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전자 바이오기술은 정보기술 못지 않게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다. 중국의 첫 ‘유전자 편집 아기’ 등장이 상징적이다. 그만큼 데이터로서 유전자 정보의 활용 범위와 가치도 올라가고 있다. 국가 역시 여기에 관심이 많기 마련인데, 이것이 ‘궁극의 프라이버시 종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마침 최근 양대 최강국, 미국과 중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이런 국가의 ‘디엔에이(DNA) 욕망’을 엿보게 하는 사례가 나왔다.
미국 애리조나주 신문, <애리조나 리퍼블릭>은 지난 19일 한 주의원이 논란의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해당 법안은 학교에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부모, 선생님, 부동산 중개인, 양부모 등의 집단에 속하는 사람은 의무적으로 국가에 자신의 디엔에이 정보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또 범죄 수사에 필요하면 수사기관이 이 유전체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뼈대다.
이는 즉각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를 범죄 수사에만 활용하리라는 것은 누가 보장하는가? 누군가가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했을 때 그 피해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런 논란에 법안은 “지적 장애가 있는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으로 대상 범위가 쪼그라들어 버렸다. 미국에선 몇달 전 혼수 상태에 있는 한 여성 환자가 임신을 한 사실으 드러나면서 보호 의료인의 성폭행 의혹이 큰 이슈가 된 바 있다.
미국에서 정부의 디엔에이 수집은 애리조나주의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시사주간지 <애틀랜타>에 의하면, 미국 50개주는 각각 종류는 다르지만 일부 범죄자의 디엔에이를 수집하는 법안을 모두 가지고 있다. 미군은 전투 중 사망할 경우 신원 확인을 위해서 모두 자신의 디엔에이를 국가에 제출해야 한다. 특히 지난해, ‘45년 미제’로 남았던 ‘골든 스테이트 킬러’라는 연쇄 살인마의 유력한 용의자를 디엔에이 활용 사례로 붙잡으면서 각 수사기관의 디엔에이 수집에 대한 관심은 크게 증폭됐다. 당시 수사팀은 용의자의 유전자 정보를 한 개인 유전 정보 공유 사이트에 제공했고 이 사이트는 그의 친척일 수 있는 사람 10~20명을 지명해 줬는데 이것이 결정적 단서가 됐다. 미국에선 자신의 가계를 알아보기 위해 유전자 테스트를 하고 자신의 정보를 공유 사이트에 올리는 게(그러면 본인과 다른 사람들이 친척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유행처럼 번진 바 있다.
지구 반대편 중국에선 공산 정부가 소수민족 통제 수단으로 디엔에이 정보를 수집해 왔다는 사실이 역시 최근 드러났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21일 중국 정부가 반정부적인 위구르족 인사에 대한 추적을 쉽게 하기 위해 보건 캠페인으로 위장해 위구르족의 디엔에이 정보를 수집하고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의하면, 2016~2017년에만 해당 프로그램에 참가한 위구르족 숫자가 3600만명(여러번 참여한 경우를 포함)에 달했다고 한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위구르족 인구는 약 2450만명이다. 이 지역에선 중국 정부의 철권 통치에 반발하는 위구르족 테러가 최근 몇년 동안 발생해 왔으며, 중국 정부는 이들 반체제 인사를 붙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뉴욕타임스> 보도가 미국에서 더 주목받은 것은 이런 미국의 기업과 학자가 이런 수집 활동에 협력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미국 예일 대학의 유전자 연구 권위자 케네스 키드(Kenneth Kidd) 교수가 2010년 중국을 방문해 중국 수사과학 책임자를 비롯한 관계자들을 만나고 자신과 중국 연구소가 가지고 있는 샘플을 서로 교환해 왔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중국 정부 소속 연구자는 이 샘플을 바탕으로 어떻게 인도인과 위구르인을 유전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또 디엔에이 수집을 더 용이하게 하기 위해 장비를 대거 확충했는데 이 가운데에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의료기기기업 서모 피셔(Thermo Fisher)가 포함돼 있었다.
유전자 정보의 데이터 집적이 다른 정보에 비해 더 무서운 점은 이 데이터가 인체의 설계도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미국 과학저널 <뉴아틀란티스>의 선임 에디터 크리스틴 로젠(Christine Rosen)은 디엔에이를 한 사람의 “미래 일기”로 표현하면서, 디엔에이 정보를 얻는다면 “그 사람이 (앞으로 걸릴) 병의 위험 정도, 행동 양식 등을 그 사람 모르게 파악할 수 있다”고 칼럼을 통해 지적했다. 그리고 이 정보는 로그인 아이디나 은행 계좌 비밀번호처럼 내가 원한다고 해서 바꿀 수 없는 ‘영구적인’ 정보다. 이 정보를 뺏긴다는 것의 의미를 우리는 아직 완전히 모른다는 게 로젠의 설명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는 정보 기술의 발전 덕분에 큰 비용 없이 얼마든지 이런 정보를 집적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는 중국이나 미국 같은 초강대국 정부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이들이 눈에 띄게 적극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수사기관도 흉악 범죄자뿐 아니라 파업 노동자 등의 디엔에이를 이미 채취한 전력이 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