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콜롬비아대와 나사 연구팀 연구 결과 지구 가뭄에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 흔적이 새겨진 것은 100년도 넘은 것으로 분석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인간 활동으로 생산된 온실가스와 대기 오염물질이 지구의 가뭄 현상을 일으킨 흔적은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1950~1975년에는 역설적으로 에어로졸 때문에 가뭄 현상이 일시적으로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후 다시 시작된 건조화 추세는 앞으로 몇십년 동안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 항공우주국(나사) 산하 고다드우주연구소와 콜롬비아대 연구팀은 기후 예측 모델과 토양 수분 관측 자료를 비교하는 방법으로 20세기부터 지금까지의 지구 가뭄 양상에 인간이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기후모델들은 인간의 ‘핑거프린트’ 곧 온실가스로 인해 지역별로 건기후와 습기후가 나타나는 양상이 1900년대 초에 시작되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하면서 더욱 강화됐을 것이라는 값을 내놓았다. 연구팀이 강수량 등 관측 자료와 나무 나이테로 추산한 통시적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이런 실제 자료들이 20세기 전반기에 ‘핑거프린트’와 밀접한 연관성을 보이기 시작했음을 밝혀냈다. 연구팀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렸다.
연구팀이 연구에 사용한 핵심적인 지표는 파머가뭄지수(PDSI)이다. 파머가뭄지수는 온도와 강수 데이터를 사용해 상대적으로 건조한지를 계산하는 개념으로 1965년 미국 기상학자 웨인 파머가 제안했다. 강수량, 기온, 일조시간, 유효토양수분량 등 자료를 입력하고 기후적으로 필요한 강수량과 실제 강수량을 비교해 가뭄을 정량적으로 나타낸다. 나사는 현재 우주에서 지구 토양 수분을 측정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의 자료만 존재한다는 것이 한계이다. 파머가뭄지수는 장기간에 걸친 평균 토양 수분 자료를 제공해 과거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에 매우 유용하다.
지구의 가뭄과 습윤 현상에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 흔적이 남기 시작한 20세기 전반기에 오스트레일리아와 지중해 지역은 건조해지고 중앙아시아 지역은 습윤해졌다. ‘네이처’ 제공
연구팀은 또한 가뭄 지도를 이용했다. 가뭄지도는 나무 나이테로 추산해 역사적으로 언제 어느 곳에 가뭄이 들었는지 보여주는 지도이다. 나이테의 두께는 나무 생애중 습윤했던 시기와 건조했던 시기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과학자들은 오래 전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 미국 남서부 같은 지역들은 더욱 건조해지는 반면 다른 지역은 습윤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폭우나 가뭄을 인간의 활동 탓으로 돌리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논문 주저자인 콜롬비아대와 나사 고다스우주연수소 소속의 벤 쿡 연구원은 “인간의 핑거프린트 곧 인간 유래의 기후변화 시그널이 20세기 전반기에 나타났다는 것을 확인해 다소 놀랐다”고 나사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연구팀은 나무 나이테 자료를 토대로 과거 120년을 세 시기로 나눠 어느 시기의 가뭄과 습윤 지도에 인간의 핑거프린트가 새겨져 있는지 분석했다. 첫번째 시기인 1900~1949년에는 매우 강한 시그널이 나타났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지역들은 건조해지고 중앙아시아 지역은 습윤해졌다. 기후모델과 실제 데이터가 일치했다.
다음 시기인 1950~1975년에는 모델과 나이테가 일치했지만 시그널은 모호했다. 연구팀은 자동차 배기와 화석연료 연소 과정에 배출된 에어로졸이 대기오염 방지 장치들이 등장하기 이전에 너무 많이 축적돼 햇빛을 차단하고 그 결과 지구를 냉각시키는 효과를 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온실가스가 다소 증가하는 중임에도 이런 현상이 빚어졌다. 연구팀은 에어로졸이 주범임을 확신하면서도 정확한 상관성을 밝히기 위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시기인 1981~2017년에는 가뭄과 습윤에 대한 인간의 영향이 다시 드러났다. 연구팀은 “시그널이 앞으로 몇십년 동안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북미와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진행되는 건조화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기후모델들은 가뭄이 지구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더욱 자주, 심각하게 발생하고, 그 결과 식량과 물 부족, 건강 침해, 대형 산불, 자원을 둘러싼 분쟁 등을 일으킬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쿡 연구원은 “기후변화는 미래 문제가 아니다. 기후변화는 이미 지구적 가뭄과 수중기후, 경향성, 변동성의 지구적 양상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계속되는 한 이런 경향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