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1차 회의가 이틀 일정으로 열린 지난 2월17일(현지시각)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외곽의 브카시에서 홍수가 발생하자 주민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대피하고 있다. 자카르타는 빠른 도시 침하와 해수면 상승으로 범람 위험이 높은 도시로,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도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해안도시 33곳은 해마다 1㎝ 이상 침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지구 연평균 해수면 상승보다 5배 가까이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는 셈이다.
미국 로드아일랜드대 연구팀은 22일 “미국 마이애미나 중국 광저우처럼 세계의 많은 해안 도시들이 해수면 상승에 따른 홍수 전망에 직면해 있지만, 일부 도시들은 기후변화로 따른 홍수보다 도시 침하에 의한 범람이라는 더 긴급한 위험을 맞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2015∼20년 범지구항법시스템(GNSS)과 간섭계합성개구레이더(InSAR)라는 관측 도구를 이용해 세계 99개 해안도시의 침하 속도와 면적을 조사했다.
가장 빠르게 가라앉는 도시는 중국 톈진으로 연 5.22㎝씩 침하 중으로 분석됐다. 침하 면적이 가장 넓은 도시는 중국 상하이로 연 2㎜ 이상 침하된 지역이 서울 전체 면적의 3배 가량인 1706㎢에 이르렀다. 연구팀 논문은 미국지구물리학회(AGU)가 발간하는 학술지 <지구물리연구회보>(GRL) 최근호에 실렸다.(DOI :
10.1029/2022GL098477)
도시의 토지는 지표 아래 물질의 변화에 따라 굳어지고 딴딴해지는 침강 과정에 의해 연간 몇 ㎜씩 가라앉는다. 침강 현상은 대부분 지하수 추출이나 석유·가스 시추와 같은 인간 활동에 의해 초래되며, 액체가 유출되면 땅은 압착되고 땅 위에 지어진 건물 등 구조물은 해수면에 더 가까워진다.
연구팀은 99개 도시 가운데 3분의 1인 33개 도시가 연 1㎝ 이상 가라앉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세계 해수면 상승(연 0.26㎝)에 견줘 4∼5배 빠른 속도다.
특히 지하수 추출이 세계 도시들 침하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고대 호수 바닥의 점토 위에 건설된 멕시코시티는 식수를 위해 수십년 동안 지하 대수층을 뽑아올린 뒤 해마다 거의 50㎝씩 가라앉고 있다. 주거용 건물이나 산업 활동이 집중된, 침하 속도가 가장 빠른 아시아 도시에서도 ‘과도한’ 지하수 추출이 이뤄져 주변 육지보다 더 빠르게 침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인구 1050만명의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경우 30년 전에는 연 28㎝씩 가라앉았지만 정부가 지하수 추출 규제를 강화해 지난 7년 동안은 연 3㎝로 침하 속도가 늦춰졌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카르타에서 2천㎞ 떨어진 보르네오섬으로 수도 이전을 추진 중이다.
이미 일부 도시들은 침하와 해수면 상승이 겹치는 영향으로 해안 범람을 맞고 있다. 지난해 98명의 생명을 앗아간 플로리다 서프사이드콘도미니엄 붕괴 사고의 원인으로도 침하가 지목되고 있다. 또 버지니아 해안 인근의 탕헤르섬에서는 마을 전체가 침식과 해수면 상승에 의해 파도 아래로 가라앉아 대피해야 했다.
연간 0.8㎝까지 침강하는 인도 뭄바이는 전례 없는 폭우에 의한 범람에 더해 해안 범람의 위험까지 증가하고 있다. 인도를 대표하는 금융도시는 이로써 매해 우기 때면 시의 배수시스템으로 처리 가능한 수위 이상으로 물이 넘치고 있다. 최근 위험 분석은 뭄바이에서 2050년까지 만조 동안 해수면 상승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건물이 2500개 가까이 이른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도시마다 해발 10m 저지대이면서 연간 침하 속도가 2㎜ 이상인 면적도 조사했다. 인구 1500만명으로,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인 터키의 이스탄불은 대부분 지역이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도시 서쪽 끝 100㎢ 면적은 연간 침하 속도가 2㎜ 이상인 것으로 분석됐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2400만명의 나이지리아 수도 라고스는 중심 50㎢가 연 2㎜보다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다. 대만 수도 타이베이의 대부분과 세계에서 인구가 7번째로 많은 2천만명의 인도 뭄바이, 뉴질랜드 최대도시인 오클랜드의 상당부분도 침하 속도가 연 2㎜를 넘고 있다.
연구팀이 분석한 대상 도시 99개에는 서울도 포함돼 있다. 분석 결과, 서울의 최대 침하 속도는 연 0.659㎝이고, 도시 대부분은 안정적이지만 연 2㎜의 빠른 속도로 침하하고 있는 지역이 6.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침하의 주요 원인이 인간 활동인 것으로 분석됐다. 침하 속도를 늦추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감시 활동을 확대하고 규제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북자카르타 지방정부는 올해 초 관내의 지하수 추출을 금지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