 중세 시대에 태어났고, 산업혁명 시대에 성장했으며 20세기 꽃을 피운 자유자본주의 시장 경제 시스템은 21세기 들어서 노쇠한 징후를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자본주의가 시대정신에 의해 꽃을 피웠다면, 현재의 시대정신은 다른 경제 시스템을 요구한다고 판단한다.
첫째는 자연과의 조화다. 미래의 경제 시스템은 지구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소비기반의 경제가 아니라, 인간의 욕구만을 만족시키기 위한 경제가 아니라, 지구와 다른 생물 및 생태계와 조화롭게 같이 갈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다른 동물과 생태계 및 어머니 지구 가이아(Geia)에 법적 권리를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형태의 지식사회로의 전환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길을 만들 수 있다.
둘째는 공정성과 분배다. 다른 한편으로 경제시스템은 인류를 위한 것이다. 여기서 인류란 현재 생존하는 인류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를 포함한다. 인류의 소수만을 행복하게 하는 경제 시스템은 지속불가능하다.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나,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류는 비대해진 힘을 갖게 되었다. 지식사회로의 이행은 그 힘을 특정한 소수만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 다수가 향유할 수 있도록 했다. 공정성의 결여와 비합리적 분배는 인류 사회에 파괴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셋째는 효율성과 혁신성이다. 경제 시스템은 어떻든 효율성과 혁신성을 지녀야 한다. 다만 특정한 개인과 기업을 기준으로 한 효율성과 혁신성이 아니라, 사회 전체와 지구촌 전체를기준으로 효율성과 혁신성이 보장되고 제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본주의 이후의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논의 현황(휴스턴대 미래학 교수인 Andy Hines의 자료에 윤기영이 관련 용어를 더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도식화함)
자본주의 어떻게 할까…백가쟁명식 진단과 대안들
새로운 경제 시스템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존재하며 그 용어 또한 매우 다양하다. 필자는 이를 통칭해서 ‘후기 자본주의(Post Capitalism, After Capitalism)’라고 부르겠다. 후기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과 상상과 설계는 많은 미래학자와 많은 사상가 사이에서 이뤄졌다. 미래학자란 한편으로 미래를 미리 고민하여, 사회적 대안을 미리 고안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후기 자본주의가 다양한 움직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 움직임 모두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움직임의 공통점은 현재 경제 시스템에 문제가 있으므로 그 대안을 찾자는 데 있다. 따라서 이 후기 자본주의는 제자백가를 닮았다. 어떤 학자는 기술발전만이 해답이라고 하며. 또 어떤 학자는 영화 ‘스타 트렉’(Star Trek)에서 보았듯이 기술이 새로운 사회주의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학자는 경제성장을 늦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학자는 순환경제를 주장한다. 어떤 학자는 변화가 임박했다고 주장한다. 세계경제포럼의 슈밥회장의 주장이 그것이다. 어떤 학자는 협력적 공유사회를 주장하며, 또 어떤 학자는 성찰적 시민사회를 주장한다. 또 다른 학자는 인류의 본질의 변화를 전망한다.
무수한 진단과 무수한 해결책이 존재한다는 것은 현 경제시스템의 변혁이 임박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그럴 듯한 해결책이 언제 나올지는 모른다. 이는 예견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와 의지의 문제, 즉 미래예측(Foresight)과 원려(遠慮)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후기 자본주의에 대한 대화와 토론을 시작할 때다. 픽사베이
‘바로 지금’ 포스트 캐피탈리즘을 고민하자
미래예측이란, 원려란, 가능한 미래 대안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과정이다. 후기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적 대화와 논의가 미래예측이며 원려이다. 이 논의에서 사회적 합의를 얻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 수십년에 걸쳐, 인내심을 요구하는 대화와 토론과 논쟁과 소규모의 사회적 실험이 필요할 것이다.
이 논의는 한반도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북한 시민과 논쟁하고 토론하고 대화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역을 넘어서 전지구적으로 지구시민과 같이 미래를 그려야 할 때도 그리 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이다. 과거의 사회계약은 사실상 안정화된 정치체제를 사회계약으로 의제한 측면이 없지 않다. 국민 투표에 의해 헌법에 제정되었다 하더라도, 충분한 대화와 협의가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앞으로의 새로운 경제 시스템에 대한 설계와 사회계약은, 국가 단위가 아니라 국가를 넘어선 지역 단위, 혹은 전지구적 단위의 사회계약이 되어야 한다. 세계는 연결되어 있고, 갈수록 그 연결망은 다양해지고, 굵어지고, 질겨지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그 새로운 사회계약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남북한의 현 상황이, 그리고 도래하는 남북한의 평화가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고안하기 위한 가장 이상적 환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문화와 시스템이 만났을 때 창의성이 꽃을 피운다. 한국과 북한의 동질성에 기반한 이질성의 만남은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을 만들 수 있다.
미래학자로서 상상한다. 전환기에 임박하여 시민은, 지식인은 무엇을 상상하고, 어떤 대안을 꿈꾸며,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보아야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은 조선의 설계자였던 정도전과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등이 고민했던 일이다. 또 상상한다. 산업혁명을 목전에 둔 귀족과 당시 보수적 사상가들은 어떤 도덕적 결기를 가지고 그 전환의 시대를 보았을까? 그리고 구한말 안중근 장군이 당시에 느꼈을 막막함과, 그럼에도 작은 거름이라도 되고자 했던 희망을 기억한다.
한국사회는 후기 자본주의 논의를 언제 해야 하나? 답은 ‘바로 지금’이다.
윤기영/퓨처리스트·에프엔에스 미래전략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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