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우주를 들락날락하는 첨단 기술문명 사회에서 살고 있음에도 여전히 수천년 전의 운명학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한 해가 시작될 때면 역술가들의 온-오프라인 상담코너는 운세를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운세 시장 규모가 한 해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는 이도 있다. 예측기술이 발달한 첨단 테크놀로지 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불확실성 속에 살고 있음을 말해준다.
전통 운명학에서 말하는 운명이란 무엇일까? 사주명리학자인 동국대 평생교육원 겸임교수 김동완 박사가 운명학에 관한 입문서 ‘사주명리 인문학’(행성B, 2만2000원)을 펴냈다. 사주명리학뿐 아니라 성명학, 관상, 풍수지리, 점성술, 타로 등 동서양의 전통 운명학들에 대한 개괄적 설명과 함께 이것들이 어떻게 생겨났고 발전해 왔는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우리는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해 역사적 사례와 자신의 상담 사례를 섞어가며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길을 끄는 점은 운명학에 대한 저자의 태도이다. ‘사주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다’ ‘부조리한 사회에서는 좋은 사주도 기를 못 편다’ ‘관상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선한 마음만 한 것이 없다’ ‘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면 관상도 좋아진다’ ‘운명학은 더불어 살게 한다’ 등 책 속의 소제목들에서 운명학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운명학이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운명을 잘못 접근하는 데 있다고 본다. 그는 운명(運命)이란 말 뜻 그대로 `목숨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타고난 삶을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운영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운명학은 정해진 운명을 알아보는 학문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예측하는 학문이라는 것. “운명학은 우리네 삶이 일정 부분 결정돼 있더라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타고난 달란트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살려나간다면 미래는 희망적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그가 추구하는 운명학은, 상담학의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다.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나름의 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미래학적인 모습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웨이터와 구두닦이, 신문팔이와 껌팔이, 넝마주이 등 다양한 생활을 직접 체험하면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사주와 운명의 관계를 확인하고 운명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운명을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것도 이 책의 또다른 특징이다. 저자는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올바르게 자리 잡아 다툼, 부조리, 불의가 없어야만 제 운명을 올바르게 운용할 수 있다”며 “계급사회, 독점사회에서는 아무리 사주가 좋아도 삶이 어렵고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에서야 비로소 제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자신이 운명학을 하는 이유를 `애지욕기생'(愛之慾基生)으로 설명한다.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이 말은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이 제 삶을 온전히 다 살도록 돕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저자에게 사주 분석은 각 개인의 재능과 장점을 찾아내는 방법론인 셈이다.
정확한 사주 분석을 하려면 동경 135도를 표준으로 삼은 지금의 시간에서 32분을 빼야 한다는 점, 풍수지리상 물이 휘감아 도는 여의도는 국회 자리로 좋지 않다는 점, 한국 젊은이들의 관상은 좋아지고 있는데 일본 젊은이들의 관상은 부모세대보다 못하다는 점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여럿 있다.
곽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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