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27일 오후 판문점 도보다리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판문점/한국공동사진기자단
출발은 경쾌했지만 길고 험한 평화의 길
2018년 4월27일 문재인 정부에서는 첫번째, 역대로는 세번째의 남북한 정상회담이 있었다. 당시에 조만간 남북한 간 평화가 정착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진척은 느리기만 했다. 정상회담에서 8개월이 흐른 지난 12월26일 남북간 철도 연결 착공식이 북쪽 개성 판문점에서 열렸다. 이조차도 미국의 제재 면제 승인이 있어서 가능했다.
남북한이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다양한 경제 제재가 풀려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먼저 미국의 제재가 풀려야 한다. 지난해 북한과 미국 간에 협상이 지지부진했다. 북한의 제재가 풀리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 핵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주장과 미국이 먼저 제재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속내야 어떻든 겉으로 보이는 현상은 그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 연초에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미 트럼프 대통령 간에 화해 무드가 조성되어 그 간의 경색 국면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지속발전을 위해서는 경제발전에 주력해야 하는 입장이고, 미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데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남북한이 평화와 번영으로 가기 위해 가야 하는 길은 짧지 않다. 미국의 상황 변화와 미국과 중국의 전세계를 건 헤게모니 싸움 등에 따라서 남북한 관계는 요동을 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남한과 북한의 내부 갈등도 남북한이 평화로 가는 길에서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남한 내에서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호의적이지 않은 개인이나 세력이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더구나 분단 70년이 지난 지금, 밀레니얼 세대는 북한과의 관계를 정서적 가치보다는 경제적 가치라는 잣대에서 보는 경향이 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부 천문학적 비용의 ‘통일비용’ 주장은, 특히 밀레니얼 세대에게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비판적으로 보게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통일비용’ 주장은 그 산출근거의 타당성도 의심스럽고, 독일식 흡수통일 같은 현실적이지 않은 것을 전제로 하므로, 비판의 여지가 있다. 또한 일부 통일비용에 대한 주장이 통일 불가의 근거로 이용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남한에서만 남북한 관계개선에 대해서 불편해하는 개인이나 세력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사는 북한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1월8일 CNN은 미국에서 2차 북미회담 장소를 선정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한반도 평화와 공존으로 가는 걸음이 느리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9년 내내 북미관계가 진척되다가 정체되고, 다시 진척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핵 폐기가 아니라, 북한 경제 개방의 과실을 누가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의 협상과 힘 겨루기 때문이다.
남북한 평화와 공존 그리고 번영의 길은 멀고, 험하며 좁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이나 남북한 관계개선을 남북한이 주도할 수 있는 부분은 작고, 정치체계와 경제 시스템이 다르며, 한반도가 급변하는 국제정치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의 당위성에 대해 남한과 북한이 모두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4차산업혁명’ 앞에서 주춤한 한국 사회
4차산업혁명은 산업혁명은 아니며,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새로운 혁명이다. 이는 범용기술의 등장 현황에 의해 확인할 수 있다. 인쇄술, 증기기관, 전기 및 컴퓨터가 범용기술에 해당한다. 범용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정치, 경제 및 사회에 큰 변혁이 일어났다. 범용기술인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산업혁명이 촉발되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통신, 스마트 로봇, 3D 프린팅, 가상/증강/혼합 현실 기술 등은 범용기술에 해당한다. 21세기에 범용기술 후보군이 10개 이상 등장했는데, 이들 범용기술은 디지털 기술과 직간접적인 관련성을 갖고 있다. 이는 산업이 근본적으로 변혁되며, 지식사회로 전환되고 있다는 의미다. 디지털 범용기술은 이들 역사적 전환의 촉매 기술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의 경우 로봇 밀도 및 순제조업 고용지수 등의 추이를 보면, 우리나라에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이유는 기술실업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제로봇연맹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로봇밀도는 1만명 당 631대로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일본의 로봇 밀도에 비해 2배 이상 많다. 이는 제조업 고용지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2013년 순제조업 고용지수 동향에 따르면 그 하락 속도가 미국과 비슷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이 금융, 우주기술, 디지털 기술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순제조업에서의 낮은 고용지수는 실업의 핵심 원인이 기술실업임을 보여준다. 참고로 2013년 순제조업 고용지수는 우리나라가 8% 초반, 미국이 7% 후반, 독일이 12%, 일본이 10% 가량이다.
2018년 8월11일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에서 ‘판문점선언 그리고 다시 만나다’라는 주제로 축하 공연에 나선 공연자들이 대형 한반도기를 배경으로 만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한반도 평화야말로 지식사회 전환의 디딤돌
2018년 미국의 국가과학이사회(National Science Board)에 따르면 2016년 전세계 무역량 중 지식 및 기술집약적 재화와 서비스가 46.1%를 차지한다. 이 수치는 매년 0.5%씩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원유 및 석탄 등의 에너지 관련 무역액을 제외하면, 지식 및 기술집약적 산업이 전세계 무역액의 과반을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세계 주요국이 지식사회로 전환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한국사회는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준비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한국사회가 지식사회로의 전환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는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했다. 그러한 성공경험은 우리사회가 지식사회로의 변혁에서 일종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이른바 성공의 함정에 빠져 있는 셈이다. 한국 사회는 디지털 역량, 미래 역량, 장년층 이후의 문해력 등이 OECD 국가 중에서 매우 낮다. 즉, 지식사회로 전환하는 데 한국사회는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빠른 경제 성장은 한국 사회가 스스로를 성찰하면서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는 역으로 밀레니얼 세대와 그 이전 세대의 문화적 가치관적 단절을 가져오기도 했다. 한국 사회는 시간이 필요하다.
남북한 평화와 공존은 한국 사회가 지식 사회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시간적 여유를 줄 수 있다. 남북한 경제협력은 한국 사회의 고용을 늘리고, 산업구조 재편을 위한 여유를 줄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 증가는 결혼율을 높이고, 결혼율의 증가는 출산율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남북한 평화와 공존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일부 문제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해결책을, 일부 문제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해결책을 줄 수 있다.
북한에도 남북한 평화공존은 국가의 지속성을 위해 필요하다. 북한은 불량국가 낙인에서 벗어나야 하고, 안정적 경제성장을 통해 사회적 통합도 이루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에도 남북한 평화와 공존은 절실할 것이다.
남한과 북한 사이엔 한민족으로서의 정서적 구심력이 있다. 남한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북한에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조력자와 협력자가 필요하다.
세 수 앞을 보는 한반도 미래 전략을 짜자
한반도의 미래는 여기 남북한 주민이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평화와 공존으로 가는 길에 국제정치는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미국 대선과 트럼프의 성향, 미국과 중국의 반세기에 걸칠 글로벌 헤게모니 경쟁, 일본의 변화와 한반도 전략 등에 의해 상당한 요동을 칠 가능성이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단기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헤게모니 싸움에서 중국이 미국에 밀릴 가능성이 커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고, 일본의 한반도 전략이 일본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내적인 것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다만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전략과 미국의 국익이 일치하는 수준에서 북한 개방 전략을 전개할 것인데, 이는 한편으로는 북한의 이해와 일치하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의 중장기 미래를 어둡게 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미래예측에 기반한 국제정치 및 외교력이 필요하다. 전체적 상황으로 보아 1년 혹은 2년 안에 북미 관계는 개선되고, 남북한 종전선언 및 평화체계는 안정적으로 구축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이후 남북한 관계가 후퇴할 위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므로, 역주행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국민이 감시해야 한다. 그간의 역사적 경험으로 한국 사회에 진영논리가 강한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남북한 평화와 공존이 생존을 위해서 절실함을 이해한다면, 진영논리가 강고하게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19년 하반기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어떤 일이 전개될까? 아래 정치, 기술, 경제, 인구, 환경 및 자원의 STEPPER의 시각 틀로 단기, 중기 및 장기 미래의 전개를 전망해 보았다. 아래 시기별 미래 전개는 필자가 공동필진으로 참여한 <카이스트, 통일을 말하다>에 실린 내용을 바탕으로 보완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 구축시의 한반도 미래 시나리오
제시된 한반도 미래전개는 지나치게 낙관적 전망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미래 전개는 한반도에 거주하는 역사의 주인인 우리가 선호하는 미래라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즉, 위의 미래 전개의 주요 흐름은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변화를 준비하고 만들어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미래 전략이 유효하려면 적어도 세 수 앞을 내다보아야 한다. 세 수의 깊이로 다양한 가능성을 전망하고, 이에 따라 한반도의 미래를 주도할 수 있는 방안을 ‘딥 시나리오’(Deep Scenarios)라고 할 수 있다.
기존 한반도 미래 시나리오의 6가지 문제점
남북한 통일 혹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다. 이들 시나리오의 작성에 상당한 전문가가 투입되었고 적잖은 재원이 투입되기는 했으나, 당시 정치적 상황의 투영이었던 점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래학의 시각에 볼 때, 기존 남북한 미래 시나리오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북한을 남북한 관계의 또 다른 당사자로 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둘째, 남북한 관계가 두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정치의 틀 속에서 진행되는 면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셋째, 남북한 관계가 미래 시점을 대상으로 역동적으로 변화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즉, 정태적으로 미래 시나리오를 제시한 경우가 많았다. 넷째,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미래 시나리오에 반영하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다섯째, 미래 시나리오가 남북한의 미래를 위한 전략과 전술적 측면에서 활용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이는 그간의 미래 시나리오가 정태적이며 그 깊이가 낮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북한이 같이 모여서 미래 시나리오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미래 시나리오란 사회적 합의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역할도 한다. 남북한 미래에 대한 공동 시나리오 작업은 현재까지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으나, 앞으로는 남북한 미래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으로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남한 내에서 다양한 계층과 이해관계자가 같이 모여 미래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으로 고려해야 한다.
필자가 과문해서 그럴 것이나, 통일부나 국정원에 남북한 미래 시나리오 전담 조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만약 그렇다면 통일부과 국정원이 각기 관련 전담조직을 두는 것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아래 도표는 남북한 주도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딥 시나리오’ 방법론을 도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맥락과 다원성, 역동성 아우르는 3차원 접근 필요
한반도를 둘러싼 사회, 기술, 경제, 정치 등에 대한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한반도의 상황 변화에 따라 누가 이득을 보고 손해를 보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에 따라 미래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각 미래 시나리오에 따른 미래 전개도(Futures Wheel)를 작성해서, 인과관계가 발산적으로 전개되는 시나리오를 작성해야 한다. 여기서 구체적 미래전략과 위험대응 방안이 도출될 것이다. 핵심 미래 전개 항목에 대해 심도 있는 미래 시나리오를 작성하여 3단계 시나리오를 작성함으로써, 다양한 행위자들의 미래 행위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미래는 정태적이지 않고 역동적이며,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일종의 전쟁게임(Wargame)과 같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미래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특정 시각이 아니라 전체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함은 당연하다. 딥 시나리오를 수립하는 데, 공간과 시간의 맥락성, 전체적 시각을 위한 다원성 및 미래 역동성에 대해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3차원 미래예측방법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굳이 딥 시나리오가 아니라 하더라도 역동적이며 깊은 단계로 미래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준비하면 된다.
한반도가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은 멀고, 좁고, 험하다. 그 길을 한반도에 거주하는 한민족이, 그리고 대한민국이 주도적으로 개척하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반도 미래 시나리오에 기반을 둔 미래전략이 필요하다. 2019년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정부가 한반도 미래 시나리오 조직을 둘 것을 제언한다.
윤기영/미래학자·에프엔에스미래전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