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향상된 상태를 추구하는 인간 본능의 자연스러운 발현인가, 타고난 본성과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일탈적 행동인가.
몸 안에 전자칩과 같은 기계장치를 삽입해 타고난 신체 기능을 ‘업그레이드’하는 ‘트랜스휴먼(Transhuman)’ 움직임이 늘어나면서 규제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형성되고 있다. 영국 <비비시(BBC)>는 지난 6일 늘어나고 있는 트랜스휴먼 시술의 현황과 논란을 보도했다.
<비비시>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 사는 31살의 여성 엔지니어 윈터 므라즈는 몸에 여러 개의 전자칩을 삽입했다. 므라즈의 왼손에는 자신의 집 열쇠 기능을 하는 RFID 무선통신칩이 심겨져 있다. 열쇠를 휴대하지 않아도 되고 분실할 우려가 없다. 그녀의 오른 손에는 명함을 비롯해 다양한 정보를 담은 NFC칩이 심겨져 있다. 응급시 혈액형 등 그녀의 의료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들어 있는 근거리 통신칩(NFC)와 마찬가지 기능을 갖고 있어, 정보 교환이나 결제용으로도 쓰인다. 므라즈는 최근에는 몸에 2개의 LED 임플란트를 이식했다. 자석과 같은 자성물질이 그녀의 피부 위를 스칠 때마다 피부 속에 심은 엘이디가 점등돼 깜빡거린다. “나는 반짝거리며 빛을 내는 걸 좋아해요”라는 므라즈의 말은 트랜스휴먼 시술이 신체기능의 업그레이드를 넘어 개인의 미적 추구와 자기표현 용도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므라즈가 트랜스휴먼적 시도에 나서게 된 계기는 그녀가 미국에서 겪은 심각한 자동차 사고다. 척추, 발목, 무릎 뼈가 부러지는 큰 사고였다. 므라즈는 나사로 뼈를 고정하고 파손된 무릎에 3D 프린터로 만든 인조 슬개골을 시술했다. 몸 안의 인조구조물 덕분에 지팡이를 짚지만 걷는 능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팡이를 짚는 손으로 동시에 열쇠를 쥔다는 것은 반복되는 일상의 불편이었다. 므라즈가 자발적으로 왼손 손등에 열쇠 기능의 무선전자칩을 삽입하는 시술을 받은 이유다. 이후 하나둘 그녀의 트랜스휴먼적 시술이 추가되고 있다.
영국 BBC는 최근 신체에 전자칩을 삽입해, 열쇠나 NFC 칩 용도로 활용하는 개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소개했다. BBC 제공
므라즈는 “트랜스휴먼 기술은 몸을 업그레이드할지 안할지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게 아니라, 나처럼 장애 때문에 그런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을 위한 기술입니다”라고 말했다. 영국 레스터에서 전자칩 등을 신체에 삽입해주는 트랜스휴먼 시술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바이오 해커 제노바 레인은 일주일 평균 5건의 전자칩 임플란트를 시술하고 있는데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영국에서 대부분의 전자칩 임플란트 시술은 타투와 피어싱 샵에서 이뤄지고 있다. 현재 이러한 마이크로칩 이식은 주로 주사기를 통해 손등에 이뤄지고 있다.
트랜스휴먼 시술을 선택한 이들은 사람이 몸에 전자칩을 넣는 행위가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려는 자연스러운 시도라고 본다. 트랜스휴먼 시술을 받은 스티븐 리올은 “스마트TV, 스마트폰을 비롯해 모든 것이 스마트해지고 있는 세상에서 왜 나는 스마트해지면 안되는가”라고 반문한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애플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가 보편화하고 있으며 각 사무실의 출입문 보안도 열쇠에서 지문-얼굴인식 등 생체정보 단계를 넘어 전자칩 삽입을 고려하고 있는 것처럼 트랜스휴먼적 시술이 몇 년 안에 일반적으로 수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준이 없는 상태로 진행되고 있는 전자칩 임플란트 시술이 확대됨에 따라 보건당국도 규제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