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시작한 ‘미래를 위한 금요일’ 운동의 일환으로 지난해 9월24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의회 광장에서 활동가들이 ‘기후 파업’ 시위를 하며 ‘그린뉴딜’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로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세계 경기부양 투자금 14조달러 가운데 채 1조달러도 안 되는 금액이 ‘녹색경제성장 정책’(그린뉴딜)에 투자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경기부양 투자금에서 그린뉴딜이 차지한 비중의 절반도 안 된다. 한국은 유럽연합(EU)과 함께 30% 이상씩을 투자해 그린뉴딜을 선도하는 국가로 평가받았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학부 연구팀은 2일(현지시각) 세계 경기부양 투자금 가운데 온실가스 배출 감축과 관련한 투자금 현황을 분석한 비평논문을 과학저널 <네이처>에 기고했다. 연구팀은 “2020년과 2021년 주요 20개국(G20)은 14조달러(1경5680조원)를 코로나19 팬데믹에 의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경기부양책으로 투자했다. 각국 정부는 ‘그린뉴딜’ ‘더 나은 재건’(BBB) 등 기후 관련 투자를 공약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DOI :
10.1038/d41586-022-00540-6)
연구팀 분석 결과 전체 경기부양 투자금의 6%(8600억달러)만이 전기차, 에너지효율 빌딩, 재생에너지 구축 등을 포함해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할 수 있는 영역에 투자됐다. 심지어 3%는 석탄산업 보조금 등 온실가스 배출을 증가시킬 수 있는 사업에 투자됐다. 6%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기부양 투자금(3조2500억달러)의 16%(5200억달러)가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직접 투자된 것과 비교해 훨씬 적은 비중이다. 연구팀은 만약 당시와 비슷한 비율로 투자한다면 2조2천억달러는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고 1.5도 제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2020∼2024년에 7조달러를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투자금은 기후 완화를 위해 필요한 자금의 9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논문 교신저자인 조나스 남 교수 등 연구팀은 “진로를 변경하기에 늦지 않았다. 백신과 항바이러스제, 마스크 등으로 코로나19에서 벗어나 국가 경제를 저탄소 경로로 전환할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고 밝혔다.
기후 관련 재건 사업에 할당된 8600억달러조차 27%만이 영국과 독일에서처럼 주택 단열이나 에너지효율적 난방장치 설치를 위한 보조금 등 직접적인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쓰였다. 나머지 대부분(72%)은 독일의 전기자동차 충전소 건설이나 아르헨티나의 일자리 창출용 철로 확장 등 간접 투자였다. 1%(106억달러)는 연구개발(R&D)에 투자됐는데 미래 혁신기술은 얻겠지만 2030년 이전의 배출 감축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는 한국의 탄소포집과 재생에너지 등 녹색혁신연구비(22억달러)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수소발전 연구비(2억1600만달러) 등이 포함된다.
연구팀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한 이래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2020년 첫 6개월 동안 그린뉴딜은 전체 투자액의 5%를 차지했으며 하반기에는 유럽연합이 대규모 배출 감축 예산안을 통과시켜 12%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2021년에 점유율은 3%까지 떨어졌다.
코로나19 규제가 완화되면서 새로 도입되는 경기부양책들은 경제 회복과 재건에 집중됐지만 기후 조항을 포함한 것은 거의 없다. 주요 20개국 거의 모두가 국내 항공사에 재정 지원을 제공했다. 프랑스만이 에어프랑스에 고속철과 경쟁 관계에 있는 노선에 대한 국내선 운항을 중지할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
“경기부양 녹색법안 마련 등 개선 여지 있어”
연구팀은 “파리기후협정에 대한 강력한 공약을 내놓은 국가들 가운에 일부 국가는 다른 국가들보다 많은 일을 했다”며 선두그룹으로 한국과 유럽연합을 들었다. 두 나라는 이미 2009년 경기부양 투자금의 60∼70%를 배출 감축 조처에 투자했음에도 코로나19 경기부양 투자금의 30% 이상을 그린뉴딜에 투입했다. 뒤를 이어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가 20% 이상, 멕시코와 프랑스가 10% 이상을 투자했다.
반면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등은 후발주자들은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중국은 재정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2020년 전기요금을 5% 인하하고, 가격 안정을 위해 석탄 광산에 생산량을 늘리도록 독려했다. 인도는 석탄발전소에 대한 대기오염 통제 방안 시행 기한을 연기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수요가 급감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석탄발전소인 기존 발전소에서 전력을 구매하도록 보장하고 풍력발전 구매를 줄이는 데 114억달러를 할당했다.
미국, 일본, 캐나다와 영국은 경기부양 투자금의 10% 이하를 배출 감축 분야에 투입했다. 연구팀은 이런 투자 규모는 이들 국가가 파리 기후목표와 관련해 공약했던 것과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아직 개선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개선 방안으로 △경기부양 법안에 환경 조건 달기 △온실가스 배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경기부양 방안에 집중하기 △저탄소 산업에 투자하기 △기후공동체, 경제학자, 사회과학자들이 배출 감축 경기부양 지출이 감소한 원인 조사하기 등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코로나19 대유행에서 겪었듯이 위험을 외면하는 정부는 시민의 생명과 생계를 지킬 수 없다”는 말로 비평을 맺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