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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미래

전쟁 중의 과학기술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

등록 2018-12-17 06:00수정 2018-12-17 10:39

[박상준의 과거창]
한국전쟁 중 창간된 ‘전시과학’
“국가가 요망하는 사명 다하겠다”
오늘날 대한민국학술원의 모태
1951년 ‘전시과학’ 창간호 표지.
1951년 ‘전시과학’ 창간호 표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서울SF아카이브 대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3월28일, 이공계와 인문사회계를 망라한 각 분야의 학자들이 대구에서 회합을 가졌다. 유엔군이 중공군에 밀려 전쟁 발발 이후 두 번째로 서울을 포기했다가(‘1.4 후퇴’) 수복한 지 2주일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이들이 모인 목적은 ‘전시과학연구소’ 창립을 위한 발기인 회의였다. 이들은 창립취지서에서 ‘전시하의 학자로서 과학인으로서 기술가로서 전쟁수행에 도움이 될 이론과 실천면의 연구와 그 실천을 통하여 전시국가가 요망하는바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바임’을 밝혔고, 이어 5월13일에는 부산에서 창립위원회를 열어 규약을 제정하고 기관지 ‘전시과학’의 발간을 결의했다. 7월 6일 부산에서 전시과학연구소의 제1차 운영위원회가 열렸고, 마침내 8월 15일에 ‘전시과학’ 창간호가 세상에 선을 보였다.

전시과학연구소는 인문과학연구위원회와 자연과학연구위원회를 두었는데, ‘전시과학’ 창간호에는 연구위원들 명단이 실려 있다. 인문 분야가 피천득, 이숭녕 등 31명, 자연 분야는 안동혁, 윤일선, 권영대 등 24명이다. 연구소장을 맡은 김동일은 한국인 최초로 동경제국대학 응용화학과를 졸업했으며 해방 당시에는 경성방직의 공장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 뒤 학계로 자리를 옮겨 38세에 서울대 공과대학 초대 학장이 되었다가 1959년에 원자력위원이 되면서 다시 산업계로 넘어가 훗날 인견(레이온)을 최초로 국산화하는 등 화공학계에 기여한 바가 크다.

‘전시과학’ 창간호에 실린 글들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유진오 당시 고려대 총장의 ‘개헌론 시비’이다. 유진오는 작가이자 법학자로서 대한민국 헌법 초안을 작성했던 인물인데, 대통령중심제가 아닌 의원내각제를 주장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승만은 유진오의 의견대로라면 권한이 축소될 것을 우려하여 미군정과 함께 대통령중심제를 관철시켜 대한민국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 뒤 친이승만 세력은 1950년 5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참패했고, 곧이어 한국전쟁이 일어난 와중에도 재집권을 노리고 개헌론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국회가 아닌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자고 한 것이다. 유진오는 ‘전시과학’에 기고한 글에서 ‘대통령 직접 선거론 주장에 반대한다’고 명백히 밝혔지만, 1952년에 이승만은 기어이 ‘부산 정치파동(발췌개헌)’을 일으키며 헌정사에 불법적 개헌의 오점을 남기고 만다.

‘전시과학’을 낸 전시과학연구소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은 이 조직이 오늘날 대한민국학술원의 모태나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김용섭 전 연세대 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45년에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자마자 각 분야 학자들이 모여 ‘조선학술원’을 설립했다. 당시 여기에는 좌, 우익에 상관없이 정파를 초월하여 모든 학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군정에 의한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이 격렬한 찬반 논쟁(‘국대안 파동’)을 일으키는 등 이념 갈등이 격화되고 남북한이 각자의 길을 가면서 상당수 인사가 북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때 남쪽에 남은 학자들이 바로 ‘전시과학연구소’의 중추인물들이었고 이들이 다시 1954년에 개원한 대한민국학술원 창립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한편 북으로 갔던 사람들은 ‘정치경제학 아카데미야’를 거쳐 과학원 설립의 핵심을 맡았다. 즉, 북한의 과학원과 남한의 학술원은 사실상 한 뿌리라는 얘기이다.

‘전시과학’에 창간 축하 메시지를 실은 여러 기관과 기업 중에는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목포일보사 사장 김대중’. 47년 뒤에 대통령이 되는 김대중은 당시 20대 후반의 청년사업가였으며, 동시에 전남지구 해상방위대 부대장으로 군수 물자의 수송 임무도 맡고 있었다. 이름이 한자로 ‘金大仲’으로 표기된 것이 흥미롭다. ‘仲’이 ‘버금, 둘째’라는 뜻이어서 나중에 정치하면서 ‘가운데 중(中)’으로 바꾸었다고 알려져 있다.

‘전시과학’ 창간호는 편집후기에서 ‘순수한 종합 학술잡지로 유지하려는 것이 본의이며 평화 시에는 당연히 ‘종합과학‘이라는 표제 밑에 계속 출판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쉽게도 2호를 끝으로 더는 이어졌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이와 여러모로 비슷한 성격의 잡지라고 볼 수 있는 ‘과학과 기술’이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1966년 설립)에 의해 창간된 것은 1968년의 일이다.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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