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미래&과학 과학

받은 만큼 주리라, 고로 주는 만큼 거두리라

등록 2017-08-26 10:49수정 2017-09-23 09:36

[토요판] 최정규의 우울하지 않은 과학
⑧ 이타성과 호혜성

‘죄수의 딜레마’ 응용한 여러 게임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하느냐 따라
자신의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경향
‘조건부’ 협조 성향 보여주는 사례

자기 이익 극대화 방법 있더라도
손해 보며 협조할 용의 있다는 뜻
참가자들 의사소통 만들어주는 게
협조 늘리는 가장 유효한 방법

협력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수많은 실험경제학 연구 결과는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협조적 행위는 ‘조건부’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설령 자기의 이익만 극대화하는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타인도 나처럼 타인의 이익을 위해 다소나마 자신을 희생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실제로 협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협력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수많은 실험경제학 연구 결과는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협조적 행위는 ‘조건부’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설령 자기의 이익만 극대화하는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타인도 나처럼 타인의 이익을 위해 다소나마 자신을 희생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실제로 협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수업시간에 개인별이 아니라 팀 프로젝트로 과제가 주어지면 왜 한숨부터 나오고 스트레스를 받을까? 에너지 절약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복지 확대에 동의를 하고 거기에는 상당한 돈이 든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선뜻 증세에는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방금 말한 일들에 열의를 갖고 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그 목적 자체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도 나올 수 있겠다. 그런데, 목적에는 동의하는데도 이를 선뜻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어쩌면 거기에는 공정성 이슈도 있을 것이고(“왜 맨날 나만 하는 것 같지?”), 경제적인 이유도 무시 못 할 것이며(“하고는 싶지만 여력이 안 돼서”), 혹은 방법론상의 차이가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필요한 건 알겠는데, 이 방법 말고 더 좋은 방법은 없나?).

모두가 조금씩 양보를 해야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양보나 협조를 하지 않는다면 왜 그런지를 두고 많은 연구가 있었다. 그동안 실험경제학의 성과 중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협조적 행위는 “조건부”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인 것이었다. 협조적 행위가 조건부로 나타난다는 말은 ①사람들이 다소 손해를 감수하면서 협조적으로 행동할 의도를 갖고 있더라도, ②상대방도 그러한 의도를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때에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는 말이다. 필요하다면 나라도 앞장을 서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방이 협조적이지 않다는 것이 확인된다면(혹은 예상된다면), 협조를 철회하려 한다는 얘기다. 요약하자면, 사람들이 협조적인 행동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협조적인 성향이 없어서인 경우도 있겠지만, 타인이 협조적일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인 경우도 많다.

내 상자에 20개 모두 담는 게 유리하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익명의 상대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서 다음의 게임을 한다고 하자. 나와 상대방 사이에는 칸막이가 있어서 상대방을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실험을 주관하는 사람이 나타나 내게 구슬 20개를 주면서, 그 구슬은 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칸막이로 가려진 건너편의 상대방에게도 마찬가지로 구슬 20개를 주면서 그 구슬은 그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게임이 끝나는 대로 각자가 갖고 있는 구슬 한 개당 1000원으로 바꿔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구슬이 많을수록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얘기다.

게임의 룰은 간단했다. 각자의 앞에는 20개의 구슬을 나눠 담을 수 있는 두 개의 상자가 놓여 있다. 왼쪽 상자에는 자기가 가질 구슬을 담고, 오른쪽 상자에는 상대방에게 줄 구슬을 담도록 되어 있다. 보이진 않지만 상대방 앞에도 똑같은 상자가 두 개 있다고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20개의 구슬을 가지고 몇 개를 자기가 갖고 몇 개를 상대방에게 줄 것인지를 결정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상대방도 마찬가지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런데 실험을 주관하는 이가 말하길, 나와 상대방이 각각 구슬을 나눠 담고 나면, 상대방에게 줄 상자 안의 구슬은 세 배로 늘어난다고 했다. 내가 상대방에게 줄 상자에 구슬을 하나 넣으면 그 구슬은 세 개가 되어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20개를 다 넣으면 상대방에게는 60개가 전달된다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이 나에게 전달하는 상자 안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실험을 주관하는 사람은 이 게임을 한 차례만 진행할 것이고, 따라서 한 번 구슬을 나눠 담고 서로 상자를 교환하고 나면 최종적으로 갖고 있는 구슬을 모두 돈으로 바꾼 후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서로 다른 문으로 나갈 것이라서 상대방을 다시 만날 일도 없다고 한다. 나는 상대방이 몇 개를 내게 건네주었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내 결정을 내려야 하고,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자, 30초 안에 상대방에게 줄 상자에 몇 개를 담을지를 결정해보자.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잠깐만! 오늘 이야기할 주제와 관련하여 하나만 더 질문해보자. 결정을 내리기 앞서 내 앞의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미리 알 수 있다면 그 정보가 내 결정에 도움이 될까?

이 게임은 ‘죄수의 딜레마’를 응용한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구조를 갖는 모든 변형이 그렇듯, 이 게임에는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내 이득을 가장 크게 만드는 방법이 존재한다. 그것은 내가 가질 상자에 20개의 구슬을 모두 담는 것이다. 단 한 번의 의사 결정만 하면 그것으로 끝임을 기억하자. 예를 들어, 상대방이 나에게 줄 상자에 10개를 담아서 나에게 30개의 구슬이 전달될 것이라고 해보자(물론 예상이다). 그런 경우에 나에게 이득을 가장 크게 안겨줄 수 있는 방법은 내가 가진 구슬을 20개 모두 내 상자에 담아서 총 50개를 돈으로 바꿔 가는 것이다. 혹은 상대방이 나에게 하나도 안 주는 경우는 어떤가? 이때도 20개 모두를 내 상자에 담으면 적어도 20개는 지킬 수 있다. 상대방이 나에게 줄 상자에 20개를 모두 담아서 나에게 60개의 구슬이 전달될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나는 내 상자에 20개를 모두 담아서 총 80개를 돈으로 바꿔 가면 된다. 다시 말해, 이 게임에서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이” 나는 20개의 구슬을 모두 내 상자에 담음으로써 내 이득을 가장 크게 만들 수 있다.

상대가 내게 X만큼 준다는 것을 안다면…

이 게임은 여러 가지 변형된 형태로 정말로 많이 시행됐다. 그리고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많은 사람이 상당한 몫을 상대방에게 건네준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내가 갖게 될 구슬을 포기하고 상대방에게 구슬을 건네주는 행위는 “정의상” 이타적인 행위다. 단 한 차례로만 끝나는 게임에서,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상대방에게 구슬을 주면 상대방에게는 이득이지만 내게는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여기서 “정의상” 이타적인 행위라고 말한 이유는 그러한 성향이 실험실에서 나타났고, 그것이 이타적 행위라는 단어의 정의에 부합한다는 의미이지, 그렇게 행동한 사람들이 현실에서도 이런저런 상황에서 언제나 이타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님을 얘기해두자). 그런데 지금 하려는 얘기는 과연 사람들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가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많이 확인된 사실을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다.

얘기를 좀 더 진행하기 위해, 앞서 했던 두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결정을 내리기 전에 상대방이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가 궁금한가? 혹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상대방이 내린 결정을 살짝 알려준다면, 자신의 결정에 도움이 될까? 만일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자신의 이득만을 고려하는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위의 의사결정 구조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즉 상대방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와 상관없이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부분 결정을 내리기 전에 상대방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를 알고 싶어 하고, 또 그것을 안다면 그 정보를 자신의 의사 결정에 반영하고자 한다.

우르스 피슈바허와 지몬 게히터, 그리고 에른스트 페어 세 사람은 위와 유사한 상황에서 피실험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구슬을 X개 주겠다고 결정했음을 알게 되었다면, 당신은 상대방에게 얼마나 건네주겠습니까?” 그러고는 X에 해당하는 숫자를 0에서 20까지 하나씩 올려보았다. 즉 상대방이 자신에게 하나도 주지 않았음을 알 때 피실험자들은 상대방에게 몇 개나 주려고 할지, 그리고 상대방이 자신에게 1개를 준다면, 5개를 준다면, 혹은 20개를 준다면 각각의 경우에 상대방에게 얼마를 주려고 할지를 적어 제출하도록 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득만을 고려한다면 답은 간단했다. X에 해당하는 숫자가 얼마든 상관없이 0개를 건네주겠다고 답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그렇게 대답한 사람은 전체의 30%에 불과했다고 한다. 50%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X가 올라감에 따라 상대에게 줄 구슬의 양을 올렸다(나머지 20%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서는 특정한 패턴이 발견되지 않았다). 적어도 절반 정도의 사람들의 행동 패턴은 이랬다. ‘상대방이 0을 준다면 자신도 0을 준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X만큼을 준다는 것을 안다면, 자신은 상대방에게 X에 가까운 금액을 준다. 단, X보다는 조금 적게 준다.’ 사람들이 조금은 자기 쪽으로 편향된 방향으로 의사 결정을 한 것도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조건부로 협조적이었던 것 또한 분명하다(위의 연구에 따르면 상대방이 나에게 건네주는 구슬이 하나 증가할 때마다, 그에 맞춰 상대방에게 주는 구슬의 양을 0.6~0.7 정도 늘린다고 한다).

이런 결과는 사람들이 협조적이고자 하는 성향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 협조적 성향은 “조건부”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이 사람들을 이타적인 사람이라 부르기보다는 호혜적인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들은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동이 있더라도, 타인을 위해 조금은 손해를 감수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타인도 나처럼 타인의 이익을 위해 다소나마 자신을 희생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그리고 그럴 경우에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구슬을 상자에 나눠 담는 게임을 순차적으로 진행해보면, 실제로 사람들이 타인이 어떻게 나오는가에 따라 행동을 달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먼저 상자에 구슬을 나눠 담고 상대방에게 줄 구슬이 담긴 상자를 건네준다고 해보자. 그리고 두 번째 사람은 마찬가지로 의사 결정을 내리기 전에, 첫 번째 사람이 건네준 상자를 열어보고 거기 있는 구슬의 수를 확인한 다음에 의사 결정을 내린다고 해보자. 위에서 말한 피슈바허 등이 피실험자들에게 던진 질문은, 이 게임에 실제로 임할 때 두 번째 사람이 직면한 문제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게임을 순차적으로 진행했을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실험 데이터에 따르면, 사람들은 상대방이 준 구슬 하나당 약 0.6개를 돌려줬다.

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는 확신

스위스 취리히대학교에서는 매 학기를 시작할 때 가장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혹은 외국 학생들을 위한 장학 기금에 익명 기부를 권하고 있다고 한다. 기부금은 5 또는 7스위스프랑으로 정해져 있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6000원 혹은 8000원 정도가 된다. 취리히대학교 실증경제학연구소의 브루노 프라이와 슈테판 마이어는 총 3만7천여명의 재학생 중 2000명을 무작위로 뽑아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정보를 제공했다고 한다. 첫 번째 그룹 1000명에게는 바로 직전 해 기부율을 기준으로 전체의 64%가 기부를 했다는 수치를 주었고, 두 번째 그룹 1000명에게는 지난 10년 동안 평균적으로 전체의 46% 정도가 기부를 해왔다는 수치를 주었다. 이들에 따르면 타인들에게서 높은 기부율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은 첫 번째 그룹 학생들이 더 기부를 많이 했다고 한다. 즉 이들은 학생들의 기부행위로부터 조건부 협조 성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험경제학 연구들에서 자주 확인되는 것처럼, 죄수의 딜레마 구조의 게임에서 협조를 높이는 가장 유효한 방법 중 하나가 참가자들 사이에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의사소통 과정에서 상대방을 속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겠지만(그리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사람들은 아마도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타인도 나와 같은 성향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해가는 것 같다.

사람들이 조건부적으로 협조적인 경우, 상대방의 행동을 (그리고 성향을) 어떻게 예상하는지에 따라 꽤나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구슬을 나누는 게임에 참가하는 두 사람 모두 조건부 협조자라도, 상대방이 협조적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면, 상대방에게 줄 구슬의 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그러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많은 수의 구슬을 상대방에게 주면서 서로 이득이 되는 거래를 할 가능성이 있다. 협조하는 성향을 갖고 그렇게 행동할 의도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없는 확신을 만들어주는 문제가 아니다. 실제 상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음을 서로 확인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미래&과학 많이 보는 기사

2032년 소행성 충돌 위험 2.2%로 상승…지구 방위 논의 시작되나 1.

2032년 소행성 충돌 위험 2.2%로 상승…지구 방위 논의 시작되나

4억 톤 먼지 분출…소행성 베누가 불러올 지구 재앙 시나리오 2.

4억 톤 먼지 분출…소행성 베누가 불러올 지구 재앙 시나리오

조깅에 스트레칭 더하면 ‘금상첨화’…최적 시간은 ‘4분’ 3.

조깅에 스트레칭 더하면 ‘금상첨화’…최적 시간은 ‘4분’

“삐~ 삐~” 한밤 중 재난문자 알고 보니…충북 충주 3.1 지진 4.

“삐~ 삐~” 한밤 중 재난문자 알고 보니…충북 충주 3.1 지진

초속 9km ‘초음속 강풍’ 부는 외계행성 발견 5.

초속 9km ‘초음속 강풍’ 부는 외계행성 발견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