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궤도를 돌고 있는 한국의 다누리호 상상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미국과 소련 사이의 달 착륙 경쟁 60여년 만에 달 탐사 경쟁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2020년 코로나 발생 이후 주춤했던 달 탐사 프로젝트가 5일로 예정된 한국 최초의 달 궤도 탐사선 다누리호 발사를 신호로 다시 활발해질 전망이다.
1960년대가 체제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양자간 경쟁이었다면 이번엔 달 기지 건설과 우주 자원 확보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추가되면서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들과 민간 기업까지 참여하는 다층, 다원적 경쟁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달에는 미래의 핵융합 원료로 주목받는 헬륨3가 적어도 100만톤 이상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류 전체가 2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이다.
미국과 일본에선 우주기업들이 민간 달 착륙선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사상 최초의 민간 달 착륙선이 올해 안에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러시아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제재 등의 여파로 일부 국가의 경우 일정이 그대로 지켜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공식적으로 달 탐사를 추진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인도, 그리고 아랍에미리트와 영국, 멕시코 9개국이다. 예정대로라면 이 가운데 한국과 아랍에미리트, 영국, 멕시코가 올해 안에 새롭게 달 탐사국 반열에 올라선다. 이 가운데 자체 개발한 탐사선을 보내는 건 한국뿐이다. 나머지 나라들은 다른 나라의 우주선에 소형 탐사장비를 태워 보낸다.
달 탐사에서도 민간기업이 주역으로 참여하는 뉴스페이스 시대가 시작됐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올해의 달 탐사 계획 중 가장 거대한 프로젝트는 미국의 유인 달 착륙 프로그램 아르테미스이지만, 세계 과학자들은 한국의 다누리호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유명 국제 과학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최근 장문의 기사를 통해 다누리호에 대한 과학계의 기대를 소개했다.
‘네이처’는 ‘모두가 무척 흥분해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누리호가 과학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이언스’는 노트르담대 클라이브 닐 교수의 말을 인용해 “한국의 달궤도선이 달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생산할 일련의 장비들을 가져간다”고 전했다.
12월 초 달 상공 100km 궤도에 도착하는 다누리호에는 한국이 개발한 5개의 장비와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이 개발한 달 영구음영지역 관측카메라 ‘섀도캠’이 탑재돼 있다.
과학계는 이들 장비 가운데 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한 광시야 편광 카메라 폴캠(PolCam)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이 카메라에 대해 일제히 “달 관측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 장비”라고 평가했다.
무게 3kg의 이 카메라는 사상 최초로 편광을 이용해 전체 달 표면 지도를 작성한다. 물체가 빛을 산란시키는 방향(편광)을 분석해 달 표면에 어떤 입자와 암석들이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헬륨3 및 월면의 마그마 분출과 관련이 있는 티타늄의 100미터 고해상도 분포도가 가능다고 천문연구원은 설명한다. 이는 향후 달 자원 탐사 후보지와 착륙지 선정 등에 유용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누리호에 탑재된 6개의 장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학연구소 레이첼 클리마 교수(행성지질학)는 ‘네이처’에 “달에는 동화속의 성을 연상시키는 작고 구멍 숭숭 뚫린 탑 모양의 희귀한 구조물이 있는데 편광 카메라 덕분에 이를 연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구조물은 중력이 강한 지구에서는 생겨날 수 없어, 그동안 연구가 어려웠다. 폴캠의 데이터를 이용해 화산재 퇴적물을 분석할 계획인 윌리엄 패런드 우주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행성지질학)은 폴캠을 “신기원을 여는 장비”라고 표현했다.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UCSC) 이안 개릭-베델(행성과학) 교수는 “달 표토의 질감과 입자 크기를 담은 달 표면 지도가 완성되면 달에 관한 과학적 수수께끼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다누리호에 탑재된 나사의 섀도캠도 큰 기대를 받고 있다. 달의 영구음영지역에는 달 형성 초기에 혜성 충돌 등으로 내부에서 표면으로 튀어나온 휘발성 물질이 수십억년 동안 그대로 갇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섀도캠은 이 물질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다.
경희대 연구진이 개발한 ‘달 자기장 측정기’(KMAG)도 주목받는 장비다. 달 표면에서는 강력한 자기장이 감지된다. 이는 달의 핵이 매우 작다는 걸 고려하면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자기장 측정기는 이 수수께끼를 푸는 데 일조할 수 있다. 개릭-베델 교수는 “우주선의 수명이 끝날 즈음 달에서 20km 떨어진 거리까지 날아가 달 자기장을 더 잘 측정한다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했다. 그러기 위해선 다누리호를 달 표면에 충돌시켜야 하지만 이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다누리호 발사 주체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임무 종료 6개월 전인 2023년 6월 다누리호의 활동을 어떤 식으로 마무리할지 결정할 계획이다.
미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 발사대에서 에스엘에스(SLS) 로켓에 실려 있는 아르테미스 1호 우주선.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가장 방대한 계획을 진행하고 있는 나라는 역시 미국이다.
총 투입비용 930억달러에 이르는 달 착륙 프로그램 아르테미스를 추진 중인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은 이달 29일 우주선 아르테미스 1호로 첫 무인 달 궤도 비행에 나선다. 이때가 여의치 않을 경우에 대비해 9월 2일과 5일도 예비 발사일로 정해 놓았다.
나사가 새롭게 개발한 에스엘에스(SLS) 로켓에 실려 발사되는 아르테미스 1호의 임무는 마네킨을 태우고 한달여 간 달 궤도를 비행한 뒤 돌아오는 것이다. 이 무인 비행에 성공하면 내년엔 사람을 태운 아르테미스 2호로 똑같은 코스를 왕복여행한다. 이어 2025년 아르테미스 3호 비행에서 아폴로 프로그램 이후 56년만에 유인 달 착륙을 시도한다.
나사는 앞서 지난 6월 아르테미스의 중간기착지로 쓸 게이트웨이(달 궤도 정거장)의 공전궤도를 사전답사할 큐브샛 캡스톤 위성을 발사했다. 이는 2017년 수립된 아르테미스 계획이 5년만에 첫 발을 뗐음을 알리는 신호다.
미국 아스트로보틱의 달 착륙선 ‘페레그린’. 아스트로보틱 제공
나사는 아르테미스 성공을 위해 민간 차원의 달 탐사 프로그램(CLPS)도 지원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참여 기업으로 선정된 아스트로보틱이 올해 말 착륙선 페레그린을 발사할 예정이다. 페레그린은 나사 장비를 포함해 10여개의 탑재체를 싣고 달 적도 북쪽 중위도에 있는 ‘죽음의 호수’(Lacus Mortis)에 착륙한다.
탑재체 중 세 가지가 눈길을 끈다. 하나는 영국의 신생기업 스페이스빗이 개발한 4족 보행 로봇 ‘아사구모’다. 보행 로봇이 다른 천체에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무게 1.5kg의 아사구모는 8일(지구 기준) 동안 10미터 이상을 이동하며 바퀴가 아닌 다리로 울퉁불퉁한 지형을 이동하는 능력을 시험하고 사진을 촬영해 지구로 전송한다. 이번 탐사는 기술 시연이다. 최종 목표는 아사구모 함대를 구성해 달의 용암 동굴을 구석구석 탐험하는 것이다.
스페이스빗은 2014년 우크라이나 출신 기업가가 설립한 회사로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영국에 첫 달 탐사라는 기록을 선물하게 된다. 지난해 스페이스빗은 2022년 우크라이나의 첫 달 탐사 계획도 발표했으나 이후 진행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 로봇벤처기업 다이몬은 자체 개발한 초소형 달 탐사기 ‘야오키’를 보낸다. 야오키는 무게 0.6kg, 폭 15cm의 초소형으로 바퀴가 2개 달려 있다.
멕시코는 페레그린에 다섯대의 소형 로봇을 태워 보낸다. ‘콜메나’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60g의 소형 로봇 5대가 달에서 협업하는 시험을 할 예정이다.
민간 달 탐사 프로그램의 또다른 참여기업 인튜이티브 머신스는 착륙선 노바-시(Nova-C)를 준비하고 있다. 노바-시는 달 착륙선 중 처음으로 달 남극 섀클턴 충돌구의 영구음영지역을 탐사한다. 약 1미터 깊이까지 구멍을 파 얼음을 채굴하는 게 목표다. 또 호퍼(Hopper)라는 점프 로봇이 개구리처럼 뛰어오르는 방식으로 이 지역을 답사한다. 이 회사는 노바-시 발사 시점이 올해 말에서 내년 1월로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최근 밝혔다.
아이스페이스 기술진이 달 착륙선을 조립하고 있다. 아이스페이스 제공
일본, 사상 첫 민간 착륙선 놓고 미국과 경쟁
일본에서는 정부보다 앞서 민간기업이 달 착륙의 문을 먼저 두드릴 것으로 보인다.
엑스프라이즈재단이 주최하는 민간 달 착륙선 경쟁에도 참가했던 우주기업 아이스페이스(ispace)가 올해 안에 착륙선을 달에 보낼 계획이다.
아이스페이스의 다케시 하카마다 대표는 최근 “9월까지 모든 시험을 끝내고 이르면 11월에 스페이스엑스의 팰컨9 로켓으로 착륙선 M1을 보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착륙 예정지는 달 북위 45와 남위 45도 사이다. 계획대로라면 아이스페이스는 미국의 아스트로보틱과 ‘사상 최초의 민간 달 착륙선’이라는 타이틀을 놓고 겨루게 됐다.
착륙선에는 2대의 로버(로봇탐사차)를 포함해 카메라, 전고체 배터리 등 다수의 탑재물이 실려 달이라는 극한 환경에서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는지 시험한다.
일본의 정밀 달 착륙 실증 시험선 ‘슬림’. 작사 제공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작사)는 2023년 3월 이전에 다네가시마우주센터에서 달 탐사선 ‘슬림’(SLIM)을 보낸다.
이 우주선은 역대 가장 정확한 정밀착륙 기술을 시연해 보일 예정이다. 목표지점으로부터 100미터 범위 안에 착륙하는 걸 목표로 한다.
높이 2.4m, 폭 2.7미터, 무게 200kg(건조중량)인 슬림은 일단 달 상공 600km에서부터 착륙 지점을 향해 3.5km 고도까지 내려간 뒤 수직하강을 시작, 3미터 상공에 이르러 엔진을 끄고 착륙을 시도한다. 탑재 장비 가운데 하나인 감람석 분광기 개발이 늦어지면서 해를 넘겨 내년에 발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아랍에미리트의 달 로봇탐사차 ‘라시드’. MBRSC 제공
중동의 소국 아랍에미리트는 일본의 우주선에 달 탐사장비를 실어 보낸다.
일본 아이스페이스의 착륙선에 모하메드빈라시드우주센터(MBRSC)가 개발한 라시드(Rashid)라는 이름의 로봇탐사차를 탑재한다.
라시드는 무게 10kg으로, 현재 유일한 달 탐사선인 중국 창어 4호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작동 수명은 달의 하루 중 낮시간(지구 기준 14일)이다.
라시드란 이름은 1971년 아랍에미리트 국가 수립 당시 두바이 통치자의 이름에서 따왔다. 라시드에는 4대의 카메라를 포함한 6개의 과학장비가 탑재된다. 아랍에미리트는 2020년 화성에 탐사 궤도선 아말을 보낸 바 있다.
러시아의 루나 25호 모형. 위키미디어 코먼스
러시아와 인도는 올해 예정했던 달 탐사를 일단 내년으로 미뤘다.
러시아는 오는 9월 달 남극 탐사선 루나 25호를 발사할 예정이었으나 장비 개발 일정이 지연됨에 따라 발사 시기를 내년 이후로 늦췄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유럽우주국과의 협력이 중단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유럽우주국은 루나 25호의 내비게이션 카메라 제작을 맡았었다.
러시아의 달 탐사는 1976년 루나 24호 이후 거의 반세기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루나 25호의 일정이 지연되면서 2~3년 후에 보내기로 한 루나 26호와 루나 27호도 순차적으로 뒤로 밀려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러시아 경제가 더 불안정해질 경우 발사는 더 미뤄질 수도 있다.
인도 우주연구기구(ISRO)가 애초 올해 8월 발사할 예정이었던 무인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도 내년 1분기로 미뤄졌다. 달 남극을 탐사할 찬드라얀 3호는 착륙선과 로버로 구성된다.
인도는 앞서 2019년 궤도선과 착륙선, 로버로 구성된 찬드라얀 2호를 보냈으나 착륙 직전 달에 추락하면서 실패한 바 있다. 인도 최초의 달 탐사선 찬드라얀 1호는 2008년 달 표면 충돌 실험을 통해 달에 물이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중국은 당분간 달 탐사 계획이 없다. 가장 가까운 일정은 2024년 두번째 달 표본-수집 우주선 창어 6호를 보내는 것이다. 지금은 올해 말 완공이 목표인 톈궁 우주정거장 구축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2019년 창어 4호로 사상 최초의 달 뒷면 착륙이라는 기록을 세운 데 이어, 2020년엔 창어 5호로 달 표본을 갖고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기업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효율을 중시하는 뉴스페이스 시대가 열렸다고 해서 전통적인 국가 위상과 지정학을 둘러싼 우주 경쟁이 사라진 건 아니다.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학연구소의 달 연구원 데이비드 블루웻은 중국의 잇단 달 프로그램과 미국의 유인 달 착륙 재개를 그 사례로 들며 “다른 나라들도 달 표면에 깃발을 꽂는 식으로 달에서 자국의 색깔을 드러내고 싶어한다”고 ‘네이처’에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