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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탁자 위 입자물리학…우주 수수께끼 푼다

등록 2017-09-18 07:40

초정밀 관측기술과 이론 발전 덕분
실험실 안, 탁자 위 소형 실험 늘어
지하 거대 시설에서 찾던 암흑물질
이젠 작은 공간에서도 검출 시도
새 입자 검출, 중력이론 검증 등
거대장치와 함께 실험물리 다양화
새로운 물리학의 근본물음에 도전
둘레 길이가 27㎞에 달하는 지상 최대의 실험 장치인 거대강입자충돌기(LHC)는 입자들을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해 충돌시킬 때 생성되는 고에너지 상태의 입자 신호들을 추적해 우주 물질 수수께끼를 푸는 새로운 발견을 일궈낸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제공
둘레 길이가 27㎞에 달하는 지상 최대의 실험 장치인 거대강입자충돌기(LHC)는 입자들을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해 충돌시킬 때 생성되는 고에너지 상태의 입자 신호들을 추적해 우주 물질 수수께끼를 푸는 새로운 발견을 일궈낸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제공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와 힘은 물리학의 표준모형 이론이 알고 있는 것 외에 더는 없는 걸까? 보이지 않으면서 중력과 척력으로 작용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실체는 무얼까? 다른 기본 힘에 비해 중력은 왜 이토록 약할까? 현대 우주론의 바탕이 되는 입자물리학은 그동안 이론의 발전과 더불어 점점 더 큰 실험 장치를 건설해 우주 만물을 가장 잘 설명하는 ‘표준모형’ 이론을 구축해왔다. 힉스 입자를 검출한 27㎞ 길이의 지하 시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충돌기(LHC)는 이런 물리학의 발전을 상징하는 거대과학의 국제 실험 장치다.

최근에는 거대과학과는 다른 작은 실험들이 눈에 띄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초정밀 측정 기술과 장치를 바탕으로 실험실 안에, 탁자 위에 작은 장치를 만들어 물리학의 근본 물음에 도전하는 흐름이다. 실제로 탁자 크기는 아니다. 하지만 작은 규모를 강조해 ‘탁자 위의 물리학’이란 별명도 붙여졌다.

암흑물질 후보 입자를 실험실 안에서 검출하려는 연구도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이 만들고 있는 암흑물질 후보 ‘액시온’의 검출 장치 일부, 오른쪽은 개발 중인 검출 장치 부품을 살펴보는 윤성우 박사와 연구진.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암흑물질 후보 입자를 실험실 안에서 검출하려는 연구도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이 만들고 있는 암흑물질 후보 ‘액시온’의 검출 장치 일부, 오른쪽은 개발 중인 검출 장치 부품을 살펴보는 윤성우 박사와 연구진.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암흑물질 찾기’ 크고 작은 도전들

지금까지 가장 정밀한 우주 관측 결과에 의하면, 우주의 총 질량-에너지는 보통물질 5%, 암흑물질 27%, 그리고 우주 팽창을 이끄는 암흑에너지 68%로 이뤄져 있다. 보통물질과 달리 보이지 않고 흔적도 거의 남기지 않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그래도 암흑물질의 후보 입자를 직접 검출하려는 많은 연구가 그동안 계속돼왔다.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는 ‘윔프’(WIMP)라는 가상 입자다. 유령처럼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은 채 통과해 검출하기 힘들면서도 무거운 질량을 지닌 입자로 추정돼 이런 영어 약칭 이름이 붙었는데, 윔프 찾기는 깊은 지하에 거대 장치를 세우고서 이 입자가 지나가며 남길 미세한 흔적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선 윔프 찾기 실험을 해온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지하실험연구단(단장 김영덕)이 강원도 정선 철광의 지하 1100m 지점에 윔프와 중성미자 검출 연구를 위한 대규모 시설을 세워 2020년부터 본격 실험에 나설 예정이다.

요즘엔 ‘액시온’이라는 가상의 다른 후보 입자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특히 액시온은 지상의 작은 실험 공간에서도 검출할 수 있어 ‘액시온 사냥’은 소형 실험의 흐름을 이끌며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국내에선 기초과학연구원의 액시온및극한상호작용연구단(단장 야니스 세메르치디스)이 액시온 검출 실험에 나서고 있다. 연구진은 대전 카이스트 안 건물의 한 실험실에 독자적으로 고안한 검출 장치를 만들고서 액시온이 남길 미세한 전자기파 신호를 찾아 나선다. 윤성우 연구위원은 “액시온이 강한 자기장을 통과할 때 광자로 변환하는데 이때 생기는 전자기파가 공진기와 공명을 일으켜 측정 가능한 신호를 남길 수 있다”며 “강력한 자석과 공진기, 그리고 그 신호에 끼어들 잡음을 최대로 줄이기 위해 절대온도(K) 0도에 가까운 극저온을 유지하는 실험 장치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만들고 있는 액시온 검출 장치는 어른 키를 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윤 연구위원은 “액시온 신호가 10의 ?24승 와트 정도로 매우 미약해 양자역학 현상을 이용한 초정밀 측정기술도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액시온이 있느냐 없느냐 같은 특정 목표에 초점을 둔 장치라 규모가 클 필요도 없고 다양한 실험 구상을 비교적 쉽게 구현할 수 있다는 게 소형 실험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액시온 검출 장치는 내년 여름쯤에 본격 가동된다.

암흑물질 검출 연구와 관련해, 남순건 경희대 교수(물리학)는 “국내에서 윔프와 액시온 검출 실험이 모두 국제 경쟁력을 갖춘 규모로 이뤄지고 있는데, 특히 액시온 입자 이론을 세우는 데 국내 물리학자(김진의 경희대 석좌교수)도 기여한 바 커서 액시온의 국내 발견이 더욱 기대된다”고 말했다.

소형 장치를 이용한 암흑물질 액시온의 검출 시도는 사실 세계 여러 곳에서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예컨대, 널리 알려진 것 중 하나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시작한 실험 장치다. 지름 17㎝, 높이 170㎝의 원통 시설 안에 액화 제논을 담은 장치를 만들어두고서, 액시온이 이 장치를 통과할 때 제논 원자 핵이 불안정해져 생기는 미세한 자기장의 변화를 정밀 측정 기법으로 잡아내겠다는 게 실험의 구상이다.

둘레 길이가 27㎞에 달하는 지상 최대의 실험 장치인 거대강입자충돌기(LHC)는 입자들을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해 충돌시킬 때 생성되는 고에너지 상태의 입자 신호들을 추적해 우주의 기본 입자와 힘에 관한 수수께끼를 푸는 새로운 발견을 일궈낸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제공
둘레 길이가 27㎞에 달하는 지상 최대의 실험 장치인 거대강입자충돌기(LHC)는 입자들을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해 충돌시킬 때 생성되는 고에너지 상태의 입자 신호들을 추적해 우주의 기본 입자와 힘에 관한 수수께끼를 푸는 새로운 발견을 일궈낸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제공

거대실험과 소형실험 ‘발견의 쌍두마차’

입자물리학 실험의 소형화는 암흑물질 찾기 분야에서 뚜렷한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8월 새로운 방식으로 암흑물질의 정체를 찾으려는 각국의 입자물리학자들이 국제회의를 열어 자신들이 구상하는 50여 가지 소형 실험들을 보고했다. 회의 결과물을 담은 보고서에서 공저자인 입자물리학자 200여명은 윔프 찾기와는 다른 방향에서 암흑물질을 검출하려는 연구들이 실험실 소형 장치를 이용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고 전했다.

더 큰 입자 충돌 에너지를 요구하는 거대 장치들이 그동안 입자물리학의 발전을 이끄는 축이었다면, 이제는 거대 규모와 비용 때문에 쉽게 다양하게 시도하지 못하던 우주 수수께끼의 풀이에 소형 실험들이 나서면서 물리학 발전의 축이 다각화하리라는 것이다.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글에서도 입자물리학 공저자들은 물리학의 표준모형이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와 힘을 규명해왔으나, 여전히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 같은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고 있다고 꼽으면서 가설과 이론을 다양하게 검증할 수 있는 소형 실험들의 등장이 새로운 물리학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렇다고 거대한 가속기나 입자 검출 시설의 역할이 줄어들진 않을 전망이다. 거대 장치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고에너지 입자 충돌은 기본 입자와 힘에 관해 더 많은 발견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연구 중인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는 “대형 실험과 소형 실험은 서로 접근하기 힘든 고유의 영역을 다루는데, 거대강입자충돌기 같은 대규모의 고에너지 실험은 특히나 질량 큰 입자, 힉스 입자, 톱 쿼크 같은 기본 입자들을 만들어내어 그 속성을 규명할 수 있게 한다”며 “이런 연구는 거대 가속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남순건 교수는 “입자물리학의 작은 규모 실험들은 거대과학이 쉽게 시도하지 못했던 다양한 근본 물음에 다양하게 도전할 수 있기에 거대 실험이 다 하지 못하는 물리학의 발견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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