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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타운미팅…봇물터진 현장의 목소리

등록 2012-07-19 16:27수정 2012-07-19 16:29

지난 7월7일 대전에서 열린 "과학기술인 말하다 :현장의 목소리로 채우는 과기정책 제안 타운미팅‘의 예비모임(0차모임). 사진/ 오철우
지난 7월7일 대전에서 열린 "과학기술인 말하다 :현장의 목소리로 채우는 과기정책 제안 타운미팅‘의 예비모임(0차모임). 사진/ 오철우
[사이언스온] 바로가기

"다들 느끼고 있었구나!"

지난 7월7일 토요일 낮, 대전 시내의 한 아담한 카페에서 20여 명의 이공계 대학생, 대학원생,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 전직 교수, 출연연 전 원장, 그리고 시민과 기자가 모여 연 ‘과학기술 정책 제안 타운미팅’ 토론마당의 예비모임에서 얻은 생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비록 '예비' 모임이었고 적은 숫자가 참석한 소박하고 단출한 자리였지만, 20대부터 60대까지 여러 연령층의 참석자들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얘기해야 할 과학기술 분야의 이슈로서, 국가적인 과학기술 육성의 밑그림부터 교육과 연구 현장에 드리운 인권과 노동권의 문제까지 꼼꼼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는 콘트롤 타워의 조직 개편이 의제로 제출되었으며, 비정규직 연구원 문제와 여자 대학원생의 처우 문제가 의제로 제시되었습니다. 연구개발의 질을 높이려면 전문적인 테크니션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으며, 소수가 결정하는 과학기술 정책에서 민주주의 절차를 강화해야 하고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이날 모임은 대전에 있는 현장 연구자 몇몇 분이 오래 준비해온 과정의 결실이었습니다. 대전 연구자들이 "대통령 선거 후보의 캠프에 들어간 소수 과학기술인이 짜는 과학기술 정책으로는 이제 안 된다. 과학기술인들이 정말 바라는 정책을 만들어 제시해보자"는 참신한 제안을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에 한 것이 5월이었습니다. 그동안 함께 논의를 거듭하면서 온라인 대선 토론방을 열어 활성화하기로 했으나, 논의가 이어지면서 애초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토론 방식을 도입해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보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마침 그런 토론 행사를 진행하는 사단법인 디모스가 무상으로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디모스, 정말 고맙습니다, 꾸벅~). 과학기술계의 학교, 연구소, 직장에 있는 학생, 연구생, 교수, 교사, 연구원, 그리고 시민이 모두 동등하게 참여하여 논의할 의제를 정하고 그 내용을 심화하며, 1인1표의 투표로 의사결정을 하는 새로운 토론 방식은 이른바 ‘타운미팅’의 형식이었습니다 (타운미팅이란?). 

예비모임에서는 타운미팅의 토론 방식을 조금 맛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 [1], [2]). 참석자들이 품고 있던 생각의 조각들을 적은 수많은 포스트잇, 그리고 이런 생각 조각들을 큰 백지 위에 뿌려놓고서 이리저리 분류해 붙이면서 여러 생각들이 어울린 풍경을 만들고, 중요 대목에선 1인1표의 즉석응답 투표로 의사결정을 하며, 세밀한 대목에선 공감의 전체 토론을 거쳐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렸습니다. 목소리 높이는 사람 없이, 전문가 의견을 묵묵히 경청하기만 하는 일 없이, 이렇게 20여 명의 생각들이 '포스트잇 풍경화'로 종합되었습니다. 모두가 뿌듯했고, 4시간이 재미있었습니다. 토론이 이렇게 재미있다니!

이 자리에서 무엇보다도 현장의 목소리가 '주인공'이었다는 점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과학기술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 생활을 하다보면 간혹 이런저런 쟁점을 다루는 정책 토론회나 공청회에 참석해 취재하곤 합니다. 뜨거운 쟁점이 걸린 토론회, 공청회에서는 늘 찬반의 이야기들이 어지럽게 오갑니다. 현 정부의 대표적인 과학기술 정책 중 하나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와 관련한 토론회들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발표 패널은 찬성과 반대의 의견을 어느 정도 조화롭게 담는 인물들로 구성되었고, 패널의 발표 이후에 객석에선 과학벨트 사업 추진에 대해 ‘서두르지 말자’ ‘이런저런 점이 우려된다’ 등의 여러 의견들이 터져나오곤 했습니다. 과학벨트 토론˙공청회에서 늘 보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청회, 토론회 따로, 정책 추진 따로’ 진행되는 모습도 또한 늘 보던 모습이었습니다. 과학벨트 관련 법안이 입법예고 된 지 고작 며칠 만에 공청회가 열렸고 또 며칠 뒤에 국무회의에서 법률안이 최종 의결되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럴 거라면 공청회는 뭐하러 해? 

이번 토론마당을 준비하는 사이언스온이나 연구자들은 모두 ‘현장의 목소리’가 주인공이 되는 토론장을 만들어보자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공청회장에서 소수 발표자들이 있는 무대는 이제 객석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앉은 객석은 이제 무대가 되는 그런 토론장 말입니다. 토론장의 풍경도 사뭇 다른 모습으로 바뀌겠지요. 물론 현장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집행되는 정책 자체가 되어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장의 눈으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여러 다른 요인과 사정이 있을 수 있고, 정책 추진 과정에는 정책 자체의 고유한 동력과 메커니즘이 있을 수 있으니, 현장의 목소리는 가다듬어지고 조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소중합니다. "말하다"는 필요합니다. 이번 토론마당의 표제로 삼은 “과학기술인, 말하다”는 과학기술 정책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이제는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마련되었습니다. 

더욱이 지금은 우리나라 대통령을 뽑는 대선의 정치 공간이 열리고 있습니다. 대선은 대중적인 정치 공간입니다. 이에 때를 맞추어 여러 과학기술 정책과 관련한 단체나 기관, 정치인들이 다음 정부가 다뤄야 할 과학기술 정책을 논의하는 행사를 잇달아 열고 있습니다. 더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토론회는 이제껏 보아왔던 이런저런 토론회가 또 열린다는 인상을 줍니다. 소수의 명망가 또는 전문가들만의 토론장 말입니다. 여전히 객석은 그저 “듣는 자리”로 남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학교에서, 연구실에서, 실험실에서, 연구소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연구과제 신청 과정에서, 연구과제 평가 과정에서, 또한 과학기술과 관련한 사회적 쟁점을 다루는 과정에서 느껴왔던 불합리와 불통, 그리고 과학자단체의 자율성 부재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대부분 정책 토론회에서는 거창한 국가 경쟁력과 경제성장 동력을 이야기하고 과학기술 예산의 '파이'를 키우고 나누는 문제를 주로 얘기하곤 합니다. 충분할까요?

이번 토론마당을 준비하며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성장한 한국 과학, 이제는 성숙하자”는 표제도 나왔습니다. “이제는 한국 과학의 자생적 생태계를 이야기하고 그런 생태계를 가꾸자”는 표제도 나왔습니다. 이번 토톤마당을 처음 준비하기 시작한 소수의 사람들, 그리고 이에 참여하는 조금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은 아마도 이런 표제들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마음으로 이어져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장”과 “경쟁력”의 의제에 가려진 “우리 삶의 성숙” “우리의 자생적 생태계”를 현장의 목소리로 이야기해보자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뜻밖에도 예비모임에서는 과학기술계에도 이제는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말도 꽤 많이 나왔습니다. 아마도 과학기술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이나, 교육과 연구실 현장에서도 ‘민주화’의 의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생생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예비모임(0차 모임)을 마친 타운미팅은 이제 8월11일로 예정된 본격적인 1차 마당을 준비하는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예비모임 참가자들이 메일링 리스트(scionhani.town@gmail.com)를 이루어 의견을 주고받고 있으며, 소모임별로 토론마당의 행사 진행에 필요한 토론 도우미 교육도 받을 계획입니다. 무일푼 예산으로 시작한 자발적인 행사이기에 토론장 마련은 어려운 문제였지만 예비모임은 한 카페 주인장 님의 공간 기부로, 또 1차 마당은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을 사용할 기회를 얻어 마련했습니다. 준비하는 주체도 조직적이지 않고, 어찌보면 몇몇 연구자들이 자신의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시작한 느슨하고 자유로운 행사입니다. "무얼 토론하지요? 정해진 건 없나요?" "그걸 우리 모두가 결정해야 하는 겁니다." 예비모임에서는 이런 대화가 한 동안 이어질 정도로, 우리는 아직 이런 토론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또 누군가 새로 참여하는 사람이 주체로 더해집니다. 그래서 준비모임은 여전히 규모가 적지만 조금씩 커져가고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경험한 바로는 “현장의 목소리로 채우는 과기정책 제안 타운미팅”이 의사결정의 절대 모범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과정에는 소수 전문가들의 논의와 의사결정 과정도 필요할 것이며 행정관료의 도움도 필요할 것입니다. 무조건 좋고 무조건 나쁜 건 없습니다. 또한 현장 목소리가 그대로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현장 목소리가 과연 전체를 대표할 만한 자격을 지니는가 하는 적격성의 문제도 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현장 목소리로 채우는 과기정책 제안 토론마당은 모든 걸 다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정치적 인맥이 닿은 소수 전문가들이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과학기술 분야의 정책 수립 과정에 대중적인 목소리를 민주적으로 모아보자는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 8월과 9월에 열릴 제2차, 제3차 토론마당을 거쳐 얻어질 수백 명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는 대통령 후보의 캠프들에 전달해야 하겠지요. 그런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캠프 안에 있는 소수 전문가들이 마련한 정책안과는 다른 의미를 지닐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처럼 현장의 목소리를 대선 캠프들에 전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대학생, 대학원생, 교수, 교사, 연구자를 비롯해 여러 현장에 있는 과학기술인이 자발적으로 한 자리에 모여 현장의 목소리를 말하기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가치 있고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으로서, 과학기술인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 과학기술 분야의 현안이 무엇인지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고 정리하며 공감하는 과정 자체가, 과학기술계에서는 그동안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모일수록 그런 가치와 의미는 당연히 더 커질 것입니다. 또한 그런 토론 활동 자체가 우리 사회에 좋은 자양분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의 목소리 자체가 의식될 때에 과학기술 정책의 수립 과정은 조금이나마 더 현장에 가까워지는 쪽으로 보탬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현장의 사람들이 말해야 합니다, 한국 과학의 성숙을 위해서…'. 이번 토론마당을 준비하면서 저한테 가장 깊게 새겨지는 말인 것 같습니다.

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이메일 : cheolwoo@hani.co.kr 트위터 : @water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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