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8500년이 지난 후에도 감염력을 유지하고 있는 영구동토층의 바이러스는 달걀 모양의 판도라 바이러스(왼쪽)다. 오른쪽은 판도라 바이러스와 이보다는 작은 또 다른 거대 바이러스인 메가바이러스(흰색 화살표). 바이오아카이브에서
기후변화는 두 가지 방향에서 인간에 대한 바이러스의 위협을 키운다.
하나는 바이러스와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이다. 지구 평균 기온이 높아지면서 열대 지역의 바이러스가 온대 지방으로 확산된다. 바이러스의 숙주 역할을 하는 열대 동물의 서식지가 지구 온난화로 인해 고위도 지방까지 넓어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2017년 호주 태즈매니아대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0년마다 육지생물은 17km, 해양생물은 72km씩 고위도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0년 기상청이 발표한 ‘한국기후변화 평가보고서’는 뎅기열바이러스를 옮기는 열대지방의 흰줄숲모기가 2050년에는 한국에도 토착화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다른 하나는 잠자던 바이러스가 깨어나는 것이다. 빙하나 영구동토층에 갇혀 있던 바이러스가 얼음이 녹으면서 바깥 세상으로 나온다. 수천년 동안 얼음 속에서 꼼짝 못하고 있던 바이러스는 인간의 면역체계가 접해 보지 않은, 전혀 낯선 잠재적 공포의 대상이다.
4만8500년 동안 시베리아 영구동토층 안에서 언 상태로 있던 바이러스가 되살아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구동토층의 전체 면적은 북반구 육지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프랑스 악스-마르세유대 장-미셸 클라베리 교수팀은 2만7천년~4만8500년 전 형성된 동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얼어버린 바이러스 7종을 찾아내 번식력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했다고 최근 사전출판논문집 ‘바이오아카이브’에 발표했다. 이는 같은 연구진이 2014년과 2015년에 발견한 3만년 전 바이러스 2종(판도라바이러스, 몰리바이러스)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다.
연구진은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아메바를 미끼로 삼아 바이러스를 찾아냈다. 아메바 배양액에 영구동토층 시료를 넣어두고 아메바의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판도라 바이러스가 발견된 영구동토층(빨간색 점). 데일리메일에서 재인용
연구진은 9종의 바이러스는 모두 세포를 감염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영구동토층의 얼음이 녹을 경우 지구상의 식물과 동물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이번에 발견된 바이러스 중 4만8500년 전의 것은 동시베리아의 야쿠티아에 있는 한 호수 바닥 16미터 아래 영구동토층에서 발견한 것으로 크기가 1마이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 바이러스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약 10배 크기다. 연구진은 이 바이러스에 ‘판도라바이러스 예도마’라는 이름을 붙였다.
연구진이 지금까지 되살린 9종의 바이러스는 모두 아메바 같은 단세포 유기체를 감염시키는 거대 바이러스군에 속한다.
클라베리 박사는 “고대 거대 바이러스가 오랜 기간 동결됐음에도 여전히 감염력을 유지하고 있다면 다른 고대 바이러스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영구동토층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어서 이곳의 바이러스가 지상으로 노출된다고 해도 사람한테 당장 위협이 되는 건 아니다.
연구진은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점차 녹고 있는 영구동토층의 자원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데 주목했다. 이 지역의 자원을 채굴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영구동토층의 상층부를 벗겨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고대 좀비 바이러스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음이 녹아버린 캐나다 허셜섬의 영구동토층. 위키미디어 코먼스
영구동토층 바이러스의 감염력이 살아 있더라도 가축이나 야생 동물을 숙주로 삼고 있는 바이러스에 비하면 위험은 훨씬 낮다. 클라베리 박사는 ‘뉴사이언티스트’에 “아메바 감염 바이러스는 식물이나 동물을 감염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구진은 “얼음에 갇혀 있던 바이러스들이 바깥세상의 자외선, 산소, 열 등에 노출될 경우 얼마나 오랫동안 감염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 그 사이에 적절한 숙주를 만나 감염시킬 수 있는지는 아직 예측할 수 없지만 영구 동토층의 해동이 가속화하고 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위험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캐나다 오타와대 연구진은 지난 10월 영국 ‘왕립학회보B’에 발표한 논문에서 북극권 호수의 토양과 침전물을 수집해 유전자 분석을 실시한 결과, 얼음 속에 갇혀 있던 바이러스와 세균이 기후변화로 풀려나면서 야생동물을 감염시킬 위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빙하가 녹은 물이 많은 곳일수록 얼음 속 바이러스가 새로운 동물 숙주로 흘러들어갈 위험이 큰 것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6년 여름 북시베리아에서는 폭염으로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노출된 사슴 사체와 접촉한 사람들이 탄저균에 감염돼 1명이 숨졌다.
그렇다면 얼음 속에서 되살아난 바이러스는 다음 팬데믹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을까?
오타와대 연구진은 “기후변화가 잠재적 바이러스 매개체와 저수지 역할을 하는 생물종의 서식 범위를 북쪽으로 이동시킬 경우, 고위도 북극권은 새로운 팬데믹의 발원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