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인간혁명의 갈림길 ④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조디 윌리엄스(왼쪽)와 로봇 무기 제어를 위한 국제 위원회 위원장인 노엘 샤키가 2013년 4월23일, 영국 런던의 의회광장 앞에서 ‘킬러로봇 금지 캠페인’의 마스코트 로봇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킬러로봇 금지 캠페인은 인간의 명령과 관계없이 살인을 할 수 있는 완전 자동 인공지능 무기를 금지하자며 2013년 런던에서 출범한 엔지오 단체들의 모임이다. 킬러로봇 금지 캠페인 제공
가상현실 성추행 예방책은 뭔가 인간 명령 없이 살인에 나서는
로봇 개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인류 질병·노화 극복 길 여는
유전자 가위 기술 허용해야 하나 혁신 따른 윤리문제 잇따라 불거져 이런 윤리적 문제들은 일견 새로운 현상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미 인류는 지금 떠오르는 주제와 닮은 수많은 논의를 쌓아왔다. 벨라마이어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사례는 사실 컴퓨터 등장 이후 겉모습만 달리하며 이어져온 ‘사이버 성추행’ 논쟁 중 하나다. 킬러 로봇 등 인공지능에 대한 문제도 ‘아직은’ 인간의 문제로 치환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아직 “인간처럼 자유의지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제어함으로써 자기 실존을 확인할 능력이 없기 때문”(홍익대 로봇윤리와 법제연구센터 이중기 교수)이다. 이 때문에 로봇에게는 아직 ‘도덕적 판단 주체’로서의 지위를 부여할 수는 없고, 그 인공지능의 행동 방식을 설정하는 인간의 판단에 대해 논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각종 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정의는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세계경제포럼의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은 그의 책 <4차 산업혁명>에서 “놀라운 발견들이 계속 등장함에 따라 도덕적, 윤리적 논의를 지속해서 이어가겠다는 우리의 관심과 약속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기존에 ‘인류 공동체를 위한 선’을 추구해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확장된 인간’의 관점에서 공동체를 재정립하고 윤리적 공감대를 쌓아나가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슈바프 회장은 “제4차 산업혁명이 기존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모델에 가져올 파괴적 혁신은 결국, 권한을 가진 모든 이들이 스스로가 분배된 권력 시스템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고, 성공을 위해서는 협동적인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 가지, 4차 산업혁명이 만드는 세상은 예상치 못할 정도로 빠른 변화를 유발한다는 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빠른 속도 탓에 어떤 사건의 공론화가 이뤄지기도 전에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그렇다면 반대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빠르게 공론화시키는 것 자체가 문제 해결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전세계가 연결돼 공유와 교류가 빠르게 이뤄지는 시대이니만큼 공론화만 된다면, 윤리적 공감대 역시 빠르게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벨라마이어의 사례는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벨라마이어가 자신의 경험을 블로그에 올린 뒤, 많은 사람이 논의와 토론을 벌였다. 그중에는 게임 ‘퀴브이아르’의 개발자들도 있었다. 개발자인 헨리 잭슨과 조너선 솅커는 “책임감을 느낀다”며 하나의 해법을 제시했다. “만약 그녀가 손가락만을 이용해서 가볍게 치는 것만으로 마치 개미를 날리듯 그 나쁜 플레이어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면 그 글쓴이의 경험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잭슨은 가상현실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인 ‘업로드 브이아르’에서 이번에 새로 추가한 기능인 ‘퍼스널 버블’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퍼스널 버블이란 성추행 등으로 괴롭히는 상대를 튕겨내 버리는 기능이다. 그는 “가상현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포비아’ 등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가상현실이 구현하는 엄청난 리얼리티 덕에 사람의 심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 반대 효과 역시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밝혔다. 성추행 피해자의 수치심을 그대로 두지 않고, 곧바로 극복할 수 있는 장치를 게임 속에 마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글이 올라온 시점은 지난해 10월25일이다. 벨라마이어가 미디엄에 글을 올린 지 고작 나흘 만에 나름대로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은 셈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극적으로 연결된 사회에서 인류의 집단지성은 윤리 문제도 빠르게 공론화시키고, 빠른 속도로 결론을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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