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생각]
나무 벨 필요 없고 원하는 모양 척척
MIT, 백일초로 개념증명 실험에 성공
나무 벨 필요 없고 원하는 모양 척척
MIT, 백일초로 개념증명 실험에 성공
형광 현미경으로 본 백일초 세포. MIT 제공
마다가스카르의 불법 벌목 현장. 위키미디어 코먼스
환경 부담 줄이는 생체 재료 획득 방식 물론 실제 가구를 만들 수 있는 목재를 배양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벌목 산업의 환경 영향을 덜어주는 새로운 생체 재료 획득 방식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력이 큰 기술로 기대된다. 숲을 파헤치는 임업은 농업보다 환경에 훨씬 더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루이스 페르난도 벨라스케스-가르시아 교수는 “수백년간 이어져 온 비효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논문 제1저자 애슐리 베크위드(Ashley Beckwith) 박사과정 연구원은 얼마 전 농장에 머무르고 있을 때 이번 연구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자원 투입량 대비 수확량을 더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방법이 있다면 경작지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농장에서 이런 화두를 얻은 그는 궁리 끝에 나무와 같은 성질의 식물 조직을 실험실에서 직접 배양해 보기로 했다. 그가 첫 실험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백일초였다.
꽃이 핀 백일초(백일홍). 픽사베이
3D 프린팅처럼 다양한 형태 가구 가능 그와 동료 연구진은 백일초 잎에서 살아있는 세포를 추출한 뒤, 이를 배양액에 넣어 증식시켰다. 그런 다음 세포를 옥신과 사이토키닌이라는 두 가지 식물 성장 호르몬과 혼합했다. 연구진은 호르몬 농도를 바꿔가면서 세포가 리그닌을 생산하는 양을 살펴봤다. 리그닌은 나무를 단단하게 해주는 고분자 화합물이다. 그 결과 이 과정을 조절하면 나무와 비슷한 성질의 물질을 얻어낼 수 있음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이 배양목재 생산 과정을 3D 프린팅 기술의 확장판이라고 설명했다. 3D 프린팅과 마찬가지로 식물 세포들이 배지(배양액) 안에서 스스로 몸을 불려가기 때문이다. 배지 안의 겔이 세포가 특정 모양으로 자라게 해주는 지지대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잘 발전시켜 나가면 접착제나 못 등의 도구 없이도 다양한 형태의 가구를 `배양' 방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급진적이고 우아한 새 패러다임” 연구진은 호르몬 농도, 겔의 산도(pH) 조정을 통해 이 방식으로 어떤 성질의 물질을 얻을 수 있는지 더욱 상세하게 살펴볼 계획이다. 벨라스케스-가르시아 교수는 “이 분야는 정말 미지의 영역”이라며 “이번 연구 성과가 다른 식물 종에도 통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의 일원인 제프리 보렌스타인 교수(생물의학)도 이번 연구에 대해 “정말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급진적이고 우아한 새 패러다임”이라고 말했다. 2013년 첫 선을 보인 배양육은 8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시제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갓 개념증명 단계를 통과한 배양목재가 갈 길은 더욱 멀 것이다. 하지만 상용화될 경우 목재 시장에 미칠 영향을 생각한다면 지난한 연구개발 과정에 도전할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이 연구 내용은 국제학술지 `더 깨끗한 생산 저널'(Journal of Cleaner Production) 3월호에 실렸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