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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기술

위기의 저널리즘에 블록체인을 처방하라, ‘시빌’

등록 2017-11-26 10:08

[토요판] 뉴스분석 왜?
‘블록체인 저널리즘’의 미래

‘제3자 존재’ 없앤 블록체인 기술
‘개인간 거래’ 가능한 시대 열려
지난 6월 미국에서 시작된 ‘시빌’
블록체인과 저널리즘 접목 시도

분산형 뉴스룸 플랫폼 출시 예정
시빌이 발행한 ‘CVL토큰’으로 거래
제작자·시티즌 등 참여자로 구성
현재까지 5개 뉴스룸 꾸려진 상태

▶ 누구나 저널리즘의 위기를 말하는 지금, 한편에선 전혀 새로운 방향에서 해법을 찾아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6월 미국에서 시작된 ‘시빌’이 대표적 사례다. 분산형 속성을 지니는 블록체인 기술을 저널리즘에 접목하려는 시빌의 실험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블록체인의 영향력이 과연 우리 삶의 어느 영역까지 미칠 수 있을지를 짚어봤다.

블록체인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는 거래를 하거나 계약을 맺을 때 서로의 신뢰를 보증할 완벽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블록체인은 신뢰를 보증할 ‘제3자’의 필요성을 없앤, 일종의 ‘신뢰 프로토콜’이다. 바야흐로 중개자 없이 서로 검증하고 신뢰를 보증하며 개인 간(피어투피어) 거래가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블록체인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는 거래를 하거나 계약을 맺을 때 서로의 신뢰를 보증할 완벽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블록체인은 신뢰를 보증할 ‘제3자’의 필요성을 없앤, 일종의 ‘신뢰 프로토콜’이다. 바야흐로 중개자 없이 서로 검증하고 신뢰를 보증하며 개인 간(피어투피어) 거래가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저널리즘의 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질병’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지난 미국 대선을 전후로 ‘가짜뉴스’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영국 <옥스퍼드사전>은 2016년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하기도 했다. 국내 뉴스 신뢰도는 미국과 일본 등 36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 중이다.

이런 현상은 급변하는 미디어 생태계와 한데 맞닿아 있다. 미디어 생태계가 디지털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전통적 미디어라 할 신문의 독자와 방송 뉴스 시청자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세상 소식을 접하지 않는다. 포털, 소셜미디어 등 거대 기술 플랫폼을 통해 받아들이는 게 훨씬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자연히 구독료와 광고 수익이 떠받치던 저널리즘의 전통적인 수익 모델은 해체됐다. 언론사는 구글과 페이스북 등 기술 플랫폼에 자신의 콘텐츠를 많이 노출하는 것에 사활을 걸게 됐다. 콘텐츠 노출 빈도는 곧 광고 수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온라인에서 집행되는 전체 광고료의 80%를 점유한다. 독자와의 직접적인 접점을 잃은 기존 언론사들이 자신도 모르는 새, 구글과 페이스북이 만든 규칙들을 따르고 있는 현실은 기괴하기만 한 일은 아니다. 낚시성 기사 ‘클릭베이트’가 만연하고 진지한 저널리즘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문제는 저널리즘의 위기가 단순히 언론 산업의 붕괴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곧 우리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

블록체인 기술을 저널리즘에 접목하려는 시도인 ‘시빌’은 내년 초 본격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시빌 누리집 갈무리
블록체인 기술을 저널리즘에 접목하려는 시도인 ‘시빌’은 내년 초 본격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시빌 누리집 갈무리
블록체인, 탈중앙·분산형 속성

지난 6월, 미국에선 위기에 빠진 저널리즘을 구하려는 조금 색다른 시도가 시작됐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21세기형 자립가능한 저널리즘 모델을 만들어보려는 실험, ‘시빌’(Civil)이 주인공이다.

시빌을 이해하려면 먼저 블록체인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블록체인은 아직도 대중에게 낯선 기술이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900만원을 돌파하며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개념을 헷갈리거나 혼용해 사용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을 금융거래에 접목한 한 사례일 뿐, 그 자체는 아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분명 혁신적이다. 인터넷이 등장한 이래 인류가 그토록 풀고 싶어 했지만 풀지 못했던 문제를 단번에 푼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이기 때문이다. 그 문제란 신뢰를 보증하는 방법을 말한다. 블록체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는 거래를 하거나 계약을 맺을 때 서로의 신뢰를 보증할 완벽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항상 신뢰를 보증할 제3자가 필요했다. 중간에 믿을 수 있는 존재를 세워두고 이를 이용해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주고받는 방식이다. 이 제3자는 누구나 믿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개 정부 혹은 정부의 허가를 받은 중앙집중형 기관이 맡았다. 금융거래로 치자면 ‘은행’이 신뢰를 보증하는 제3자였다.

블록체인은 이 제3자의 필요성을 없앤, 일종의 ‘신뢰 프로토콜’이다. 데이터가 모든 참여자에게 분산 저장돼 있으므로, 설령 참여자 중 누군가의 데이터가 위·변조된다고 하더라도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다. 바야흐로 중개자 없이 서로 검증하고 신뢰를 보증하며 개인 간(Peer-to-Peer·피어투피어) 거래가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런 방식은 필연적으로 탈중앙, 분산형 성격을 지니기 마련이다.

블록체인의 혁신성은 이를 여러 분야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으로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에너지, 의료정보, 저작권 등 분야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분산형 피투피(P2P) 플랫폼을 만들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시작됐다. 흥미로운 일이다. 블록체인으로 인해 진정한 피투피 경제 시대가 열릴 날이 머지않은 걸까?

검열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시스템

“전통적이지 않은 문제를 풀고자 한다면, 전통적이지 않은 해결책을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래리 생어 위키백과 공동설립자)

다시 시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오늘날 저널리즘이 처한 위기는 다층적이다. 먼저 정치권과 광고주의 입김으로부터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켜내는 숙제가 있다. 여기에 새로운 골리앗으로 떠오른 거대 기술 플랫폼과의 주도권 경쟁 문제가 더해졌다. 매슈 일스 시빌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급진적이고 새로운 처방, 블록체인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럼 왜 블록체인일까. 시빌의 뉴스룸 ‘파퓰러’에 참여하는 언론인 마리아 부스틸로스의 답은 이렇다. “블록체인 자체가 답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흰색 도화지 같아서 답을 써넣을 수 있다.” 도화지에 쓸 수 있는 답은 여러 가지다.

먼저 블록체인 기술은 완전무결한 기록의 보존을 보장한다. 저널리즘에서 기록의 보존은 중요한 이슈다. 한번 만들어진 뉴스 콘텐츠가 완전무결하고 투명하게 보존된다면 함부로 내용을 바꾸거나 지울 수 없다. 오류가 있어 바로잡는 경우에도 모두 기록으로 남는다. 그렇기에 누군가 의도를 갖고 개입해도 곧 들통난다.

이뿐 아니다. 블록체인을 통해 기자와 독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것도 커다란 장점이다. 그럼 어떤 변화가 생길까. 광고주의 입김, 정치적 외압, 이익단체, 온갖 검열, 저널리즘을 흔드는 거대 기술 플랫폼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게다가 기자가 특정 언론사의 ‘고용인’으로 소속된 것이 아니어서 언론사의 사주나 사장의 영향을 받지 않아도 된다. 기자는 오직 독자만을 위해 언론 활동을 할 수 있다.

‘뉴스 오픈마켓’을 꿈꾸다

시빌은 2018년 분산형 뉴스룸 플랫폼을 내놓을 예정이다. 현재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이 플랫폼은 하나의 오픈마켓으로, 자립 가능한 새로운 저널리즘 모델을 모색한다.

지금까지 저널리즘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다. 가짜뉴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필터링 알고리즘을 개발하기도 하고, 네이티브 광고를 수익모델로 삼으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아예 수익모델 고민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 후원을 받거나 비영리단체에 편입된 사례도 있다. 하지만 모두 부분적 해결책이었기에 입체적인 저널리즘의 위기를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에 비해 오픈마켓을 만들려는 시빌의 시도는 훨씬 과감하고 입체적인 시도라 할 만하다. 이 시장에서는 시빌이 발행하는 ‘시브이엘(CVL) 토큰’이 화폐로 쓰인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 토큰으로 스마트계약을 하고 뉴스를 생산·소비한다.

시빌 뉴스룸에는 크게 다섯 종류의 상호 의존적인 참여자가 있다. 첫번째 참여자는 ‘저널리즘 자문위원회’. 저널리즘 자문위원회는 언론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 단체다. 이들은 뉴스룸에서 저널리즘 윤리가 잘 지켜지고 있는지 관리하고, 분쟁이 발생하면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두번째 참여자는 관리자다. 관리자는 헌장에 따라 뉴스룸을 관리한다. 헌장은 뉴스 제작자와 독자의 승인에 따라 만들어진다. 뉴스룸 운영에 대한 책임 역시 관리자 몫이다. 다음으로는 뉴스 제작자와 시티즌(독자)이 있다. 카메라 기자를 포함한 모든 기자, 에디터, 일러스트레이터, 자료조사관 등 뉴스 콘텐츠를 만드는 모든 사람이 뉴스룸 제작자에 해당한다. 시티즌은 뉴스 소비자다. 시티즌은 시브이엘 토큰으로 기사 열람권을 살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팩트 체커가 있다. 팩트 체커는 저널리즘의 기본, ‘사실’을 확인한다. 팩트 체커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시브이엘 토큰을 얻고, 뉴스룸 안에서 높은 평판을 얻기 위해 사실 확인 작업에 나선다. 팩트체킹 시장은 시빌 오픈마켓 내 중요한 보조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블록체인 기술을 저널리즘에 접목하려는 시도인 ‘시빌’은 내년 초 본격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시빌 누리집 갈무리
블록체인 기술을 저널리즘에 접목하려는 시도인 ‘시빌’은 내년 초 본격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시빌 누리집 갈무리
언론인 200여명이 모인 ‘1차 함대’

시빌 뉴스룸에는 여러 흥미로운 장치가 마련된다. 모두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속하기 위한 것들이다. 시빌 누리집에 설명된 것 중 눈에 띄는 장치는 ‘투광조명’과 ‘서비스로서의 팩트 체킹’, ‘평판 조회’ 등이다. 투광조명은 시티즌이 어떤 이슈에 대해 다양한 관점의 뉴스를 추천받아 ‘필터 버블’에 갇히지 않도록 한다. 서비스로서의 팩트 체킹은 시티즌이 뉴스 내용에 대해 사실 확인을 요구하면 뉴스룸 내 여러 팩트 체커들이 이 작업을 수행하고 토큰을 받는 장치다. 평판 조회는 뉴스 제작자의 저널리즘 윤리, 정확도 등을 조회할 수 있는 장치다. 시티즌은 평판 조회를 통해 선호하는 뉴스 제작자를 고르고 팁을 주거나 후원할 수 있다.

시빌은 2018년 초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 언론인 200여명이 모인 ‘1차 함대’를 꾸려 총 30개의 뉴스룸을 구성할 계획이다. 시빌은 투자받은 돈 500만달러 가운데 1차 함대에 100만달러(약 11억1천만원)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마리아 부스틸로스, 세라 밀러 등 유명 언론인이 1차 함대에 합류했다. 이들은 <뉴욕 타임스>, <가디언> 등 유명 언론사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기자들이다. 지금까지 꾸려진 뉴스룸은 △파퓰러 △윈디 시티 리포터 △하트 오브 텍사스 △드러그드 업 △핀테크 퓨처 총 5개다. 이들은 지역, 정책, 탐사 보도 분야에 역량을 집중한다.

누구나 원하면 시빌의 1차 함대에 오를 수 있다. 시빌은 현재 참여자를 모집 중이다. 시빌 누리집에 들어가면 시티즌과 뉴스 제작자 중 하나를 선택해 가입할 수 있다. 두 역할 모두 블록체인으로 저널리즘을 구하려는 흥미로운 시도를 직접 해볼 기회다.

한수연 <블로터> 기자 again@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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