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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지구 꿈틀거리게 하는 ‘식물의 위대함’

등록 2010-08-17 21:57수정 2010-08-17 22:13

포스텍에서 생명과학과 대학원생 연구원들이 연구용 온실에서 식물분자유전학의 모델 식물로 쓰이는 애기장대들의 발육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포스텍에서 생명과학과 대학원생 연구원들이 연구용 온실에서 식물분자유전학의 모델 식물로 쓰이는 애기장대들의 발육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미래를 여는 첨단과학] ④ 식물 분자유전학
남홍길 교수에게 듣는 식물 분자유전학

고속열차를 타고 포항 가는 길에 창밖을 내다보다가 가슴이 두근두근한 상상을 했다. ‘국가과학자’로 선정된 식물분자유전학자 남홍길 포스텍 교수(생명과학과)와 두번째 인터뷰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한여름 이른 아침의 햇살을 받으며 초록을 뽐내는 산과 들 풍경에서 별안간 광합성의 화학반응식이 겹쳐 떠올랐다. 첫번째 인터뷰 때 빛 입자를 알뜰히 거둬 지구 생태계의 1차 영양분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광합성의 얘기를 현장 과학자한테 생생하게 들었던 터였다. 온갖 풀과 나무들에서 똑같은 화학반응식이 일제히 일어나는 중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조용하지만 역동적인’ 녹색의 생명이 느껴졌다.

사람도 동물이기에 동물의 시선으로 식물을 바라보나 보다. 동물과 식물을 맞세워 비교하는 물음을 던질 때마다 남 교수는 ‘동물 중심의 생각’을 꼬집으며 동식물의 ‘다름’을 얘기했다. 잎·뿌리·꽃 같은 여러 기관들에서 생명현상을 ‘분산처리’하면서도 전체의 생존을 위해 ‘협력조화’를 이뤄내는 식물만의 독특한 생존 전략도 자주 강조했다. ‘식물성 사고방식’은 신선한 자극이었다.


사람의 유전자 개수와 비슷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반응
각 기관 자생능력도 뛰어나

기존 분자유전학 방법 넘어
영상·계산학 등 새 시각으로
생명현상 원리 밝히기 도전

“식물, 우리가 널 몰랐구나”

유전자 개수로 따지면 동물과 식물은 비슷하다. 생명을 이루는 성분이나 생화학의 복잡성도 비슷하다. 그러니 동물이 식물보다 더 뛰어난 생물체라는 생각은 식물분자유전학에선 가당찮은 듯하다. 20년 넘게 분자유전학으로 식물의 생명현상을 연구해온 학자는 그런 식의 동식물 비교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동식물은 그저 서로 다른 생존·번식 전략을 취할 뿐이라고 했다. 빛·온도·습도 같은 환경 변화에 대해선 식물이 오히려 더 민감하고 유연하게 반응하는 생명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했다.

1986년 박사후연구원 시절부터 식물분자유전학을 연구해오셨죠. 그동안 이 분야에서 생겨난 ‘식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꼽는다면?

“큰 사건 하나는 식물의 전체 유전자를 알게 됐다는 겁니다. 보니까 식물이나 사람의 유전자 개수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놀라운 발견 중 하나였죠. 흔히 식물은 단순하고 원시적이라 여기지만 유전자 개수가 비슷하다면? 동물과 식물의 차이는 어디에서 생길까, 새로운 인식이 필요했지요. 그것은 동식물을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요소들의 상호작용과 네트워크에 나타나는 특징 때문이라는 인식이 생겨났지요. 또 식물도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고요. 이렇게 보면 길가의 식물도 다르게 보이겠지요.”

식물은 무생물처럼 여겨질 정도로 둔감해 보이는데요. 식물이 민감하다고 해도, 동물이 더 민감하고 고등하다는 게 통념인데요.

“고등하다는 말은 잘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식물의 특성 중 하나가 ‘발달의 유연성’입니다. 환경 조건에 따라 자신을 잘 조절하거든요. 콩나물을 보세요. 빛이 있는 곳에선 콩으로 자라지만 빛이 없는 데에선 콩나물이 되지요. 동물에선 이런 발달의 유연성이 떨어집니다. 이런 점에선 어느 게 더 고등할까요?”

유전자 개수가 비슷하다면 유전자 작동방식이 다르다는 얘기일 텐데, 동식물은 어떻게 다른가요?

“생존과 번식의 측면에서 보죠. 먼저 생존의 차이를 보면, 식물은 고착생활을 하며 광합성을 합니다. 동물은 이동하며 다른 생물을 먹이로 섭취하죠. 식물은 각 부분들에서 영양분을 만들면서 전체의 생존을 도모하는데, 동물이나 곤충이 공격할 때 앉아서 당해야 하기 때문에, 중요 부분은 분산시켜 단번에 전체가 망하는 위험을 피하는 생존 전략을 취합니다. 그러다 보니 생체회로가 더 유연해진 것 같아요. 다른 차이는 번식 전략일 텐데요, 동물은 태아 때에 거의 모든 기관이 만들어져 태어나는데, 식물은 씨앗에 프로그램만 있지 기관들은 만들어지지 않아요. 자라면서 환경 조건에 맞춰 줄기, 잎, 꽃 같은 기관들을 만들죠. 생체회로가 유연하지 않다면 그럴 수 없겠지요.”

지구 생태의 기반 ‘광합성’

식물에서 일어나는 생명현상의 꽃은 아무래도 ‘광합성’이다. 햇빛 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와 물을 재료로 삼아 유기화합물인 포도당을 만들어낸다. 포도당은 순전히 광합성의 산물이다. 남 교수는 광합성의 화학반응식 를 보며, “이게 지구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식물은 “공기와 햇빛을 버무려” 포도당과 산소를 만들고, 동물은 포도당을 먹고 산소를 호흡해 에너지를 얻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니까, 화학반응식은 화살표 방향을 바꾸며 지구 행성의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순환을 보여주는 셈이다.

땅과 바다에서 식물과 미생물들이 광합성을 하죠. 외계인의 눈에는 광합성이 지구 행성의 보편적 생명현상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글쎄요, 보편적이라기보다는 1차 생산자인 식물이 있어야만 다른 생물체들도 유지되니까, ‘근본’이나 ‘기반’이라고 말하는 게 맞겠네요. 지구를 관찰하면, 대부분 식물로 덮여 있고 거기에서 ‘1차 생산’ 활동이 일어나고, 또 동물은 식물을 뜯어먹거나 서로 먹고 먹히면서 식물이 만든 에너지와 영양소를 전달해가는 과정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요.”

광합성이라는 똑같은 ‘생명현상의 모듈’이 지구촌의 들과 산에서 일어난다고 상상하면 놀라워요. 식물학자도 그런 경이를 느낍니까?

“마찬가지죠. 그런 걸 알아갈수록 저 식물 안의 세상이 더 잘 보이니 신기합니다. 광합성이라는 굉장히 좋은 생명 도구가 발명된 뒤에 이 도구를 활용해 많은 생명체들이 이렇게 번창한 것 같습니다.”

식물의 광합성을 사람이 모방할 수 없습니까?

“모방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요.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광합성을 모방해 에너지 효율이 굉장히 높은 반도체를 만들고 그것과 연계해 그 반도체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로 포도당을 만드는 그런 인공시스템을 만드는 겁니다. 먼 얘기로 보이진 않아요, 물론 원리를 더 잘 이해해야 하겠지만. 공학자들과 함께 해보고 싶은 일이기도 합니다.”

‘따로 또 함께’ 협력조화
독립영양 생물과 종속영양 생물 간의 물질 순환
독립영양 생물과 종속영양 생물 간의 물질 순환

자연을 인간사회에 비유하는 일은 조심해야 하지만 흥미로운 일이다. 식물학자의 얘기를 듣다 보니 생명현상에서 동물은 중앙집권제를 닮았다면 식물은 연방자치제를 닮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동물에선 모든 정보가 뇌에 집중하며 각 기관이 뇌의 명령을 따라 움직인다. 식물은 학계에서 “분산 컴퓨팅”에 비교될 정도로 각 기관의 자치와 네트워크 유연성이 뛰어나다.

교수님의 연구 주제에서 눈에 띄는 것이 ‘식물체 각 기관들의 협력조화(코디네이션)’인데요, 어떤 것입니까?

“최근 발표된 재미있는 연구를 보면 ‘꽃을 피우라’는 신호를 잎에서 보낸다고 합니다. 잎에서 어떤 단백질을 만들어 때가 되고 조건이 되면 그 단백질을 꽃을 만드는 기관에 보냅니다. 잎이 환경을 인식하고서, 꽃을 만드는 기관에 신호를 보내 ‘영양분이 충분하고 계절도 변했네, 꽃피울 시간이야, 영양분 보내줄 테니 종자를 퍼트리자’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 같고요. 우리 연구실에선 요즘 ‘식물 각 기관의 생체시계들은 서로 어떻게 신호를 주고받는가’ 하는 주제를 수학 교수와 함께 연구중입니다.”

생체시계는 낮·밤을 인식해 예컨대 언제 광합성을 활발히 할지 조절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협력이 왜 특별히 중요합니까?

“뿌리엔 빛이 닿지 않잖아요. 그래도 생체시계는 뿌리와 잎에서 다 작동합니다. 그렇다면 둘을 잇는 신호는 뭘까, 한쪽이 노예처럼 따라만 가는 걸까, 아니면 주고받는 관계일까? 이런 게 연구 과제이지요.”

빛은 영양소를 만드는 에너지이지만,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데 정보로도 쓰인다죠?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식물은 빛의 양과 질로 지금이 아침인지 한낮인지 알 수 있고요. 또 주변에 경쟁자가 많은지도 빛으로 압니다. 다른 식물 잎들을 거쳐 들어오는 빛에선 파장이 달라지죠. 직사광선을 받으면 경쟁자가 없다는 신호이고요, 또 콩나물처럼 빛이 없으면 씨앗이 땅속에 있을 때처럼 중력의 반대방향으로 마구 웃자랍니다. 빛을 보면 웃자람을 멈추고 잎을 만들고 성장 단계에 들어가죠.”

영화 <아바타>가 생각나요, 생물이 하나하나가 아니라 군집을 이루며 신호를 주고받는 네트워크처럼 묘사되는데요. 말씀하신 식물의 생명현상과 비슷한 느낌이네요.

“그런 느낌이 들죠? 영화 시나리오를 과학으로 얘기하긴 쉽지 않지만 개체들이 연결돼 집단지성이 작용하는 것처럼 묘사됐더군요. 물론 집단지성이 될 만한 어떤 커뮤니케이션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식물 각 기관들이 ‘분산 컴퓨팅’을 하며 신호를 주고받고, 각자 계산을 따로 하지만 식물체 전체의 성장과 번식 전략에선 연결돼 있지요.”

새로운 방법, 새로운 도전

식물 연구에도 새로운 도전이 있다. 거기에는 역시 유연성, 네트워크, 시스템 같은 것들이 열쇳말인 듯했다. 분자생물학에서 하나하나 유전자와 단백질의 실체와 기능이 중요하다면, 이제는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생명의 시스템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려는 쪽으로, 또한 이런 현상을 신호 데이터가 아니라 영상으로 직접 보려는 쪽으로 관심사들이 새롭게 이동하는 듯했다.

이 분야에서 ‘큰 물음’으로 제시되는 도전적인 연구 과제들엔 어떤 게 있나요?

“식물의 생로병사에 숨은 생명현상의 원리가 뭐냐 하는 것일 텐데요, 그런 원리를 이제는 다른 방식과 다른 인식으로 풀어보자는 게 우리 연구실의 과제입니다. 기존의 분자유전학 방법을 넘어, 계산학과 영상학, 메카닉스 같은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이론과 새로운 도구로 접근하자는 것이고요. 주제로 보면, 식물의 구성요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해 생명현상을 만드나, 그런 가변성과 유연성은 어디에서 오나 하는 것에 관심이 많고요.”

말씀 중에 ‘식물의 메카닉스’는 무얼 말하는 건가요?

“지금까지 식물 연구에선 주로 화학적 반응에 대한 연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식물이 자연에서 살아갈 때엔 바람·빛 같은 기계적인 환경에 견디며 또 자신의 기계적인 힘도 이용하며 살아가지요. 이에 대한 이해는 너무 부족해요. 예컨대 파리지옥은 벌레가 앉을 때 독특한 기계적 반응을 일으켜 벌레를 붙잡습니다. 창밖의 나무를 보면, 가지의 각도·세기·재질도 바람을 견디고 잎이나 열매 무게를 견디게 디자인돼 있습니다. 그런 기계적인 부분들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돼 있고요. 이런 연구들이 식물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지식을 줄 겁니다.”

남홍길 교수는 누구?
남홍길 교수
남홍길 교수

특히 식물의 노화 연구에서 세계 수준의 연구성과들을 여럿 낸 식물 분자유전학자다. 식물이 빛의 신호량을 조절하는 생화학 과정을 제시하고 꽃피는 때와 생체시계의 연관관계에서 중요한 발견들을 했다. 식물의 노화와 죽음이 체계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필연 단계임을 입증했으며, 속씨식물의 진화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쌍둥이 정자’의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를 제시했다. 수학적 모형, 초정밀 영상, 단분자 물리학 같은 융합적 방법으로 식물을 연구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홍덕 석좌교수) △국가과학자 △공개접근 학술지 <아이비시>(IBC) 창간편집인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창설

포항/글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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