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실물 앨범 구성품 사진.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환경단체가 케이팝 실물 앨범 과소비를 부추기는 엔터사 판매 전략을 비판하고 나섰다.
환경운동연합은 17일 ‘과잉소비를 부추기는 케이팝 문화, 6천만 장의 플라스틱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제목을 붙인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환경운동연합이 단체 명의로 케이팝 실물 앨범 문제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환경운동연합 신시아 활동가는 <한겨레>에 “케이팝 실물 앨범 문제와 관련한 대응팀을 꾸렸고, ‘공동체아이티(IT)사회적협동조합’과 연대해서 활동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본 사안에 대한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낸 자료에서 환경운동연합은 먼저 케이팝 실물 앨범 판매량 급증 현황을 짚었다. 써클차트 자료를 보면, 케이팝 실물 앨범 판매량은 2016년 연간 1천만 장을 넘긴 뒤 지난해 5708만9160장으로 매해 약 1천만 장씩 늘었다. 올해 9월까지 집계된 판매량도 이미 6천만 장을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상태다.
하지만 환경운동연합은 “판매된 6천만 장의 앨범이 곧 6천만 명의 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팬들이 여러 장의 앨범을 구매하는 것은 여러 장의 앨범을 소장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팬 사인회’와 ‘랜덤 포토카드’ 등의 특전과 구성품을 얻거나 좋아하는 가수를 차트 상위권에 진입시키기 위함”이라고 봤다. “듣지도 않을 수백 장의 플라스틱을 구매하고 버려야 하는 피로와 죄책감까지 모두 케이팝 팬들의 몫이다.”
환경운동연합은 최근 케이팝 음반 구성품, 포토카드 버전 수, 판매처별 특전 현황 등을 직접 분석했다. 음반에 무작위로 들어간 포토카드 종류가 60종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음반의 랜덤 구성품이 소비자의 기본적 권리를 규정한 소비자기본법 제4조 가운데 ‘물품 및 용역을 선택함에 있어서 필요한 지식 및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에 어긋난다고 봤다.
또한 이들은 랜덤 포토카드·포스터가 게임 속 ‘확률형 아이템’(뽑기 아이템)과 비슷하게 소비자의 과잉소비를 유도하고 사행심을 불러일으킨다고 비판했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연구를 보면 ‘특별한 노력 없이 높은 가치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는 이용자에게 사행심을 부추길 수 있으며, 합리적인 재정적 판단을 내리는 데 방해 요인이 될 수도 있다.’(확률형 아이템 게임 이용이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변화에 미치는 영향, DOI : 10.7583/JKGS.2018.18.1.51)
환경운동연합은 “랜덤 구성품은 각 팬들의 수요에 따라 서로 교환되고 판매된다. 포토카드나 포스터의 경우 원래 특정 값이 매겨져있지 않은 구성품인 만큼 판매되는 값은 가격이 그야말로 ‘시가’”라며, “‘랜덤 구성품’이라는 판매전략이 사행성 요인을 충족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재정 자립도가 낮은 청소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게임 속 ‘확률형 아이템’은 한국 게임산업의 성장을 이끌었지만, 로또 복권처럼 확률에 따라 아이템이 결정돼 사행성이 심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게임업계는 확률 정보공개 등 자율규제에 나섰지만, ‘업계가 매출 전략을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하면서 게임 콘텐츠의 질이 떨어진다’는 비판까지 잇따르는 상황이다.
환경운동연합이 케이팝 실물 앨범 문제에 대응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보다 음반 쓰레기 문제 때문이다. 환경운동연합은 자료에서 “대부분의 앨범 케이스는 플라스틱 소재지만, 분리배출에 대한 내용이 분명하게 표기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게다가 그 커버와 구성품 또한 대체로 코팅지로 이루어져 있어 재활용이 불가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또한 “‘종이류’로 분류되는 앨범 내 구성품 쓰레기들은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에 적용되지 않을뿐더러,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폐기물 부담금 또한 기획사들의 수익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신시아 활동가는 ‘케이팝 실물 앨범 대응에 나선 이유’를 묻는 <한겨레> 질문에 “앨범 쓰레기 문제가 이미 팬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된 지 오래이며, 이 문제와 관련해서 종종 시민 제보를 받기도 했다”며 “지구와 케이팝 문화 모두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반드시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답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엔터사와 차트사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먼저, 엔터사가 소비자보호법 취지에 맞게 포토카드 등 구성품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구성품과 앨범을 분리하여 소비자들이 직접 원하는 굿즈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팬사인회와 팬미팅 등의 특전 제공에서 무작위 추첨 과정의 투명한 공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앨범을 많이 구매한 순서로 특전을 제공하는 ‘줄 세우기’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팬들의 경쟁심을 자극하는 음반차트의 집계 기준을 확실하게 공개하고 시스템을 전환하려는 노력 또한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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