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은 플라스틱과 암석, 모래, 조개껍질, 나뭇조각 등이 엉키고 뭉쳐 이룬 이른바 ‘플라스틱 돌’. 인간의 영향이 두드러지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보여주는 지표석이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캐나다 웨스턴대학 연구팀 제공
요즘과학
1950년대 이래 대량 생산돼 지금은 우리 일상에서 흔하디흔하게 쓰이는 플라스틱이 새로운 지질시대를 구분하는 기표석이 될 수 있다는 지질학자의 주장이 나왔다.
캐나다 웨스턴대학 등의 지구과학자들은 최근 미국 하와이 남동 해변 21곳에서 타고 남은 플라스틱이 섞인 돌덩어리들을 수집해 새로운 유형의 암석이라는 뜻에서 ‘플라스티글로머리트’ 또는 ‘플라스틱 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플라스틱 돌이 지구 역사에서 인간의 영향이 커진 지질시대를 일컫는 이른바 ‘인류세’(Anthropocene)를 구분하는 데 기준석으로 쓰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연구 보고와 주장은 미국지질학회가 내는 저널 <지에스에이 투데이>에 최근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연구자들은 녹았다 굳는 플라스틱이 다른 암석에 달라붙거나 다른 돌, 모래, 조개껍질, 산호, 나뭇조각 등과 엉켜 매우 단단한 덩어리를 형성하며 이는 해저 바닥이나 퇴적물에 쌓일 때 매우 오랜 동안 보존되는 일종의 암석이 된다고 보고했다. 환경에서 플라스틱은 대략 수십만년 동안 분해되지 않은 채 보존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연구보고가 눈길을 끈 것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와 더불어 플라스틱 오염이 인류가 자연에 지구 차원의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흔적으로 기록될 만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플라스틱 돌은 지구촌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번에 수집된 플라스틱 돌도 해변의 캠프파이어나 쓰레기 소각 때 타며 녹은 플라스틱이 다른 암석, 모래, 조개 등과 엉키거나 점착해 생성된 것들이었다. 연구팀은 미국 <뉴욕 타임스> 뉴스에서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돌을 본 적이 있을 것인데 다만 사람들이 그동안 이에 이름을 붙여 학계에 정식 보고한 적이 없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아직 ‘인류세’라는 지질시대는 학계에서 공인되지는 않았다. 2000년 이래 일부 지질학자들은 빙하기가 끝난 대략 1만년 전 이후 시대인 ‘신생대 제4기 현세(홀로세)’와 구분해 인간 영향이 뚜렷한 대략 18세기 이후를 ‘신생대 제4기 인류세’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왔다.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인간은 지구 역사를 담은 암석에다 자신의 기록을 남긴다”며 “퇴적물을 대량으로 옮기고 화석연료를 태워 대기를 바꾸고 희귀 방사성원소인 플루토늄을 남기고 있으며, 이제는 새로운 유형의 암석까지 생겨났다”고 전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플라스틱 돌덩이에 학술적인 이름을 붙이고 지질학적인 의미가 달리면서, 인류가 지구 자연에 끼친 오염과 영향이 어느 정도나 길고 큰지 되돌아보게 한다.
오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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