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연구원 연구원들이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장치 원격운전 시험을 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2008년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원자력위원회에서 심의·확정된 겁니다. 그에 따라 연구개발이 진행된 것인데 다시 보겠다는 건 어떤 근거로 하는 건가요?”(지난해 10월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감사에서 오세정 의원) “지금 여러 가지 논란이 있는 큰 규모의 프로젝트들이 있습니다. 파이로프로세싱에 대해 찬반이 갈리고 있어 왜 그런지 들여다보자는 겁니다.”(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지난해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쟁점의 하나로 떠오른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고속로(SFR) 연구사업(후행핵주기 연구사업)의 운명이 이달 안에 결정될 전망이다.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12일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고속로 연구개발 사업에 대한 전문가 검토를 벌이기 위해 원자력 분야에 근무하지 않는 전문가 7명으로 ‘사업재검토위원회’를 꾸려 첫 모임을 열었다. 이들 7명의 위원은 오는 11~12일 찬반 양쪽 전문가 5명씩을 불러 청문을 할 계획이다. 이후 공청회 등을 거쳐 월말까지 검토 의견을 과기부에 제출한다. 이창선 과기부 원자력연구개발과장은 “재검토위 전문가들이 검증하는 것은 한-미 공동연구로 2020년까지 진행하도록 돼 있는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고속로 연구개발 계획에 국한된다. 실증시설 등 추가 진행 부분은 다시 논의해야 할 별개의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원전에서 태우고 남은 고방사성 독성물질인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과 초우라늄원소(TRU·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우라늄보다 무거운 원소) 등을 고온에서 전기화학적 방법을 이용해 회수하는 재처리 방식의 일종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자력연)은 이 기술을 이용할 경우 사용후핵연료를 지하에서 직접 처분하는 것에 비해 고준위 폐기물 양과 처분장 면적을 줄일 수 있고 회수한 핵물질을 소듐고속로의 핵연료로 다시 쓸 수 있다며 1997년부터 지금까지 6764억원을 들여 연구를 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파이로프로세싱의 효율성과 경제성, 안전성 등과 관련해 원자력계 안팎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아왔다.
원자력연 반경 30㎞ 안에 있는 대전·세종·충남·충북의 3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핵재처리실험 저지를 위한 30㎞ 연대’와 탈핵법률가 모임 ‘해바라기’는 지난해 10월30일 시민 1057명의 명의로 감사원에 ‘파이로프로세싱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정부의 주요 사업, 예산, 안전, 환경, 복지 등 불특정 다수인 또는 사회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안으로 19살 이상 국민 300명 이상이면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할 수 있다. 시민 감사청구단은 파이로프로세싱의 문제점으로 △핵심 공정이 국내에서 불가능하다는 점 △사용후핵연료 처분 부지 면적을 100분의 1로 축소할 수 있다는 주장의 허구성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고속로의 경제성이 없다는 점 △처분 사용후핵연료 양이 20분의 1로 감소한다는 주장의 허구성 등을 지적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핵연료 피복을 벗기고 가루로 만드는 전처리 공정, 사용후핵연료를 금속화하는 전해환원 공정, 우라늄 금속을 저준위 폐기물로 회수하는 전해정련 공정, 플루토늄(Pu)과 마이너 악티니드(MA·주기율표 악티니드계열에서 우라늄·플루토늄을 제외한 원자번호 92번 이상의 원소) 등 초우라늄원소의 회수를 위한 전해제련 공정 등으로 진행된다. 원자력연은 회수한 초우라늄원소로 핵연료를 제조해 소듐고속로에서 사용하면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면적을 100분의 1로 줄이고 독성감소기간을 1000분의 1로 감축할 수 있다고 누리집에 게시하고 있다.
감사청구단은 “2015년 12월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에 의해 국내에서 허용된 사용후핵연료를 이용한 실험공정은 전처리와 전해환원 공정까지다. 파이로프로세싱의 핵심 공정인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분리하는 전해정련과 전해제련 공정은 국내에서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부분은 원자력계 안에서도 의문점을 제기하는 대목이다. 한국원자력학회 분과위원회인 원자력이슈위원회가 2016년에 제시한 ‘순환핵주기 연구의 쟁점과 정책 제언’을 보면, 2020년 한-미 공동연구가 완료된 뒤 주요 현안으로 제기될 ‘플루토늄 추출의 불가능성’을 입증할 객관적 자료 제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원자력이슈위원회의 정책 제언은 원자력계 전문가로 패널을 구성해 한-미 원자력협정과 파이로프로세싱 전반에 걸친 정책적·기술적 내용에 대해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를 하고 있는 원자력연과 질의응답을 해 마련됐다. 원자력이슈위원회는 플루토늄 양을 플루토늄과 함께 거동하는 다른 방사성원소들로 간접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은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파이로프로세싱 일관 공정 시험시설 전경.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원자력이슈위원회는 또 국내 고준위 폐기물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수로 사용후핵연료는 재처리 대상이 아니어서 처분 부지 면적이 100분의 1로 줄어든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진단했다. 사용후핵연료 양이 20분의 1로 줄어든다는 설명도 파이로프로세싱 과정에 다양한 형태의 고준위 폐기물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파이로프로세싱-소듐고속로 무한재순환주기’에서 우라늄 자원 이용률이 98.6%에 이른다는 원자력연의 설명에 대해 원자력이슈위원회는 “국내에서 구상하고 있는 소듐고속로 원형로는 증식로(연쇄반응으로 핵분열성 핵종이 소비될 때마다 소비된 것 이상으로 새로이 핵분열성 핵종이 증가하는 원자로)가 아니기 때문에 무한재순환주기와 관련한 수치를 기술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슈위원회는 우라늄 자원 이용률은 경수로에서 0.69%, 경수로 연계 초우라늄원소 연소에서 0.4% 등 1.1%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이번 공익감사 청구를 맡은 ‘해바라기’의 김영희 변호사는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고속로 연구사업을 추진해온 곳이 원자력연을 소속기관으로 둔 과기부로, 사업 재검토 자체가 셀프검증이라는 한계가 있다”며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를 국민에게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고 에너지 정책과 관련한 원전 운영과 연관지어 논의하고 나서 직접 처분을 할 것인지 재처리를 병행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데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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