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접근하는 소행성 상상도. 유럽우주국 제공
지난해 12월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SF영화 ‘돈 룩 업'은 지구 충돌 궤도에 진입한 에베레스트산 크기의 혜성을 둘러싼 인간들의 엇갈린 대응을 다룬 블랙 코미디다. 이 영화에서 혜성을 발견한 주인공들과 함께 백악관에서 대통령을 기다리는 일행 중엔 지구방위조정실(PDCO)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기구의 책임자가 있다.
그런데 이 기구는 ‘픽션’이 아니다. 실제로 미 항공우주국(나사)이 소행성과 혜성의 충돌 위험을 감시하기 위해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기구다. 수많은 우주의 지구근접물체(NEO) 가운데 잠재적 위협 물체(PHO)를 집중 감시하고 그 영향을 분석해 대책을 마련하는 게 이 기구의 임무다. 잠재적 위협 물체는 지구 궤도로부터 500만마일(800만km) 이내의 거리까지 다가올 수 있고, 지구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크기 30미터 이상의 우주 물체를 말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왼쪽)과 칠레에 설치 중인 소행성 추적 망원경. 나사 제공
지구방위조정실은 소행성 감시를 위해 ‘소행성 지구충돌 최종 경보 시스템’(ATLAS=Asteroid Terrestrial-impact Last Alert System)이라는 이름의 소행성 추적 망원경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하와이대 천문연구소가 운영하는 이 소행성 감시망이 처음으로 지구를 에워싸고 있는 하늘 전역을 24시간마다 관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나사는 최근 남반구인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칠레에 각각 소행성 추적 망원경을 추가로 설치했다고 밝혔다. 남아공은 서덜랜드 천문대에, 칠레는 엘소스천문대에 각각 설치했다. 이로써 아틀라스를 구성하는 망원경은 기존 2대를 합쳐 총 4대로 늘어났다.
하와이의 할레아칼라와 마우나로아 화산 정상에 설치한 소행성 추적 망원경. 하와이천문연구소 제공
지름 20미터는 하루전, 100미터는 3주전 가능
2017년부터 가동해온 하와이 할레아칼라와 마우나로아 화산 정상의 망원경은 북반구, 이번에 설치한 망원경은 남반구 하늘을 각각 담당한다.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하와이의 낮 시간에도 밤하늘을 관측할 수 있게 된 셈이다.
4대의 아틀라스 망원경은 한 번에 보름달보다 100배 더 넓은 영역의 하늘을 관측할 수 있다. 특히 달보다 더 가깝게 접근하는 물체를 탐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도시 한 곳을 파괴할 수 있는 지름 20미터 소행성의 지구 충돌 위험은 하루 전에, 지름 100미터 소행성은 최대 3주 전에 경보를 내릴 수 있다. 하와이천문연구소는 지름 100미터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할 경우, 그 파괴력은 최근 폭발한 통가 화산의 10배에 이른다고 밝혔다.
2018년 남아프리카에 운석을 남긴 소행성 ‘2018 LA’의 마지막 비행 궤적. 위키피디아
나사가 지금까지 발견한 소행성은 2만8000개에 이른다. 아틀라스 시스템은 이 가운데 700개 이상의 지구근접 소행성과 66개의 혜성을 발견했다. 그 중 두 개의 소행성(2019 MO, 2018 LA)은 실제로 지구에 충돌했다. 둘 다 크기 3미터 안팎의 작은 소행성으로 지구에 별다른 피해는 주지 않았다. 2019 MO는 남미 푸에르토리코 상공에서, 2018 LA는 2018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보츠와나 국경 근처 상공에서 폭발해 운석들을 남겼다.
이번에 설치한 남아공의 망원경은 1월22일 지구 위협 물체는 아니지만 크기 100미터 소행성 2022BK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2026년 발사할 소행성 탐지 우주망원경 ‘네오 서베이어’ 상상도. 나사 제공
지구방위조정실을 이끌고 있는 린들리 존슨(Lindley Johnson)은 보도자료에서 “우리는 아직 지구에 대한 심각한 소행성 충돌 위협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목표는 충돌 가능성을 몇년 또는 수십년 먼저 알아내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로 충돌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나사는 지구방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난해 11월 소행성 궤도 변경 실험을 위한 우주선 다트(DART=Double Asteroid Redirection Test, 쌍소행성 궤도수정 시험)를 쏘아올렸다. 다트 우주선은 2022년 9월 지구에서 1100만km 거리에 있는 지름 160m의 천체 디모르포스에 충돌해 궤도를 변경하는 실험을 한다.
나사는 2026년에는 소행성 탐지 우주망원경 ‘네오 서베이어’(NEO Surveyor)를 지구에서 150만km 떨어진 우주공간으로 보내, 더욱 촘촘한 소행성 감시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 우주망원경은 암흑 우주 속에서 광학망원경으로는 잡아내기 어려운 아주 작은 소행성들을 적외선으로 탐지한다. 적외선은 햇빛을 받은 소행성이 내는 아주 작은 열 에너지도 감지할 수 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