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25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산업계 온실가스 자발적 감축 선언식에서 이재훈(왼쪽 네번째) 당시 지식경제부 차관, 정병철(왼쪽 세번째) 당시 전경련 부회장 등이 오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탄소집약도)을 40% 감축하기로 결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주말 농수산물 유통업체로부터 폭염으로 자연산 물총조개 70%가 집단폐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세계 최대 커피 산지 브라질 상파울루가 한여름 가뭄과 냉해로 생산이 급감한 탓에 하반기 커피 생두 가격상승도 예고돼 긴장상태라는 말도 들었다. 폭염과 가뭄으로 국제 밀 가격은 지난해와 비교해 40% 상승했고, 빵·라면 등 국내 식품가격에 연쇄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게 기후변화는 생태계 구조의 핵심적 기반을 무너뜨린 뒤 일상과 실물경제까지 위협하고 있다.
9일 공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제1실무그룹보고서는 이러한 변화가 더욱 빠르게 가속화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기업의 적극적 참여와 역할을 촉구하는 배경에는 산업부문에서 직·간접적으로 배출하는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 문제가 있지만, 향후 본질적 생존과 지속가능 경영활동을 위해 공급망과 투자자, 소비자들이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해외 많은 기업들은 각자 그리고 함께 오랜 시간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방법을 찾아나가고 있다. 올해 딜로이트 글로벌 복원력 보고서(Deloitte Global Resilience Report)에 따르면 글로벌 최고경영자 62%가 기후변화를 10년 내 기업 경영활동에 가장 큰 위협이라 대답했다. 기후변화와 가뭄, 홍수 등 기상이변은 농수산업뿐 아니라 전세계 경제부문의 70%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공급망, 원자재 비용 상승, 규제 및 정치적 불확실성 상승, 보험비용 인상, 노동문제 등 기업경영에 본질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은 소극적으로 비춰진다. 새로운 기업운영 방식과 근본적 전략 변화는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기업의 지속가능 이니셔티브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 생각되는 단기적 성과 추구와 경직된 거버넌스도 해결해야 한다.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2011년부터 매년 11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되는 국제조류에너지회의(ITES)에 참여하면서 세계 주요국이 조류발전이라는 새로운 산업영역을 구축하고 성장시켜나가는 과정을 살펴봤다. 공통적으로 3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 과학에 기반해서 계획을 수립했다. 행사 기간인 2박3일 동안 각 분야별 의사결정자와 실무자들은 지역별 조류발전 부존에너지량 등 과학적 데이터와 연도별 공동 개발목표를 수립해 성과를 평가하고 내년도 계획을 함께 세워나갔다.
둘째, 협력과 혁신을 통한 변화를 주도해 나간다. 각 기업은 지난 1년 성과뿐 아니라 경험한 기술적, 행정적, 경제적 난제들을 공유하고 중앙·지역 행정 및 학계가 모두 함께 해결해 나갔다. 그 결과 유럽 공유수역 내 조류발전 실증단지가 마련되어 기업들은 빠르게 산업과 기술기반을 구축했다. 이후 아이티(IT) 분야 민간기업을 초대해 실시간 모니터링 및 부가가치를 갖는 서비스로의 개발모델을 논의했고, 시민사회와 함께 스코틀랜드에 세계 최초 협동조합 기반 조류발전소를 설립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셋째, 지속가능한 이행체계 구축이다. 주요 국가 대학들은 조류발전 산업과 연관되어 있는 유체 및 구조역학, 터빈, 펌프, 소재 등 핵심분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학과를 신설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현재 지멘스·볼보 등 대기업 출신이 세운 조류발전 업체, 스타트업 등이 끊임없이 이 산업에 참여하여 흐름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2012년 한국은 우수한 플랜트·중공업 기술을 보유한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조류발전 선진국가였고, 일본은 한참 뒤늦은 후발주자였다. 그러나 현재 국내 조류발전 산업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채 사라졌고, 일본은 2014년부터 투자한 기술을 바탕으로 올해 상반기 첫 상용 조류발전소 시운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반영했다. 탄소중립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과거를 답습할 시간이 더는 없다.
박혜린 이노마드 대표·2050 탄소중립위원
박혜린 이노마드 대표·2050 탄소중립위원. 박혜린 대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