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19’에 차려진 중국의 통신업체 화웨이 전시관, <한겨레> 자료사진.
■ 실태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 사이에 디지털 기술 냉전이 개막했다. 지난해부터 계속되어온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된 게 신호탄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협상 결렬을 발표하면서, 2000억달러의 중국산 상품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미 상무부는 16일 중국의 거대 기술기업 화웨이와 계열사 68곳을 거래제한 기업으로 지정했다. 구글은 19일 화웨이 스마트폰에서 안드로이드 운영체체 접근을 차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인텔,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브로드컴, 자일링스 등 주요 정보기술 업체들도 속속 화웨이에 대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공급 중단에 나섰다. 영국의 반도체 설계회사인 암(ARM), 독일의 반도체기업 인피니온도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하지 않기로 했다.
매출액 1000억달러의 거대기업 화웨이에 제품 공급을 중단하기로 함에 따라, 인텔 등 미국 기술기업들의 주가는 급락했다. 중국 정부와 화웨이는 “굴복하지 않겠다”며 미국을 상대로 한 보복과 독자생존을 다짐하고 있다.
■ 배경
출발은 대중 무역적자 감축을 내건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에서 비롯한 무역분쟁이었지만, 진짜 이유는 미-중간 디지털 기술 패권 경쟁이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에 대한 전면 제재에 나섰지만, 구체적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사용하게 되면 기밀이 유출되고 국가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미 정부의 제재 근거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 통신장비에 사용자 정보를 몰래 빼내는 장치(백도어)가 설치돼 있다는 주장을 해왔지만,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23일 “화웨이는 중국 공산당과 깊이 연계돼 있다”고 우려를 공식화했다.
지난 2월 화웨이의 기술담당 사장 궈핑은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를 통해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에 의해 미 국가안보국이 전 세계 모든 통신망과 정보를 도청하는 실태가 밝혀졌다”며 “미 국가안보국이 도청을 위해 라우터를 수정하려 해도 중국 회사는 협력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궈핑은 또 화웨이가 5세대(5G) 통신 기술에서 경쟁사보다 1년 앞서 있기 때문에, 전략적 핵심 기술 경쟁에서 뒤처져 있는 미국이 화웨이를 저지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화웨이는 5세대통신 핵심 특허를 다수 보유한 선두기업이며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이다.
미-중 기술 냉전 배경엔 5세대통신 기술의 막대한 영향력이 있다. 5세대통신은 스마트폰과 자율주행, 원격진료 등 소비자용으로도 쓰이지만, 기존 3세대, 4세대 통신망과도 호환되는 속성상 향후 산업용, 군사용을 비롯한 모든 통신망을 대체한다. <엠아이티(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지난 2월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환경에서 미국 정부는 중국기업이 5세대통신 인프라를 통제하는 것을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 화웨이 경계의 주된 이유라고 보도한 바 있다.
■ 전망
향후 네트워크의 패권과 디지털 세계 주도권을 좌우하는 5세대통신 기술 특성상 미-중 대결이 절충과 타협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 경제적, 군사적 패권을 뒷받침할 핵심기술과 통제권을 양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리 와인 미 랜드연구소 정책분석가는 지난 28일 <뉴욕타임스>를 통해 “미국은 중국을 이런 방식으로 다루는 게 오히려 중국을 더 빠르고 강하게 자립하게 하고 미국에 덜 의존하게 만드는 부메랑이 된다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제재가 몇년간 화웨이를 힘들게 할 수 있지만 생존력을 키워 중국이 10년쯤 뒤엔 훨씬 강한 기술적, 경제적 지배력을 갖게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엠아이티 테크놀로지 리뷰> 최신호는 미국의 제재가 화웨이와 중국의 독자 시스템 개발을 부추겨 디지털 세계를 별도의 운영체제, 제품, 생태계가 존재하는 파편화로 이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경제포럼의 기술분석가 즈비카 크리거는 호환성 없는 제품과 플랫폼은 기술 혁신을 방해해, 지난 10여년간처럼 빠르고 광범한 혁신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엠아이티 테크놀로지 리뷰>를 통해 말했다.
구본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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