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남방천문대 공동연구진 성과
초거대 블랙홀 주변 항성들 추적관측
블랙홀 가까이 지날 때 빛 변화
중력장 빠져나오며 에너지 잃기 때문
블랙홀 영향 ‘중력 적색편이’ 포착
“일반상대성이론 예측과 들어맞아”
우리은하 중심의 초대형 블랙홀(가운데) 둘레를 타원궤도로 공전하는 항성 S2의 궤적을 보여주는 그림. 그림에서 항성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운동한다. 가장 가깝게 지날 때에 블랙홀의 중력장 효과가 가장 크며, 이때에 항성의 빛이 중력장을 빠져나오는 데 에너지를 잃고 파장이 길어져 적색을 띠게 된다(적색편이 현상). 그림은 이런 블랙홀 거대 중력장의 효과를 명확하게 표현하고자 색깔 변화를 과장해 그린 것이다. 출처: 유럽남방천문대(ESO)/MPE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초거대질량의 블랙홀 둘레를 도는 항성(별)을 26년 가까이 추적해, 이 블랙홀이 일으키는 거대 중력장 효과를 관측한 유럽 천문연구진의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태양질량 400만 배 블랙홀의 거대 중력장에서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들어맞음을 확인해주는 관측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한겨레 자료그림
독일 막스플랑크 우주물리연구소(MPE)가 이끈 공동연구진(책임연구 라인하르트 겐첼)은 지구에서 2만6000 광년 떨어진 우리은하 중심 블랙홀의 둘레를 도는 항성들의 운동을 199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추적해왔으며 특히 그중에서 가장 가깝게 도는 항성(‘S2’로 명명)의 속도와 위치 변화, 그리고 빛(전자기파)의 파장 변화를 관측한 결과를 과학저널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에 최근 발표했다.
은하 중심 블랙홀과 그 주변 항성들의 관측은 거대 중력장이라는 극한의 중력에서 일어나는 천체물리학을 연구하는 데 좋은 대상이 되었다. 이번 논문의 초점이 된 항성 S2는 태양질량 400만 배의 초대형 블랙홀인 ‘궁수자리 에이별’(Sgr A*, *은 블랙홀을 의미) 둘레를 긴 타원궤도로 매우 가깝게 공전하는 것으로 밝혀져 블랙홀 중력장의 효과를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좋은 관측 대상으로서 주목을 받아왔다.
연구진은 칠레에 있는 유럽남방천문대(ESO) 거대망원경(VLT)에서 적외선 관측장비와 4대 망원경을 연결한 간섭계 등 여러 최신형 관측장비들(GRAVITY 등)을 동원해, 우주먼지와 가스구름에 가려 관측하기 쉽지 않은 머나먼 은하 중심 블랙홀 주변을 정밀하게 관측할 수 있었다.
20년에 걸쳐 관측된 블랙홀 주변 항성들의 영상자료를 모아 만든 동영상. https://youtu.be/TF8THY5spmo 출처: 유럽남방천문대/MPE
관측 결과에서는, 거대 중력장에서도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이 옳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이전에도 다른 여러 천체들의 관측을 통해 확인되어 왔는데,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거대 중력장에서 이 이론이 들어맞는지를 실제 관측을 통해 확인한 것은 처음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항성 S2의 속도와 위치 변화를 추적해냈으며, 이를 통해 이 항성이 블랙홀 둘레를 16년 공전주기로 매우 길쭉한 타원궤도로 돌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어 이 항성의 위치와 속도 변화에 대한 실제 ‘측정값’과 여러 중력 이론들에서 계산된 ‘예측값’을 비교했다. 연구진은 실제 측정값이 뉴턴 중력 이론으로 계산한 예측값과는 일치하지 않았으며 일반상대성 이론의 예측값과는 매우 높게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또한 이번 관측에서 포착된 ‘중력 적색편이’ 현상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거대 중력장 효과를 예측하고 설명하는 데에도 잘 들어맞음을 확인해주는 근거로 제시됐다.
빛(전자기파)이 거대 중력장을 벗어날 때에는 에너지를 잃는 바람에 그 파장이 길어지고, 따라서 빛의 스펙트럼이 파장이 긴 적색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중력 적색편이(redshift, 적색이동)라고 부른다. 항성 S2에서 지구로 날아오는 빛에서, 블랙홀 중력장 때문에 파장이 길어지는 적색편이 효과를 검출할 수 있다면, 이는 거대 중력장의 영향을 측정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우리은하 중심 블랙홀의 둘레를 돌고 있는 항성들의 궤도 시뮬레이션. 이런 항성들 중 하나이며 이번 관측에서 초점이 된 항성 S2는 16년을 주기로 블랙홀을 긴 타원궤도로 돌고 있다. 2018년 5월19일 블랙홀에 200억km 거리로 최근접 했다. 이곳은 거대 중력장의 실제 효과를 볼 수 있는 ‘우주의 극한 중력장 실험실’로도 불린다. 출처: 유럽남방천문대/MPE
연구진은 항성 S2가 16년 공전주기 중에 블랙홀에 가장 근접해 지나가는 때를 이런 효과를 관측할 최적의 시기로 보았다. 2002년 항성이 블랙홀에 최근접 했으나 당시엔 관측 기술이 충분하지 못해 2만6000광년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거대 중력장에 의한 작은 변화를 포착해내지는 못했다. 다음 최근접 시기인 2018년 5월19일을 전후해 연구진은 최신형 관측장비들을 동원해 이 항성의 빛에 나타나는 변화를 집중 추적했다. 항성은 블랙홀에 최근접할 때 200억km 떨어져 시속 2500만km로 운동하는 것으로 관측됐다.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 이론에 의해 예측할 수 있는 중력 적색편이 현상을 포착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다음은 유럽남방천문대가 밝힌 보도자료 중 일부다.
“새로운 측정에서는 중력 적색편이라 불리는 효과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항성에서 날아온 빛의 파장은 블랙홀의 매우 강력한 중력장에 의해 더 길어졌다. 그리고 항성 S2에서 온 빛의 파장에 나타난 변화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예측되는 변화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 이련 결과가 초대형 블랙홀 주변 항성의 운동에서 관측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남방천문대 자료에서)
우리은하 중심 블랙홀 주변의 항성 운동에 주목하는 천문학 연구그룹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유럽남방천문대의 보도자료와 과학저널 <네이처>의 뉴스 보도를 보면, 이곳은 극한 중력장의 효과를 보여주는 훌륭한 ‘우주 실험실’로서 주목을 받으면서, 미국 하와이 켁(Keck) 천문대를 중심으로 한 다른 천문학 관측그룹도 비슷한 주제로 같은 관측 지점을 오랜 동안 추적, 관측하고 있어 블랙홀과 거대 중력장, 그리고 주변 항성 운동에 관한 새로운 관측결과들은 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