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7개문항 ‘풀이과정’ 요구
경희대가 수시모집 논술고사에 수학·과학 교과의 풀이과정을 요구하는 문제를 출제해 본고사 논란이 일고 있다.
경희대는 지난 18일 응시생 1만815명이 치른 2009학년도 수시 2학기 모집 자연계 논술고사에서 6개 논제, 13개 문항을 출제했다고 19일 밝혔다. 이 가운데 7개 문항은 ‘함수 P(t)를 이용하여 이날 사용된 총 전기에너지의 양(전력량)을 추정하고, 그 방법에 대하여 논술하시오’ 등 사실상 정답이 정해져 있는 본고사형 문제들로 지적됐다. 나머지 상당수 문항들도 ‘… 운동 중 근육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방법이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각각의 에너지 공급 방법의 장점에 대하여 논술하시오’처럼 풀이과정이 비교적 명료한 문제라고 입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범 곰티브이 강사는 “명백히 풀이과정과 정답을 요구하는 문제뿐 아니라 풀이과정을 요구하지 않지만 정답이 뻔히 있는 문제들이 상당수 있다”며 “논술이 본고사화하는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완용 경희대 입학처장은 “논술고사인 만큼 정답을 하나로 정해놓지 않고 다양한 아이디어에 점수를 준다는 전제로 출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외국어대·숙명여대에 이어 경희대까지 2009학년도 수시모집 논술전형에 수학 풀이과정을 요구하는 문제를 출제하면서, 이후 다른 대학들도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의 논술고사에서 본고사에 가까운 문제들을 출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부터 대학입시 업무를 관장하게 된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논술 가이드라인’을 폐지했기 때문이다. 교과부는 2005년 논술고사의 본고사 변질을 막는다며 △단답형이나 선다형 문제 △수학·과학의 풀이 과정이나 정답을 요구하는 문제 등을 내지 못하도록 논술 가이드라인을 정한 바 있다.
김정명신 함께하는교육 시민모임 공동대표는 “논술 출제를 규제할 어떤 장치도 없어져 대학들이 앞다퉈 본고사형 논술 문제들을 낼 것 같다”며 “당분간 ‘3불 정책’은 유지돼야 한다고 밝힌 대교협은 논술 출제에 대한 확실한 지침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영 기자 min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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