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 허블 망원경이 관측한 창조의 기둥(왼쪽). 오른쪽은 20년 전인 1995년 허블 망원경의 관측 영상. 출처: 미항공우주국(NASA)
허블 우주망원경의 관측 영상 중에서 신비하면서 아름다운 우주 영상으로 널리 알려진 하나가 ‘창조의 기둥(Pillars of Creation)’이다. 7000광년 떨어진 뱀자리 독수리성운(또는 수리성운, M16)에서 성간 가스와 먼지가 만들어낸 거대하게 우뚝 선 세 기둥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특히나 기둥 꼭대기의 찬란한 후광은 깊은 인상을 준다. 가스와 먼지, 그리고 빛은 이곳이 새로운 별(항성)의 생성이 활발한 곳임을 말해준다.
이 영상은 1995년 처음 공개했다. 공개 당시에 기이하면서도 신비한 모습이 언론매체들에 주목받으며 대중적인 관심사가 되었고 이내 ‘창조의 기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본래 연구자들의 발표 논문에서 이곳을 지칭하는 천문학 명칭은 독수리성운에 있는 ‘증발하는 가스 구상체(EGGS)’였다.
이후에 새로운 별들이 만들어지는 이곳에 대한
관측과 분석 결과들이 여럿 발표됐다. 그러면서 새로운 항성의 탄생이 활발하며 이미 태어난 거대 항성들의 복사로 주변 가스가 증발하는 역동적인 지역으로 주목받아 왔다. 일부에선 초신성 폭발이 있었으리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칠레에 있는 라 시야 천문대에서 관측한 독수리성운. 가운데에 창조의 기둥 보인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독수리성운에 있는 독특한 형상의 천체 구조들. 가운데에 창조의 기둥이 있다. 출처: 미항공우주국(NASA)
그런데 기둥 길이가 최대 5광년에 달하는 거대 구조를 이루는 성간 가스와 먼지가 이런 역동성 속에서도 흩어지지 않고 형상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2015년에 허블 망원경이 새로운 관측 장비를 사용해 훨씬 더 선명한 창조의 기둥 영상을 제시했지만 그 형상은 20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기둥 형상을 지탱하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에 그 수수께끼의 일부가 밝혀졌다.
창조의 기둥 내부에 있는 자기장의 지도. 기둥의 표면과 대체로 평행한 방향으로 자기장이 흐른다(흰 막대 표시는 자기장의 방향을 나타낸다). 출처: 케이트 패틀 등 국제공동연구진, 천문학저널 레터스(ApJL)
영국, 한국, 일본, 중국, 대만, 캐나다 등 천문학자들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진(BISTRO 서베이 팀)은 창조의 기둥 구조가 붕괴되거나 흩어지지 않고 일정한 형상을 유지하는 데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자기장 덕분이라는 관측과 분석 결과를 최근
<천문학 저널 레터스(ApJL)>에 발표했다. 관측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자기장의 방향이 기둥 표면 형상의 흐름과 대체로 평행을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공동연구에 참여한 권우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교수)은 “가장 잘 관측된 가운데 기둥을 보면, 뜨거운 별의 열복사로 이온화 된 플라스마 압력 때문에 기둥이 당연히 깎여나가 다른 모양이 되어야 하는데도 기둥 구조를 지금처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방향과 세기를 지닌 자기장의 존재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둥 형상을 따라 평행하게 흐르는 자기장에서 자기압은 그 수직 방향으로 형성되기에, 날아오는 플라스마 압력을 막아내는 데 자기장이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장은 창조의 기둥을 지금 모습대로 지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국제 공동연구진은 미국 하와이에 있는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전파망원경(JCMT, 구경 15미터의 서브밀리미터파 관측 망원경)의 편광 관측 장비를 이용해 기둥 내부에서 나오는 전파와 그 편광 효과(전자기파를 구성하는 전기장이나 자기장이 특정 방향으로 진동하는 현상)를 관측함으로써 기둥 내부의 자기장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권 연구원은 “기둥 바깥의 자기장은 이미 근적외선(가시광선 쪽에 가까운 적외선 파장 영역)의 관측을 통해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에는 서브밀리미터나 밀리미티 파장 수준의 전파를 관측함으로써 기둥 내부에 있는 자기장을 처음 관측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항성의 생성 과정에 자기장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밝히려는 국제 프로젝트인 ‘비스트로(BISTRO)’의 하나로 시행됐다. 국제 관측 프로젝트와 관련해, 권 연구원은 “별은 밀도가 높고 차가운 분자 구름 속에서 생성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분자 구름 중에서 실제로 별 생성에 참여하는 것은 지극히 적은 질량일 뿐이며 대부분은 다 흩어진다”면서 “이런 흩어짐 현상은 중력 수축에 반하는 어떤 다른 작용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비스트로 프로젝트는 그런 작용을 하는 요인 중 하나인 자기장이 항성 생성에 실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밝히고자, 항성 생성이 활발한 우주 지역의 자기장을 정밀 관측, 분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 연구진은 창조의 기둥 외에 항성 생성이 활발한 다른 지역의 자기장 관측도 한창 진행하고 있어 별 생성과 자기장의 관계에 관한 연구결과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