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산불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한 번의 극단적인 산불 사례가 인간에 의한 ‘지구가열’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산불은 지구가열이 없었다면 일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산불은 인간의 부주의나 마른번개로 인해 일어나지만, 지구가열이 산불의 발생 빈도와 규모를 악화시킨다.
지구가열은 산불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가? 1800년대 이후 화석 연료 연소로 인해ᅠ이산화탄소 농도가 40% 이상 높아졌고 그 증가의 절반 이상이 1985년 이후에 이루어졌다. 다른 온실가스(메탄, 아산화질소 등)도 대기 중 농도가 상승하고 있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받은 에너지만큼 우주로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는 지글지글 끓게 될 것이다. 온실가스는 태양 에너지를 그대로 투과시키는 반면, 다시 우주로 빠져나가는 에너지를 대류권에 가둔다. 이로 인해ᅠ지구에너지불균형(earth's energy imbalance)이 일어난다.
현재 지구에너지불균형은 제곱미터당 약 1W 정도이며 전 세계적으로 약 500TW(테라와트, T=1012)에 달한다. 최근 인류가 사용하는ᅠ모든ᅠ에너지는ᅠ약 20TW이므로 이에 비하면 인간이 일으킨 온실효과로 인한 에너지는 엄청나다. 그렇다 해도 지구에너지불균형은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당 240W)에 비해 극히 일부에 불과하므로ᅠ얼마 전까지 우리가 그 가열을 직접 느낄 수 없었다.
2005∼2019년 지구에너지불균형 2배 증가
미국 해양대기청(NOAA)과 항공우주국(NASA)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2005년에서 2019년 동안 지구에너지불균형이 2배 더 증가했다. 이제 지구에너지불균형 곧 여분의 열이 누적돼 기후위기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때 여분의 열은 어디에 축적되는지가 중요하다. 바다에 여분 열의 90% 이상이 축적된다. 이로 인해 바다가 팽창하고 이와 함께 그린란드와 남극 대륙에서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1년에 약 3㎜ 상승하고 있다.
육지에서 지구에너지불균형은 물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습도가 100%가 아닌 경우 대기는 마른 스펀지와 같다. 대기는 초목, 토양, 호수, 강 등 닿는 모든 것의 물을 흡수한다.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공기 중에 저장할 수 있는 물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한편 기온 상승은 토양으로부터 물을 끌어내는(증발시키는) 정도가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공기가 보유할ᅠ수ᅠ있는 물의 양과 보유하고 있는 양의 차이가 클수록 토양에서 수분이 빠르게 줄어든다.
토양에 수분이 있는 경우, 여분의 열은 주로 수분을 증발시키는 데 사용한다. 이 수분은 구름에 공급돼 더 많은ᅠ비를 오게 한다. 이 경우 수분 증발은 지구 에어컨 구실을 하므로 여분의 열이 토양에 축적되지 않는다.
가뭄이나 폭염이 지속하면, 결국 토양에는 증발할 수분이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이 경우 지구에너지불균형이 육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가? 한 달 동안 누적된 ㎡당 1W는 1시간 동안 ㎡당 720W(30일×24시간)에 해당한다. 720W는 전자레인지의 최대 출력이며 1㎡는 전자레인지 크기(0.3㎡)의 약 10배이다. 토양에 수분이 없는 건조한 날씨가 한 달 지속하면 1㎡에서 전자레인지 10대를 6분 동안 사용하는 것과 같다. 원인만 있으면 불이 붙는 게 당연하다. 초목이 가지고 있는 수분 함유량은 가연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므로 결국, 건조해진 초목이 산불 연료가 된다. 지구가열이 더 자주 더 강력한 산불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고위도 지역에서 호주, 미국 서부, 남유럽과 열대 우림까지 세계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잇따르고 있다. 숲이 불타면서 대기에 더 많은 탄소가 쌓인다. 이뿐만 아니라 토양에 포함된 탄소도 배출된다. 또한 산불은 대기 질을 떨어뜨려 연간 대기오염 조기 사망 330만명 가운데 5~8%의 원인이기도 하다.
산불은 생태계에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불이 나면 오래된 숲이 타고 다시 어린 초목이 자라 숲을 이루는 과정이 반복된다. 산불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만, 불탄 지역에서 다시 빠르게 자라는 어린 나무는 대기에서 탄소를 크게 제거하므로 본질적으로 기후에 중립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산불이 크고 빈번하면 다음 산불이 일어나기 전에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 숲이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역할이 줄어든다.
고위도 지방은 다른 지역보다 2배 이상 빠르게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 이로 인한 건조화로 아한대 숲의 초목이 땔감 구실을 하고 있다. 영구동토층은 엄청난 탄소를 보유하고 있는 토양이지만 얼어 있거나 축축해 원래 불이 잘 붙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건조화로 산불이 나면 영구동토층이 가지고 있는 탄소가 배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또한 산불은 그 재인 검댕(블랙카본)을 극지방에 흩뿌린다. 이렇게 되면 빙하와 눈에 반사되어 우주로 되돌아가던 태양 에너지가 지구에 흡수된다. 이는 빙하와 눈을 더 많이 녹여 햇빛 반사효과를 더 줄여 지구가열이 더 커지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최근 호주의 대형 산불은 ‘인도양 쌍극자’ 때문에 일어난다. 인도양 쌍극자는 인도양 동쪽과 서쪽의 해수면 온도 변동으로 일어난다. 인도네시아와 호주 부근의 해수면 온도가 평시보다 낮아지면 호주는 기압이 높아져 맑고 건조해진다. 미국 서부와 남유럽의 대형 산불은 지구가열로 제트기류가 느려져서 구불구불한 파동이 커져 여기에 강력한 고기압이 자리를 잡아 일어난다. 기후학적으로 호주, 미국 서부와 남유럽은 건조하며 자연적인 기후변동이 작다. 이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연 변동성이 큰 온대지역에 비해 지구가열 효과가 빠르고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로 인해 건조한 날씨가 지속하고 심해져서 산불이 점차 많아지고 강해지고 있다.
열대 우림과 이탄 늪에서도 산불이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더 많은 경작지를 확보하려는 인간 욕망 때문이다.ᅠ아마존 열대 우림 파괴는 목축 확대가 주된 원인이다. 현재 삼림이 파괴된 아마존 숲의 65%가 넘는 곳이 소 방목장이 됐다. 이뿐만 아니라 가축 사료로 쓰이는 대두(콩) 생산을 늘리기 위해 아마존 숲을 벌채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산불은 엘니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평시보다 기압이 높아져 맑고 건조한 날씨가 지속해 산불이 많이 발생한다. 여기에 더해 사람들은 1990∼2015년 동안 이 지역 열대우림의 71%를 훼손됐다. 팜오일과 고무 등을 생산하려고 숲을 불태우고 이탄 습지에 물을 빼내어 농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축축한 토양이 줄고 기온 상승으로 건조화가 일어나 더욱더 큰 산불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산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산림청 자료에 의하면 한 해 전체 건수의 68%가 봄철에 발생했고, 피해면적의 95%가 봄철 산불로 불탔다. 계절적으로 봄철에 가장 건조하며 특히 동해안 지역에는 푄 현상으로 더 건조하고 강한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푄 현상은 봄철에 한반도 남쪽에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고기압이, 북쪽에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저기압이 위치하여 서풍이 불어 일어난다. 서풍이 태백산맥을 따라 상승하는 과정에서 공기 중 수분을 잃게 된다. 태백산맥을 넘어 하강하면서 단열 압축되어 기온이 상승하여 상대습도를 낮춘다. 산불이 확산하는 속도에 영향을 주는 바람은 태백산맥 경사면을 타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더 강해진다. 봄철 동해안 지역 평균기온은 1990년대 12.2도에서 2010년대에는 13도로 상승하고 상대습도는 1990년대 63%에서 2010년대에는 58.7%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최근 산불 발생 횟수와 불탄 면적이 증가 추세에 있다.
<네이처 생태와 진화>(Nature Ecology & Evolution)에 2017년 발표된 연구에서 이번 세기 중반 지구가열로 인한 화재 발생 변화를 분석했다. 온실가스를 고배출하는 시나리오(RCP8.5) 경우 전 세계적으로 화재위험이 높은 날(days) 수가 이번 세기 중반 35%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서부, 호주 남동부, 지중해와 남아프리카에서 더 자주 화재가 있을 것으로 보았다. 우리나라도 화재 발생 날 수가 20~50% 더 증가하는 지역에 포함됐다.
고배출 시나리오(RCP8.5)에서 21세기 중반(2041~2070년)에 2000~2014년보다 화재기상지수(FWI)가 93번째 백분위수를 초과하는 날(days) 수의 변화 비율. 빨간색이 진할수록 화재 발생의 증가를 나타내고 옅은 녹색은 감소를 나타낸다. 출처: Bowman et al. (2017)
올해 발간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평가보고서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상쇄하기 위해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숲은 식물이 광합성을 하여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잎, 줄기와 뿌리에 저장하는 탄소 흡수원이기 때문이다. 식물에 저장된 탄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토양에 축적된다. 이제 숲은 산불로 인해 탄소 흡수원이 아니라 배출원으로 바뀌려 하고 있다. 결국 산불은 기후위기 대응을 약화시킨다.
과학적 증거는 산불이 지구가열과 연관돼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 연관성은 오늘날 산불이 화석연료에 중독된 인간 세상 때문임을 알려준다. 화사한 봄꽃이 만발하는 또 다른 한편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우리 스스로 만들고 있는 타오르게 될 세상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참고문헌
Bowman, D., Williamson, G., Abatzoglou, J. et al. Human exposure and sensitivity to globally extreme wildfire events. Nat Ecol Evol 1, 0058(2017). https://doi.org/10.1038/s41559-016-0058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 cch070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